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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유전학자라면 꼭 한 가지 밝히고 싶은 게 있다. 사람의 유전자에 내재해 있을 이타적 사랑에 대한 것이다. 아직은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 단단히 먹고 연구를 시작한다면, 유전자 속에 있는 생명사랑에 대한 어떤 특수인자를 반드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믿음이다.
물이나 불, 철길 또는 자동차로부터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생면부지의 사람을 보고 뛰어들어 상대방을 구하고 오히려 자기는 희생되는 그런 일을 보면, 이는 이성으로 판단한 행동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본성, 즉, 한 생명의 탄생비밀에 속하는 요소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서 강한 지진이 나고, 큰 산불이 일어 피해가 극심해지면, 다른 여러 지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안위를 뒤로 한 채, 급히 구조대를 꾸려 헌신적인 생명구원 활동을 시작한다.
이런 행위들은 누가 시킨다고 하게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수퍼마켓을 터는 권총강도를 자신의 몸을 던져 막는다든지, 약자를 위해 폭력 앞에 의연하게 맞서는 일은 결코 냉철하게 계산하여 할 수가 없는 행동이다.
그러데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타적 사랑의 발현이 점차 줄어 들었고, 이제는 그런 행동이 아주 고귀한 희생으로 평가 받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희생적인 행동들을 만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일 터이다. 불의를 보고도 제 자신의 안전을 위해 고개 돌리고 슬금슬금 피하는 것이 요즈음의 행동수칙인 것이다.
내 생각대로라면 사람의 유전자가 응당 가지고 있을 이타적 사랑 요소가 삭막하게 변해가는 시대적 흐름을 못 견뎌 점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일 터이다.
세상은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곳곳에 위험 요소는 증가하고, 놀랄만한 과학의 발전은 삶의 부정적인 내용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통신 기술의 발달로 낯 모르는 사람하고도 접촉이 쉬워짐으로써 이를 기호로 삼아 남을 괴롭히고 등쳐먹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 결과 인간이 인간을 더욱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조악한 생존환경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게 되는 연민이나, 양보, 배려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아군이 아니면 적으로 분류해 놓고, 제 편이 아니면, 오로지 공격대상으로만 삼으니 어찌 이타적 행동이 맥을 추겠는가.
그러나 불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이 완성으로 가는 길은 결국 사랑을 통하는 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더럽게 삭막하고 험악해진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조차 어려운 세월을 살고 있지만, 더러는 각자의 가슴 속에 잠재해 있는 생명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한 번씩 점검할 필요는 꼭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사는 일이 돈이나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에 달린 듯 해도. 결국은 지난날 어떤 사랑을 했고, 또 지금은 어떤 사랑을 했느냐가 그 사람의 만족도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에게 장착된 유전자가 마음을 바꾸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이타적 사랑에 대한 인간의 특성을 죄다 말소 시켜버리겠다’고 선언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마 훗날 우리가 상상하기도 싫은, 차가운 피를 가진 신 인류가 태어나서, 그동안 애써 이룩해 놓은 우리네 역사를 한낱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이 먹어가며 그 어떤 것 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시들까봐 제일 신경을 쓰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막상 늙어보니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더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비록 힘 떨어져 남과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 한 세상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을 버티고 있는 중이다. 제발 유전자가 변심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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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상립
수필집 <<작은 목소리>>, <<자는 척 하면 깨울 수 없다>> 외 다수
문예한국작가상, 대구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