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오르면 진다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약 오르면 진다

0 개 1,506 명사칼럼

어릴 적에 보았던 연속극의 한 대목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어떤 큰 부자가 집사에게 큰일을 해결하고 오라고 파견하면서 한 말이다. 

 

“약 오르면 진다.” 심리적으로 동요하면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동요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생긴다. 그런데 상황은 언제나 복잡 미묘하고, 자기 뜻은 자신에게 항상 분명하다. 분명한 것과 복잡 미묘한 것이 정면 대결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 

 

복잡 미묘한 것은 언제나 변통 무궁하여 칼끝의 방향과 모양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연히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진다.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품고 있는 가장 큰 그릇이 나라다. 

 

그래서 노자는 나라를 알기 어려운 신기한 그릇(神器)이라고 표현한 후,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분명함에 빠지면 신기한 그릇을 다루는 일에서 쉽게 패배한다고 강조한다.

 

복잡 미묘한 상황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는 기준이나 신념 등과 같이 ‘확고한 마음’ 이다. ‘확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분명하고 명료해지는데, 그것이 분명할수록 판단은 날렵하고 예리하며 전체적으로 성급해진다. 진위나 선악에 대한 판단도 모두 거기에 의존한다. 

 

문제는 선악 판단이 명료해지면서 이것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일은 적을 하나 줄이고, 친구를 하나 늘리면서 해나가면 성공한다. 하지만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 순간, 친구가 하나 줄고 적이 하나 늘기 쉽다. ‘확고한 마음’은 팽창력보다 수축력이 강한 탓이다. 따라서 미래적이기 어렵고 과거적이기 쉽다. 

 

도덕적 우월감은 자신이 조작한 것이다. ‘확고한 마음’도 조작물이다. 조작물에 의해 자신이 지배된다면,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처지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은 조작물의 대행자로 존재할 뿐이다.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조작물의 수행자나 대행자로 존재하며 분열되어 있으면 진실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쉽게 자기 밖의 무슨 물건이나 자기 밖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곤 한다. 

 

어떤 학생이 시험 중에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었다. 진실하게 존재하는 학생이라면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것이다. 잘못을 자신이 온전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대행자로 존재하며 스스로 분열되어 있으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도 그랬는데, 왜 자기만 잡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데서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가가 진짜 핵심이다. 

 

‘확고한 마음’으로 무장하여 뿌리를 깊이 내린 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발동되는 질문에 취약하고 대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지식이나 이론을 배달하는 대답에 익숙하다. 

 

대답이 기능하는 곳에서는 원래 모습 그대로 뱉어내느냐의 여부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원래 모습’은 시제가 과거형이고 굳건한 기준이다. 이 기준에 맞으면 참이고 맞지 않으면 거짓이 된다. 

 

당연히 대답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논쟁 대부분이 과거 논쟁과 진위 논쟁으로 채워진다. 이미 있는 문제를 다루는 데에 빠져 있으면서 세계 변화에 맞는 새롭고 적실한 문제를 창출하는 일에 취약해진다. 가공에 강하고 창의에 약해진다. ‘확고한 마음’이 진정성과 도덕성의 외투를 입고 있음에도 문제가 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미래적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성숙해 가려는 수양은 모두 다 ‘확고한 마음’을 줄이거나 소멸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무념무상’ 이니 ‘무아’니 ‘관조’니 ‘무소유’니 하는 것들이 다 그렇다.

 

‘확고한 마음’이 사라지면 폐쇄적인 틀도 함께 사라져서 자신이 온전한 자신으로 드러나고, 그렇게 되어야 세계를 보고 싶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이 커지는 것이다.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이 힘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래야 ‘약 오르다 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

■ 최 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e723c2f5cd5472fdef8235a8584fa70d_1556072491_9324.jpg
 

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금 계획

댓글 0 | 조회 875 | 2024.02.14
세금 계획은 비즈니스 재정을 전략적으… 더보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댓글 0 | 조회 533 | 2024.02.14
아침에 요란한 노크소리가 났다. 대충… 더보기

빈 시간에

댓글 0 | 조회 350 | 2024.02.14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슈베르트의 세레… 더보기

리커넥트 2024 정신건강 프로젝트 소개

댓글 0 | 조회 371 | 2024.02.14
리커넥트 사회단체란?Reconnect… 더보기

자신을 위한 용서

댓글 0 | 조회 260 | 2024.02.14
요즘 SNS를 통해 보여지는 개개인이… 더보기

헛 수고? 첫 수고!

댓글 0 | 조회 204 | 2024.02.14
자.. 이제 마지막... 이거 하나만… 더보기

허벅지가 날씬하고 유연해지는 스트레칭

댓글 0 | 조회 298 | 2024.02.14
오래 앉아 있는 직업을 가졌거나 골반… 더보기

핵심만 파고드는 파트너쉽 영주권 가이드

댓글 0 | 조회 1,103 | 2024.02.13
애초에 영주권을 목적으로 교제를 한 … 더보기

사건의 지평선 그 너머

댓글 0 | 조회 354 | 2024.02.13
충주 석종사 참선 템플스테이‘5분만 … 더보기

사랑은 싸우는 것

댓글 0 | 조회 423 | 2024.02.13
시인 안 도현내가 이 밤에 강물처럼 … 더보기

씨줄과 날줄

댓글 0 | 조회 437 | 2024.02.13
한국에 있을 때 읽었던 한 인용문을 … 더보기

단전호흡의 요령

댓글 0 | 조회 429 | 2024.02.13
단전호흡 할 때의 요령은 `단전 외의… 더보기

평양문화어와 한류

댓글 0 | 조회 330 | 2024.02.13
북에서 한때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 더보기

골절(骨折, Bone Fracture)

댓글 0 | 조회 352 | 2024.02.10
필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재까지 두… 더보기

비자카드 말고, 비자 그게 궁금하다

댓글 0 | 조회 593 | 2024.01.31
대한민국 영토가 아닌 타국가에 체류하… 더보기

관료주의의 무능, 권력자의 광기,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서울의 봄>이 상기시키…

댓글 0 | 조회 334 | 2024.01.31
공허한 권력의 실체이 영화 후반부에서… 더보기

청룡의 기상으로 카이로스를 잡자

댓글 0 | 조회 281 | 2024.01.31
2024년 1월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더보기

월경불순

댓글 0 | 조회 440 | 2024.01.31
여성에게 순조로운 월경은 건강의 척도… 더보기

재시행된 Trial Period이 고용주에게 미치는 영향

댓글 0 | 조회 717 | 2024.01.31
2023년 새 정부가 시작되면서 신규… 더보기

지혜의 숲에서 꿈꾸는 바다

댓글 0 | 조회 217 | 2024.01.31
유학생 두 사람이 찾은 오대산 숲과 … 더보기

한강철교를 지나며

댓글 0 | 조회 295 | 2024.01.30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저녁 무렵전철 … 더보기

지워지지않는 이름, 그녀 ‘레베카’

댓글 0 | 조회 945 | 2024.01.30
내게 북유럽 패키지 여행은 아무래도 … 더보기

시작

댓글 0 | 조회 309 | 2024.01.30
모터웨이를 달리던 중 이었습니다. 빠… 더보기

매일 이 두동작을 했을 때 찾아오는 놀라운 변화

댓글 0 | 조회 659 | 2024.01.30
운동 시간이 길거나 강도가 세다고 해… 더보기

학생의 육아출산 수당 수급

댓글 0 | 조회 1,021 | 2024.01.30
뉴질랜드에서 육아출산 수당 수급 자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