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천방지축 신림동 땡칠이​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정윤성
웬트워스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김준
박기태
채수연
Timothy Cho
EduExperts
이주연
Danielle Park
들 풀

28세 천방지축 신림동 땡칠이​

0 개 1,778 오소영

32747e8168419d66fa96197c79efc915_1524549057_0913.jpg
 

가을비 촉촉히 내리는 날 따끈한 커피 한잔 들고 무료히 창가에 앉으니 별별 일들이 다 떠오른다. 

 

반세기도 전에 살았던 신림동의 한 세월이 떨어지는 빗속에서 스멀스멀 눈 앞으로 기어나왔다. 지금은 명문대 ‘서울 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신림동’을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지방 곳곳에서 수재로 잘 키운 자식들을 소 팔고 논팔아 올려 보낸 곳. 쪽방 눈물겨운 고시촌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곳도 바로 신림동이다. 

 

내가 신림동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66년도. 서울대학 캠퍼스가 생기기 전이었다. 관악산 줄기밑에 신림천을 낀 조용한 마을. 무한히 펼쳐진 논과 밭 저 쪽으로 그냥 시골스런 동네였다. 그 때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는지? 개발의 바람이 솔솔 불어와 술렁거리고 있는 듯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아직 없었지만 허허지벌판. 논과 밭이 정신없이 팔려 주인이 바뀐다고 했다. 내가 집을 얻어 이사간 곳은 푸른 밭도랑 사이로 지어진지 얼마 안되는 새 집이었다. 시장이 있는 동네에서 좀 떨어져 조용한 외진 집이었다. 판장이 얌전하게 돌려쳐진 집 앞 마당이 반듯하게 제법 넓어 시원했다. 아이가 놀긴 좋았지만 썰렁한게 좀 그랬다. 안채에는 세간사리 하나 없는 빈 집으로 황량하기까 지 했다. 남자 주인이 혼자서 잠만 자는 집이라니 독채같이 쓸 수가 있었다. 편한건 좋았지만 너무 심심해서 대화 할 사람이 그리웠다.

 

해가 저물고 어두워지면 번쩍이는 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새까만 쎄단에서 내리는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그가 이 집의 주인이었다. 저리도 어린 청년이 이 집의 주인이라니... 저런 고급 자가용에?... 너무나 놀라웠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골프채 란걸 보았다. 이른아침 산뜻한 골프웨어로 폼을 잡으며 긴 가죽가방을 차에 싣는데 그게 골프 가방이었다. (참 멋지네...) 도대체 그의 정체가 뭘까? 의아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는 윗 동네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란걸 얼마 후에 알게됐다. 부모님과 가족들, 형제들 가운데 막둥이로 이제 나이 스물여덟 이라던가. 농사를 지으면서 대학도 못 다니고 건달처럼 지내더니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단다. 

 

묵직하게 돈다발 싸들고 땅 사러 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뉘 집 논 밭이 어느 것인지 훤히 알고 있어 발빠른 업자들에게 정보 제공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땅 주인을 설득해서 팔아주며 소개비를 챙겼다. 차츰 그들의 수법을 배우고 따라 계속해서 되팔기를 거듭하면서 많은 돈을 움켜쥐었다. 젊은이는 온 세상이 자기 손 안에 있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집도 사고 차도 굴리면서 허영끼를 맘껏 뽑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다행이련만. 그들은 밤마다 나이트클럽에서 돈을 뿌렸다. 홀 전체를 빌려 셧터문 내리고 밤새 뒤엉켜 광란의 밤을 보내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가끔씩 내려와 집도 둘러보고 아들 근황을 물었다. 

 

“아드님이 대견하시죠. 어린 사람이 이런 집도 마련했으니...” 

“송충이가 솔 잎이나 먹어야지. 철 없이 어쩌려고 저러는지.” 

 

어머니는 이맛살을 찌프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돌아갔다. 땀도 안 흘리고 쉽게 번 돈이 오래 갈리 없다는 진리를 이미 아는 분이었다. 땅을 믿고 자연의 이치를 아는 농사꾼이었다. 어느 날, 부티나게 몸치장을 한 중년의 여인이 주인 남자를 찾았다. 동행한 아가씨는 딸 일까? 지적으로 보이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집 가까운 사무실에서 먼 발치로 손님을 알았을텐데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갑잖은 손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쩐 일인지 요즘은 골프도 안 치러 가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앞마당에 서 있던 시커먼 차도 안 보이는지가 좀 되었다. 

 

“저 장가 갑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한마디 툭 던지고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전과 달라보 였다. 어깨가 처져있다고 느꼈다. 

 

그 날 오후 시끌벅적 혼수 실은 차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신부가 얼마 전에 보았던 그 아가씨였다. 아이들 장난도 아닌 인륜지 대사를 왜 그리 서둘러 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여자가 임신이라도 했나?) 으리번쩍 고급 가구며 가전제품들 혼수가 짭짤하고 많았다. 그들은 그렇게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반년남짓 되었을까? 

집 마당에 트럭이 들이닥쳤다. 살림이 모두 다시 실려나가는데 인부들 말고는 사람들이 안 보였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분명 좋지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전셋돈도 못 받고 쫓겨나는게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그건 내 기우였다. 여자가 떠나버린 빈 집이 전보다 더 썰렁 해 졌을 뿐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 버린 여인.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젊은이를 억지로 사위로 연을 맺은게 여자 어머니의 큰 실수였다. 

 

미친듯이 손에 쥐어지는 지폐뭉치에 얼떨떨하게 취해 사는 젊은이었 다. 부잣집 딸을 주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그 어머니가 싫었다. 결혼같은 것 생각 해 본적도 없다. 그냥 술김에 한번 놀아본 것 뿐인데... 책임지라는 경고가 발목을 잡았다. 겁을 먹고 결혼을 해야만 했다. 

 

형편이 기울기 시작한 시기였다. 한 여자를 책임질 아무런 자신도 능력도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여자가 제 스스로 돌아가도록 방법을 생각했다. 그 남자는 여인을 괴롭혔다. 밤마다 취한척 담배불을 손닿는 그녀 몸에 아무렇게나 비벼껐다. 집 가진 신랑에 호화 혼수로 신혼을 살아가는 부부는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부러운 마음일때 그녀는 비명도 못 지르고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는걸 알았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지만 이런 변고가 있을줄이야... 새 색씨답잖게 늘 어두운 표정으로  먼 하늘만 바라보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녀가 떠나가던 날이 칠석 날이 었다. 안타까운 속사정을 알고부터 마음이 아퍼 동생처럼 다독이며 잘 살기를 빌어 주었는데... 하필이면 견우직녀가 반갑게 만난다는 칠석날에 그들은 헤어졌다. 

 

초승달이 어렴풋이 내려앉은 빈 마당을 들어서며 남자가 하던말이 귀에 맴돈다. “아...이, 시원해라! 드디어 가 버렸네.”그는 자기의 앞날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곧 ‘땡’하고 마지막 종을 치고 땡칠이로 돌아간다는 것을. 치사하지만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여자를 돌려 보내야만 했다. 그 남자의 최선이고 양심이었다. 

 

남자는 초년인생 일막을 그렇게 끝내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버는 돈보다 쓰는게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일찌감치 깨닫게 해 준 신림동 엘레지의 한 구절이었다. 

 

문득 내려다보니 마시다 남은 커피 잔이 싸늘하게 식어있다. 비는 언제 그쳤는지 구름을 헤짚고 가느다란 햇살이 커피잔에 앉아있다. 

그녀, 영화배우의 딸

댓글 0 | 조회 467 | 2025.06.25
옆집에 사는 지은이네가 이사 온지도 어언 일년이 지났다. 대학생 지은이는 큰 딸과 친구가 되어 저를 언니라 부른다고 했다. 동생이 하나 더 생겨 좋다나.엄마와 세… 더보기

영순씨가 시집간 컵라면 사랑

댓글 0 | 조회 328 | 2025.05.28
10월의 나드리가 심난했다. 찬란한 햇살속에서도 바람이 맵고 차가웠다. 방한복으로 두툼하게 입고 외출을 서둘렀다.밖에 나오니 안에서의 생각보다 더 추웠지만 낮기온… 더보기

떡!... 먼 추억, 가까운 그리움

댓글 0 | 조회 443 | 2025.04.22
떡이 보이면 밥 내놓고 먹는 사람이 있다는게 좀 우습지 않은가. 온갖 먹거리 풍성한 이 시대에 여전히 떡이 좋은 사람은 틀림없는 떡보일 것이다.내가 어렸을 적에는… 더보기

찬란한 배신

댓글 0 | 조회 499 | 2025.03.25
<미수(米壽, 88세) 기념작> - 단편소설주말 늦잠을 자던 시연이 눈을 떴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뭘 이렇게 일찍부터 지지고 볶을까?… 더보기

시애틀에서 온 손님

댓글 0 | 조회 391 | 2025.02.25
<미수(米壽, 88세) 기념작> - 단편소설기내에 오르자마자 좌석을 확인하고 짐칸에 짐을 챙겼다. 잽싸게 먼저 자리를 잡은 석규가 어서 앉으라고 눈짓을… 더보기

남대문 시장을 추억하다

댓글 0 | 조회 512 | 2025.01.29
최근에 어느 유튜버가 올린 남대문 시장 영상을 보게 되었다.그 것을 마주하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향집 소식을 접한것처럼 반가웠다.남대문 시장은 그… 더보기

크리스마스 2010

댓글 0 | 조회 470 | 2024.12.17
드디어 그녀가 왔다.공항 대합실 많은 인파 가운데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우리는 금방 찾아냈다. 굳게 껴안은 가슴으로 따뜻한 서로의 숨결이 교차했다. 살아있어서 … 더보기

전하지못한 이야기 ‘해금강’

댓글 0 | 조회 414 | 2024.11.19
지인 j 님께!H 여사와 우리 셋이 모이면 노후의 삶을 어디에서 살면 좋겠냐는 말을 자주 했었지요.서울에서 나고자라 나이먹은 사람들끼리 시골살이를 동경하는 막연한… 더보기

지팡이 짚고 해탈(解脫)?

댓글 0 | 조회 415 | 2024.10.23
유난히도 햇볕 찬란한 지난 6월 어느 날이었다.기분도 가볍게 외출채비를 하고 나섰다. 얼마쯤 걸었을 때 였다. 한쪽 다리에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 더보기

영원한 사랑의 메신저

댓글 0 | 조회 416 | 2024.09.24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빨리 집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공항에서 집으로 달려갈 동안 언니는 지하철 타고 버스 갈아타며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고… 더보기

어떤 인연

댓글 0 | 조회 714 | 2024.08.27
촘촘한 연립주택 단지안, 새까만 쎄단이 경사진 거친 길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자가용에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햇볕을 … 더보기

친구처럼, 연인처럼, 오랜지기들

댓글 0 | 조회 1,281 | 2024.07.24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장례 예배는 끝났다.90을 살다 가셨으니 호상이라고 누구 한사람 서러워 하는 이도 없다.인생의 허무랄까 알수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더보기

6월의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 . .

댓글 0 | 조회 677 | 2024.06.26
계절은 한치의 어김이 없어 또 다시 6월을 맞이하게 되었다.우기(雨期)다운 질척한 겨울이여서 더 음산하고 어두운 나의 6월이다.“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더보기

창 밖은 아파트

댓글 0 | 조회 1,082 | 2024.05.28
지금도 변함없지만 이 집에 처음 입주했을 당시 뒷편 큰 도로 주변은 어수선했다. 주유소부터 목공소, 침대공장, 무슨무슨 모터스며 공구상, 자동차 판매점까지 무질서… 더보기

어떤 종이컵 모닝커피

댓글 0 | 조회 1,075 | 2024.04.24
이른아침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서두른다.평소에는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겸해서 느직히 아점을 먹는다. 그런데 꾸역꾸역 밥을 먹으려니 고역이었다. 빈 속으로 나갈수 없… 더보기

참으로 좋은 삶, 늦복에 있네

댓글 0 | 조회 858 | 2024.03.26
처음 영정사진을 찍었을 때가 육십대 후반 칠순을 목전에 두었을 즈음이다.친구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데 나는 사실 가고싶지 않았다. 마음은 아직도 새파란 청춘인데 영… 더보기

잃었던 정서(情緖)를 마주하던 날

댓글 0 | 조회 849 | 2024.02.27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 . . .또 한 날 선물로 받은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어영부영 보내기엔 불안하고 괜스레 죄스럽다. 컴퓨터 앞에 앉아 몇자 쓰… 더보기

지워지지않는 이름, 그녀 ‘레베카’

댓글 0 | 조회 1,420 | 2024.01.30
내게 북유럽 패키지 여행은 아무래도 ‘러시아’가 핵심이었다.동행하자는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내 귓전에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정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여기는 지… 더보기

그의 끝나지 않은 사랑

댓글 0 | 조회 1,063 | 2023.12.22
그의 아내는 장난끼 많은 남편 곁에서 늘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어릿광대처럼 아무에게나 장난을 걸어도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지없이 행… 더보기

어그부츠와 미나리 형님

댓글 0 | 조회 909 | 2023.11.28
아직도 그 전화 번호를 잊지 않고 있다.833 8X8X 누르기만하면 자즈러질듯 반가워 하시던 그 형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 것 같다.전화 한 통화가 뭐 … 더보기

비목(碑木)을 노래하며, 2023년.

댓글 0 | 조회 924 | 2023.10.25
<초연이 쓸고간 깊은계곡 깊은계곡 양지녁에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먼~고향 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궁노루 … 더보기

‘청어’ 신선한 열정, 멋지다

댓글 0 | 조회 1,037 | 2023.09.27
봄이 문 앞에서 서성대며 보챈다. 어서 반갑게 맞이해 달라고 . . .오늘아침 단장님 굿모닝 톡에도 봄소식이 묻어왔다. 고목에 새 순이 돋아나니 우리도 힘내자는 … 더보기

발 동동 4시간....

댓글 0 | 조회 2,124 | 2023.08.23
맹_꽁이 멍_청이.내가 스스로에게 붙여 마땅한 조롱이고 별명이다.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망서리다가 햇볕이 반짝 보이길래 산책 나갈 채비를 서둘… 더보기

그들 마음의 온도는 몇 도 일까요?

댓글 0 | 조회 918 | 2023.07.25
찬란하던 해가 서산마루로 기울어간다. 황금빛 노을로 불타던 하늘이 서서히 검푸르게 변해가면서 어둠이 내려앉는다.기다렸다는듯 검은 장막속에서 남십자성이 아주 가깝게… 더보기

기쁨조 전령들아! 잠을 깨다오

댓글 0 | 조회 1,229 | 2023.06.27
그 날이 그 날이라고 평범한 일상을 투정했던 날들이 있었다. 비젼 없는 삶이 나름 따분하다는 불평이었다.그게 바로 한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음이었다. 세월앞에 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