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오르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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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오르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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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보았던 연속극의 한 대목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어떤 큰 부자가 집사에게 큰일을 해결하고 오라고 파견하면서 한 말이다. 

 

“약 오르면 진다.” 심리적으로 동요하면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동요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생긴다. 그런데 상황은 언제나 복잡 미묘하고, 자기 뜻은 자신에게 항상 분명하다. 분명한 것과 복잡 미묘한 것이 정면 대결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 

 

복잡 미묘한 것은 언제나 변통 무궁하여 칼끝의 방향과 모양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연히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진다.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품고 있는 가장 큰 그릇이 나라다. 

 

그래서 노자는 나라를 알기 어려운 신기한 그릇(神器)이라고 표현한 후,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분명함에 빠지면 신기한 그릇을 다루는 일에서 쉽게 패배한다고 강조한다.

 

복잡 미묘한 상황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는 기준이나 신념 등과 같이 ‘확고한 마음’ 이다. ‘확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분명하고 명료해지는데, 그것이 분명할수록 판단은 날렵하고 예리하며 전체적으로 성급해진다. 진위나 선악에 대한 판단도 모두 거기에 의존한다. 

 

문제는 선악 판단이 명료해지면서 이것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일은 적을 하나 줄이고, 친구를 하나 늘리면서 해나가면 성공한다. 하지만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순간, 친구가 하나 줄고 적이 하나 늘기 쉽다. ‘확고한 마음’은 팽창력보다 수축력이 강한 탓이다. 따라서 미래적이기 어렵고 과거적이기 쉽다. 

 

도덕적 우월감은 자신이 조작한 것이다. ‘확고한 마음’도 조작물이다. 조작물에 의해 자신이 지배된다면,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처지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은 조작물의 대행자로 존재할 뿐이다.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조작물의 수행자나 대행자로 존재하며 분열되어 있으면 진실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쉽게 자기 밖의 무슨 물건이나 자기 밖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곤 한다. 

 

어떤 학생이 시험 중에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었다. 진실하게 존재하는 학생이라면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것이다. 잘못을 자신이 온전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대행자로 존재하며 스스로 분열되어 있으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도 그랬는데, 왜 자기만 잡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데서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가가 진짜 핵심이다. 

 

‘확고한 마음’으로 무장하여 뿌리를 깊이 내린 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발동되는 질문에 취약하고 대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지식이나 이론을 배달하는 대답에 익숙하다. 

 

대답이 기능하는 곳에서는 원래 모습 그대로 뱉어내느냐의 여부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원래 모습’은 시제가 과거형이고 굳건한 기준이다. 이 기준에 맞으면 참이고 맞지 않으면 거짓이 된다. 

 

당연히 대답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논쟁 대부분이 과거 논쟁과 진위 논쟁으로 채워진다. 이미 있는 문제를 다루는 데에 빠져 있으면서 세계 변화에 맞는 새롭고 적실한 문제를 창출하는 일에 취약해진다. 가공에 강하고 창의에 약해진다. ‘확고한 마음’이 진정성과 도덕성의 외투를 입고 있음에도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미래적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성숙해 가려는 수양은 모두 다 ‘확고한 마음’을 줄이거나 소멸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무념무상’ 이니 ‘무아’니 ‘관조’니 ‘무소유’니 하는 것들이 다 그렇다.

 

‘확고한 마음’이 사라지면 폐쇄적인 틀도 함께 사라져서 자신이 온전한 자신으로 드러나고, 그렇게 되어야 세계를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다.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이 힘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래야 ‘약 오르다 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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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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