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땐 피켓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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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땐 피켓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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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신 김치 한가지하고 밥을 주더라도 아이고 ~ 어쩌면 김치가 이렇게 맛있게 셔 터졌어, ~ 좋은 쌀도 아닌데 밥 요리를 어쩌면 이렇게 맛있게 잘했어, ~ 반찬이 필요 없네, 맨밥만 먹어도 두 그릇은 먹겠어, ~ 이렇게 말하고 살아도 내 명대로 살아갈지 모르는 데... 나는 오늘 저녁을 먹다가 그만 밥숟가락을 놓고 마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정직한 것은 운명을 재촉하는 지름길이라고 한국정치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 나는 너무 정직해서 항상 문제입니다. 아들이 오늘 회사 끝나고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해서 아내는 아예 아무 반찬 준비도 안하고 그냥 한 끼 때우자고 말하더군요. 아니, 내 주둥이가 뭐 구멍 난 양은솥이야~? 때우다니... 밥풀만 밀어 넣어 주둥이를 때우라고??

그리고 신 김치 통 하나 꺼내 놓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밥통의 밥을 덜그덕 거리며 퍼주며 또 잔소리...

"당신이 한국에서 밥통을 잘못 사왔어. 밥통같이..."

작년에 한국 갔을 때 밥통을 사오래서 이마트에 갔더니 예쁜 아줌마가 신제품이라고 무지 좋다고 해서 사왔거든요. 밥통의 설명서나 읽어보고 사용하는지 원... 김치가 시어도 왜 그렇게 맛대가리 없이 셔 터졌는지, 신맛에다 짠맛, 쓴맛까지 참 못되게 셔 터졌습니다.

아내는 직접 숙련된 조교처럼 시범까지 보입니다. 셔터진 김치 한 가지를 놓고 짹짹짹 밥을 퍼 넣으면서

"아이고 김치가 왜 이렇게 맛있어~ 김치 한 가지만 갖고도 밥을 백 그릇은 먹겠네, 아이고 맛있어~~~"

아니, 이 아줌마가 언제 북한 아오지 탄광에서 탈출해 온 거야... 우리 집이 난민수용소였네...

양념이나 해서 볶은 김치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 말해도, 뭐 볶은 김치를 만들면 김치가 헤프다나요. 그래서 못 먹게 하려고 일부러 김치를 짜게 담나? 아예 굶기지 그래~ 밥은 뭐하러 주고 그래... 또 밥숟가락 뜨기도 전에 '그냥 먹을 만하지? 응?'하고

물어 보는 심보는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재탕, 삼탕에 고기가 팅팅 불은 국을 데쳐 주면서도 '괜찮지 응?' 하고 꼭 물어 봅니다.

새로 만든 반찬이 있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난리가 납니다. 맛있다고 대답하면 얼마만큼 맛있냐고 또 묻고, 지금까지 먹어 본 반찬 중에서 최고야~ 이 말을 해줘야 아내의 입이 다물어 지는데, 결국 거짓말을 해줘야만 흡족해 하는데, 여기가 뭐 정치판야~

반찬 몇 가지 나오면 일일이 다 물어 보는 통에 언젠가 아들에게 피켓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밥 먹을 때마다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해 줄려면 입에서 밥풀 튀어나오고 건더기도 튀어나오니까 위생상에도 좋을 것 같아 피켓을 만들자고 한 것입니다. 쥑인다, 맛있다, 괜찮다, 그렇다, 이렇게 4가지로 요약했습니다. 별로다, 못 먹겠다, 이런 말은 밥 안줄까봐 아예 빼버렸지요. 음식 맛을 물어 보면 얼른 피켓을 드는 거지요. 아들의 의견은 '쥑인다' 라는 피켓은 써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면서 빼자고 말하더군요. 하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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