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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구십 세이신 할머니가 사고를 쳐서 미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 연세에도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고 밖으로 나다니시며 이것저것 다 참견하시고 가족들에게 상의도 없이 여행을 다니시곤 하는데 최근에는 백두산에 다녀오셨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것이 바로 백 세 시대임을 입증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가 곁에 계시다는 것이 어찌나 부러운지 한동안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요즘은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도 자식들에게 의지하거나 집안에 가만히 있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의 자기계발이나 취미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 중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이 역시 무용, 음악, 문학, 미술, 서예 등의 예술 활동인 것 같다. 또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때도 있고, 맞벌이하는 자식들을 위해 조부모가 육아를 도와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또 문제가 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적당히 노인들도 일을 하고 인정을 받고 스스로의 자존감과 만족감을 찾아가는 일은 분명히 필요하다.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죽음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독일 여행 중 동화가도의 마지막 여정으로 들른 브레멘이 이 시간 몹시 그립다. 그냥 그 길을 혼자 터덜터덜 걸으며 돌아다니기만 해도 행복할 것만 같다. 우리의‘브레멘 음악대’네 주인공들의 귀엽고 힘 있어 보이는 동상과 그 동상 너머의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 그리고 광장이 추억 속에서 아련히 떠오른다.
주인공들이 결국 브레멘에 도착하지 못하고 산속의 집에 머물게 되었지만, 그들이 왜 브레멘을 목적지로 정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아름다운 도시였고 그 도시 자체가 예술이기도 했다. 언젠가 또 브레멘을 방문하여 그 도시의 예술에 흠뻑 취해 한자락 퍼포먼스라도 떨어트리듯 비틀거리며 거리를 거닐고 싶다. 그때는 쫓기듯 떠나는 여행자로서가 아닌 좀 더 여유 있게,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해.
송영림 소설가, 희곡작가, 아동문학가
■ 자료제공: 인간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