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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을 처음 만나던 날

오소영 0 558 2019.03.27 13:50

주말오후 말동무 오랜지기와 나란히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로 많이 붐볐다.

 

급환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나왔다는 친구의 얼굴이 많이 수척해 있었다. 병원일은 나이먹은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애써 긴 자초지종은 피하기로 했다. 몸은 녹슬어 삐끗거려도 마음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예측이 어려운 매일매일의 삶이 마치 살얼음판을 딛고 서 있는듯 아슬아슬하다. 건강한 세상 사람들과 섞여 함께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이 그래서 환희롭다. 서로 눈빛만 보고도 기분이 통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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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하트가 떠있는 한 잔의 커피. 누구는 맛으로 즐긴다지만 나는 분위기로 마신다. 커피 잔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이 특별한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만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남다른 감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마다의 느낌이 다를 것이기에...

 

같은 세대의 공감대로 오랜지기가 된 친구. 살면서 생기는 맘아픈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니 좋다. 서로가 다독여 위로해 주면서 내일이 다시 새로워진다. 나이먹은 사람들도 세상이 좋아져서 핸드폰을 들고다닌다. 건강정보같은 것도 얻지만 유투브를 더 많이 즐겨본다. 요즘 한국의 경제사정이 좋지않아 많이 걱정이 된다. 조용할 날이없는 정치판... 북쪽으로 보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비록 떠나오긴 했지만 조국임엔 틀림없다. 젊은시절 우리세대가 땀흘려 이룩한 내 나라가 아닌가. 후세들이 잘 살아야 할텐데 혹시 어찌 될까봐 안타깝다. 화제가 정치 이슈로 시작되면 우리는 혈기가 생긴다 어디서 나온 기력일까? 그 자리에 노인은 없다. 커피한잔 카페의 분위기가 이끌어낸 묘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퇴원후 유동식만 먹었다던 분이었다. 한 조각의 빵과 커피로 소생의 기쁨을 음미하는걸까? 다행스런 축복이었다. 빵은 몸을 위해서, 커피는 영혼의 양식으로...

 

어제와 다른 오늘.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그토록 소중하다는 사실을 요즘 깊이 깨닫는다. 행복은 먼데 있는게 아니다. 대단하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바로 지금 이 평범한 순간이 행복이란걸 다시금 느낀다. 내일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내일은 내일에 맡기자. 오늘 이 행복한 순간만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밝은 입구를 등지고 침침한 안쪽으로 들어오는 일행들이 있다. 네 사람이 동행이었다. 반대편 대각선으로 나와 마주한이는 여성이었다. 검게 탄 맨살위로 어깨줄만 있는 원피스를 입었다. 차림은 앳된데 얼굴을 보니 주름살로 칙칙한 노안이었다. 젊은이로 착각했던게 속은것 같아 싱거운 웃음이 나왔다. 우리와 다른 몸매, 다양하게 걸친 의상들, 들고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밌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손수 냉수를 따라와 일행들에게 돌렸다. 앞의 앉은 두 젊은이들을 제끼고 씩씩하게 움직였다. 부지런한 노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다 돌리고 자리에 앉는줄 알았는데 어느새 또 가져왔는지 물컵을 든 그녀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이거 필요하지?” 하는 투로 컵을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노 댕큐” 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미 식사가 끝난 우리들 식탁은 빈 그릇들로 어지러웠다. 그녀는 탁자끝에 컵을 내려놓고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고맙다고 받았으면 좋았을걸 아니라고 한게 너무 미안했다. 손을 살짝들어 흔들면서 웃어주었다.

 

한여름 더위에도 더운물만을 고집해 온지가 한참이다. 부질없는 친절이 사실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렇더라도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냉수컵을 들어 기꺼이 마시는 시늉을 했다. 고마움의 답례였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물을 떠다주고픈 마음은 무얼까? 참 많이 의아했다.

 

냉수를 마시는데도 어느새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온정에 전신에 가벼운 전율이 왔다. 이방인과 한번도 경험해 보지못한 인간다운 교감에 아이처럼 기분이 붕떴다. 좀 전에 있었던 무거운 마음이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종업원 중에 낯이 익은 교민 아가씨가 있다. “어디 다녀왔어요? 한동안 안보이더니 다시 왔네요” 교민 1.5세대들의 열심히 살고있는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반갑다. 등이라도 두드려주며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말고픈 노인들에게 손녀처럼 따뜻한 인사라도 나누고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키위 손님들이 오면 방긋방긋 잘도 웃으며 나긋하고 상냥스럽다. 왜 우리에겐 그게 안될까?

 

요즘 젊은이들은 나이먹은 사람들 싫어한다고 들었다. 그 씁쓸한 기분을 알아차린 숲속의 요정일까? 때맞춰 불쑥 나타난 그 여인. 그들 식탁은 풍요로웠다. 식사에 열중해 있는 네 사람은 삼대의 가족인듯 보였다. 여인 옆에 앉은 남자는 체구가 좋은 미남형이었다. 남편같았다. 마주앉은 두 여인은 모녀사이일까? 중년 여인과 해맑은 아가씨. 봉사정신으로 준비된 사람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한 여인은 아내이고 엄마이고 할머니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이면 우리였을까? 그 궁금증이 더 재미 있었다. 우리는 수수께끼를 풀듯 생각나는대로 한마디씩 했다.

 

‘우리가 늙은이라서 ?... 아니면 외국인이라서?...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아마도 우리를 여기서 자주 본 사람인지도 모르죠” 

 

오며가며 참새 방앗간처럼 자주 들락거린 단골 카페이니 먼 발치서 보았을 수도 있다. 운동하고 나서도 한잔의 커피로 피로를 털어내고 돌아왔다 또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으로 발걸음도 가벼웠다. 바쁘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을 허락 받았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고마운지...

 

그들은 한창 식사에 열중해 있다. 문득 내 시선이 그들 쪽을 향했다...(아하 그게 필요하겠군...) 자리에서 발딱 일어서는 나를 의아해서 친구가 응시했다. 잽싸게 냅킨 몇 장을 손에 움켜들었다. 곧바로 그들의 테이블로 가 살며시 놓고 얼른 돌아섰다. 화들짝 놀란 네사람이 동시에 하는 ‘댕큐’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자리에 앉는 나와 눈이 먼저 마주친건 남자였다. 그가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고마웠다는 마음의 표시를 하고나니 빚을 갚은 기분처럼 홀가분해 졌다. 은연 중 소소한 재미같은게 느껴졌다.

 

그들의 식사가 끝나고 나갈때까지도 우리는 느긋한 시간을 즐겼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내게로 오더니 악수를 청했다. 자기 이름은 ‘렌’이라고 소개를 했다. 만나서 반갑다며 내 이름을 대주었더니 그는 다정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오랫만에 지인을 만나기라도 한듯 한동안 그렇게 체온을 함께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세 사람이 차례로 가벼운 목례를 하면서 나갔다.

 

우리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걸까? 갑자기 그 여인이 동기간처럼 느껴졌다.

 

‘렌’그 다정한 여인을 언젠가 또다시 만나고 싶다. 그 때는 허물없이 더 뜨겁게 포옹하며 교감을 하리라. 몸은 매일 매일 쇠태해 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영혼만은 맑은 샘물처럼 투명하게 살고싶다. ‘렌’ 여인을 닮으면서 아름다운 인생으로 마무리 짓고 싶은게 요즘의 바램이다.

 

언니가 전에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노부부가 나란히 외출해서 외식을 할 때의 일화였다.

 

“제가 두분 식사대를 계산했으니 맛있게 드시고 가십시요” 그렇게 고마운 분들을 여러번 보았다고 했다.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너무 보기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라는 사람도 있더라고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오며가며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드는 우리를 자주 본 사람들일까?)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사실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몇달전에 보았던 한국인 종업원이 오늘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 반가웠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는척하고 싶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키위손님들한테는 방긋방긋 잘 웃어주었다. 우리에겐 왜 그리 쌀쌀한지 눈길한번 안주었다.

 

“한국의 아가씨 다시보니 반갑네 우리 시원하게 말 좀하고 살자” 주책없는 늙은이의 투정이었다. 억지로 웃어주긴 했지만 영 게운치 않은 기분이었었다. 한국교민들을 만나면 몇살이냐 부터 신상털기를 당할까봐 미리 겁내고 접근을 피한다고 들었다.

 

수만리 타국에서 동족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가. 말 걸어 보고싶은 욕구가 있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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