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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010. 15:11 NZ코리아포스트 (125.♡.241.223)
왕하지의 볼멘소리
저녁 무렵,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모퉁이에서 마주 오는 차가 쌍 라이트를 반짝거리자 운전을 하던 아내가 얼른 차 속도를 줄이면서 소곤거렸다.
“여보, 우리 동네 길목까지도 경찰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나봐...”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속도위반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불빛만 반짝거려도 경찰이 숨어있구나 하고 덜컥 겁을 먹게 된다.
아내가 천천히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동네아줌마가 말을 타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마주 오던 운전자는 우리에게 말조심하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내가 산책을 할 때 만나는 그 아줌마는 항상 말을 타고 다니는데 또 한 마리의 말을 끌고 다닌다. 두 마리의 말과 다니니 서로 마주칠 때 조심을 하는데, 위험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두 마리 말들이 어디로 튈지 괜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말을 못 다루는데 혹시, 내가 말발굽에 밟히지나 않을 런지...
뉴질랜드의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말이 그려있는 교통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언제가 오클랜드를 다녀오는데 밤에 비바람까지 몰아치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내보고 속도를 줄이라고 말해도 아내는 평상시처럼 싱싱 달렸다. 언덕길을 돌아서자 앞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완전서행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당황하며 끼익~ 속도를 줄이는데 검은 소 한마리가 도로에 튀어 나와 있었다. 운전에 능숙한 앞차가 있었기에 천만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번 한 일이었다.
자동차만 타면 싱싱 달리는 아내에게 나는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웬만하면 운전할 때는 입 좀 다물고 운전하고, 특히 동네에서는 말조심을 하라고...
시내에서 가게를 하는 안젤리나가 아내에게 일 할 사람을 구해 달라 하여 아내는 평소 알고지내는 제시카를 소개시켜주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내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제시카가 그러는데 가게에 새로 온 매니저가 좀 그렇대~ 안젤리나에게 이 말을 해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안젤리나하고 친하니 참고하라는 뜻에서 비슷한 말을 해주는 것도 괜찮지...만, 그러나 말 빨도 센 안젤리나가 돌발 상황을 만들 수 있으니 아내에게 함구하라고 했는데 괜히 걱정이 되었다. 아내가 근지러운 입을 언제까지 참아낼 수 있을지...
며칠 후 안젤리나에게 전화가 왔고 아내는 긴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아내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팍을 팍팍 후려치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게 매니저가 아내를 찾아왔다고 한다. 안젤리나는 아내가 한 말을 매니저 부인에게 다 이야기했고 부인은 밤새 울었다고 한다.
“제가 자식 둘 데리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여기까지 와서 일하고 있는데 어찌 어린 제시카 말만 듣고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지... 저를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점잖게 말하는 매니저의 말을 듣는 아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쥐도 다 들었을 텐데 쥐구멍엔들 들어오게 하겠는가,
그러게 내가 말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쯧쯔, 어디 사람이 없는 밀림 속에 들어가서 살던지 해야지 원, 아내는 큰 실수를 했다며 반성하는 빛이 역력했다. 매니저가 말해줬기에 아내는 반성을 할 수 있었고 안젤리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함구한다는 것은 누구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걱정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정말 걱정이 된다면 좀 더 살펴보면 되는데 그것은 귀찮고... 귀찮다면 그냥 입 닫으면 되는데, 좌우간 그게 여간 힘든 게 아닌가 보다.
뉴질랜드에 살아가면서 말들은 조심하여야한다. 길모퉁이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든,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든... 이 말이든 저 말이든 다 조심하여야 한다. 말조심을 하지 않으면 언제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날지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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