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걸 왜 배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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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걸 왜 배워야 하는가

0 개 1,947 김준

매년 이맘때면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이 한 해 동안 공부할 과목을 정하느라 고민하곤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전공선택의 고민에 머리가 묵지근할 것이고 이제 겨우 intermediate를 마치고 college에 올라가는 어린 학생들도 도통 감잡기 어려운 과목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로에 선 학생들 중 많은 수가 피해 갈 수 없는, 어찌보면 강압적이라 볼 수도 있는, 과목선정의 테두리에 간혹 당황하기도 하고 종국엔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갈 인생의 방향은 이미 설정되었는데 왜 전혀 관계가 없는 과목을 ‘억지로’수강해야만 하느냐 하는 것이 그 주요 골자 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자신은 경제학자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설 꿈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되기 위해 공부해 오고 있는데 왜 전혀 관계가 없는 생물을 수강해야 하느냐 하는, 일리 있어 보이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각 교육과정의 특성상, 그리고 학교의 방침상, 어떤 학생은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과목이 있는가 하면 기를 쓰고 피하려 하지만 지침의 굴레에 얽매여 꼼짝없이 교실에 들어가 앉아야만 하는 과목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희망과 꿈이 있으니 그에 적합한 과목만 수강하게 한다면 참 좋을텐데 심지어는 대학 진학 원서를 쓰는 과정에도 고교시절 수강과목에 따른 제한이 존재하니 뭔가 심사가 뒤틀릴만한 상황이라며 이해해 줄 법도 합니다. 

 

학생들의 주장과 같이 한 개인에게 꼭 필요한 지식만을 가르치고 그들이 습득한 지식을 십분 발휘 할 수 있는 직업을 알선해 주자.. 라는 교육 사조를 우리는 교육 실용주의라고 부릅니다. 좀 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부분을 교육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자는 취지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리 실용성에만 목을 매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문 제이지요. 

 

사실 지금 당장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아도 실용성에 입각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인간활동이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닌 혹은 누군가의 지갑을 열게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지는 못하는 그런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막연한 동경을 품게 하고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호감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현상들.. 

 

이러한 비실용적 인간 활동의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예술’활동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아주 버르장머리 없게 말한다면 먹고 입고 생존하는 일에는 직접 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기에 실용적인 측면으로는 ‘무가치’에 가까운 행위가 예술활동이라 혹평할 수 있겠습니다. 예술을 하시는 분들 또한 자신들의 작업이 ‘실사구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님을 당연히 인정하시기도 하니 억지주장은 아닐텐데요.. 

 

예술이 주는 실용적 혜택이 거의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들의 음악에, 춤에, 그림에, 사진에 웃고 웃으며 박수를 보냅니다. 아마도 예술가들의 혼을 불사르는 ‘표현의 욕구’에 철저히 동조하며 눈물이 찔끔 솟는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실용적 측면보다는 비실용적 환상에 더 마음을 뺏기게 되는건 아닐까요.. 

 

이것은 마치 인간의 삶이 실용적인 측면의 추구만으로 영위될 수 없다는 반증인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기본적인 본성에 예술을 추구하게 하는 표현의 욕구가 있다면 또 다른 한 가지, 지식의 범위를 넓히고 확장하고자 하는 배움의 욕구가 있습니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야 ‘배움’이라는 현실이 버겁고 괴로운 고통일 수도 있기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겠지만 이미 오래 전 무언가를 배워 알아 가는 자기 향상의 희열에서 ‘졸업’하신 어른들에겐 ‘공부’야 말로 지나온 삶의 가장 큰 보람이며 동시에 가장 큰 후회일 것입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배움의 욕구 때문임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만약 공부라는 활동에 철저한 실용주의적 사고를 덧입힌다면 각급 학교의 교육 과정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 낭비일 것입니다. 애먼 아이들을 모두 앉혀놓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기능’에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교양’따위를 가르치다니요...  대신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를 분석하고 성향을 파악해 적절한 미래 직업을 설정해 준 뒤 그에 필요한 내용과 기술만을 학습시킨다면 그야 말로 효율적이고 전문적일 것임이 분명할텐데 말이지요. 

 

만약 그런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개인의 전문성은 극대화 될 것이고 삶의 만족도 또한 급격히 향상될 것이며 천직에 종사하는 인구가 늘어갈수록 사회는 더 안정되고 조직적이 될 겁니다. 그야말로 실용주의의 극치를 누리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 글을 읽으시는 그 어느분도 위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기를 원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오히려 조금은 덜 효율적이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비 전문성의 낭만을 누리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이미 삶을 통해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프로 작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한 장 한 장 찍어 모아놓은 사진들에 가슴이 뿌듯한 트럭 운전사나 주말이면 대패를 들고 몇 날을 끙끙대더니만 도마 하나 겨우 만들어 아내에게 안겨주는 주말 목수 회계사처럼 우리는 비전문적이고 비효율적인 삶의 한 장면에서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고는 이미 고대 그리스시대에 완성되었습니다. 당시로부터 시작된 학교라는 교육시스템은 놀이를 뜻하는 ‘파이디아’에서 시작해 학교 교육을 뜻하는 ‘파이데우시스’를 거쳐 전반적 국민교육을 일컫는 ‘파이 데이아’로 발전했습니다. 

 

배움이라는 활동 자체가 유희를 추구하는 본능과 그 근저를 같이한다는 그들의 사고를 짐작케 합니다. 

 

또한 이 ‘파이데이아’라는 단어는 고대의 석학들에 의해 ‘국가관’자체를 의미하며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결국 고대 그리스에서 국가란 국민 전반에 대한 교양 교육과 인격 도야를 목표로 하는 단 체를 의미했다는 뜻이 됩니다. 

 

학교 교육의 시초가 이러하다 보니 현재의 학교 시스템 또한 전방위적인 학습기회의 제공이 그 근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글 초반에서 언급한 자녀들의 불평과 불만, 혹은 비효율적인 학교의 처사에 덩달아 울분을 토하시는 부모님들도 많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향후 몇 년치의 학습 과정을 이미 디자인 해 놓고 계획대로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가는 학생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저 또한 간혹 제 아이들이나 학생들을 통해 학교 측의 얼토당토 않은 학사운 영을 전해들을라 치면 속이 상하고 분통이 터지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받아 들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꼭 듣고 싶은 과정을 듣지 못한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억지 수강을 해야 하는 경우, 혹은 향후 대학 진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오류가 아니라면.. 어린 마음에 품고 있는 좁다라한 소롯길을 벗어나 세상의 많은 일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열고 무엇인지 알지 못해 듣지 못했던 소리에도 한번 귀를 기울여 보는 기회를 삼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원하지 않는 과목을 들으며 교실에 앉아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오늘이 아닌 내일의 시간에 이러한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할수 있다면 과연 어떨까요. 

 

지식의 우물을 깊게만 파 들어가다가 결국 그 안에 갇히고 마는 외골수가 아닌, 깊지만 넓고 단단하지만 너그러운 지식의 토대를 쌓아 자신과 남을 두루두루 이롭게 하는 새로운 젊은이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습득한 지식을 자신만의 소유로 주장하기 보다는 사회 전체의 전반적 인격 향상을 꿈꾸며 대화와 활동을 통해 지식이 선순환을 일구어가는 푸른 청년들.. 

 

아는 만큼 자라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만큼 자라나고 전문성을 통해 성장해서 다양성을 통해 성숙하는 내일의 어른들... 

 

오늘 이 시간.. 마땅치 않은 과목 선정의 답답함을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 풍요로운 삶의 기반으로 삼는 지혜가 우리 아이들에게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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