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그의 성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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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그의 성공이 있다

0 개 1,185 김준

연일 날씨가 점점 더 더워져 간다. 날이 추우면 추운대로 싸늘한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아이들이 떠오르고 날이 더우면 더운대로 솟아나는 땀방울을 훔쳐가며 책을 파고들던 아이들이 떠오르지만 이렇게 무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지지리도 말 안듣던 학생 한 명이 떠 오른다. 몇 년전 이맘때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훌쩍 유럽 어디론가 떠나 버렸던…

 

N과 처음 만나는 자리.. 필자는 학생의 시큰둥한 태도에 적잖이 놀랐었다. 옆에 앉으신 어머님의 적극적인 자세와는 달리 세상 만사가 귀찮아 더 이상 아무것에도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듯 먼산을 보다가는 하품을 쩌~억 입이 찢어져라 하는 통에 엄마에게 등짝 스메쉬를 당하는 아이..

 

내가 이 아이를 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동급생들보다 나이도 많았고 (그 이유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어딘지 대학 복학생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동류들 사이에선 알 거 다 아는 세상사에 박식한 형으로 불릴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 

 

어머니의 닥달 때문인지 아니면 그래도 대학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어찌됐건 우리는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부를 같이 하기로 결정을 했고 잘되게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잘 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채 긴 여정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의지박약 학생들이 그러하듯 N 또한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 핑계 저 핑계로 숙제를 거르기 시작하더니만 반 년쯤 지나자 어머님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수업을 빠지거나 시간을 변경해 달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하지만 정작 아이의 정신자세를 교정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할 어머니조차 학교에서는 수업조차 듣지 않는 것 같으니 그저 진도만 따라가게끔 도와달라는 입장이셨고 한 번 맡은 학생은 절대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는 평소의 원칙이 뒤통수를 당겨 시간낭비와도 같은 수업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수업을 시작한지 근 일년이 지났다. 가랑비에 옷이 젖고 낙숫물에 돌이 패인다고 했던가.. 한 달에 한번은 꼭 수업을 빼먹고 숙제는 그저 메아리 없는 외침인 듯 한번도 내 손에 돌아온 적이 없었건만 N의 성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변화라고 해 봤자 ‘중하위’에서 ‘중상위’ 권으로 진입하는 정도이긴 했지만 시험 전에 벼락치기도 해 본 적인 없던 N이 평소의 나태한 모습 그대로 시험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올라가자 드디어 입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년은 이미 Y13.. Final Exam을 3개월 남겨놓은 시점에서 듣는 ‘공부 좀 하겠다’는 말이 그리 칭찬을 해야 할 정도로 대견하게 들리지는 않았던 듯 하다. 

 

그 때도 날이 이렇게 더웠다. 해질 무렵이라서 선선해지긴 했지만 아파트를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얼굴에 송송한 땀방울들을 한 번은 훔쳐내며 숨을 돌려야 할 정도의 더위가 남아 있었다. 유학생 모자의 단촐한 살림이 전부인 조그만 아파트에 들어서니 N의 어머니가 불안한 얼굴로 맞이 하신다. 등 너머 뒷편 베란다에는 벌써 어스름 한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N의 뒷모습이 점잖게 담배연기를 피워 올린다. 

 

아마도 어머님께서는 선생님 오실 시간에 담배 피고 서있는 아들의 모습과 그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민망하셨나 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N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어렵게 살려낸 미래에 대한 희망과 또 발목을 잡고 있는 시간 사이의 갈등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 했다. 

 

풀풀 피어나는 담배냄새를 쩍쩍 껌 냄새로 대충 가려가며 그 날 우리는 처음으로 대학진학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 처음으로 N의 고분고분한 모습을 본 것 같았고 또한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후회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날 이후 3개월 여간의 시간 동안 N은 지난 몇 년간 쌓아왔던 후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내려는 듯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시험을 준비했고 또 한편으로 자신이 입학할 수 있을만한 대학들을 찾아 유럽과 아시아권을 뒤져나갔다. 

 

Final exam. 

 

필자는 지금도 그의 점수를 모른다. 그가 정확히 어느 대학에 원서를 냈는지도 모른다. 단지 시험이 끝난 후 후배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둥, 한번 집합을 걸어야 하겠다는 둥.. 지극이 그 다운 발언들을 흩날리고 다녔다는 후배들의 푸념을 들었고 정작 제대로 큰 소리 한번 쳐 보지 못한 체 시간에 쫓겨 독일의 한 대학으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이 곳을 떠나며 N은 스스로의 고교시절을 어떻게 평가 했을까.. 적어도 그에겐 그 만의 성공이 있고 결국엔 목표를 달성했다며 뿌듯해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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