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 별곡 (父女 別曲)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부녀 별곡 (父女 別曲)

0 개 2,369 오소영

이제 여기 여름도 한국처럼 덥다고 느끼며 무더위 속에서 한 여름을 보냈다.

 

뙤약볕에 불화로처럼 달아오른 어느 일요일 오후.   

 

서늘한 바람 그늘이 그리워 고목으로 울창한 ‘파크’으로 달려갔다.

 

불볕에 둘러앉아서 게임을 하는 강심장의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거의가 나무밑을 차지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적한 겨울에 와 보면 인적이 드물어 카페는 폐점으로 차 한잔 마실 곳도 없던데...  

 

새로 생긴 카페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느긋하게 자리에 앉으니 어느새 더위는 저만치 사라져 갔고. 과연 휴일다운 풍경으로 갖가지 사람들 노는 모습을 구경 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키가 장대처럼 후리후리한 남자가 어깨위에 서 너살 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를 무등 태우고 카페 진열장 앞에 서 있다.

 

카페에선 거의 처음 보는 색다른 손님이라 눈길이 그들에게 머물렀다.

 

이것 저것 손가락질로 가르키기도 하고 무언가를 집어서 머리위로 치켜들며 연신 아이에게 주는 시늉을 하는데 아이를 웃기려고 하는 제스츄어 같았다.

 

“재밌는 아빠네...” 

 

나 말고도 보는이들이 재밌어 하는데 웬 일인지 막상 아이는 관심 없다는 듯 딴청으로 시선이 먼 곳에 가 있다. 

 

(뭣 때문에 저리도 화가 나 있을까? ) 

 

바깥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그 남자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바쁘게 주문을 하고 돌아서서 나가는데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아이를 그렇게 무등태우고 많이 돌아다닌 행색이 뚜렷했다.   

 

수건을 적셔 손이며 얼굴을 닦아주고 먹을걸 날라오며 아이의 비위를 맞추려 무척이나 애를 쓰는 그 남자. 아이는 계속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다. 차라리 울기라도 했더라면 뭔가 불편해서 그러러니 할텐데 그냥 물끄러미 표정없이 앉아만 있는게 너무 이상했다. 아마 잠에서 덜깬 아이를 아빠가 엄청 귀찮게 하는 모양인가 라고 생각되었다. “저 애는 꼭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네” 문득 그런 말이 절로 나왔고 괜스레 웃음도 나왔다.   

 

그런 아이 앞에서 몸짓으로 계속 재롱떠는 아빠가 민망해서 시선을 돌리고야 말았다.

 

“괜한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고 커피나 드십시다” 정말로 싸늘하게 식은 커피를 마셨다.

 

나무 그림자가 차츰 길게 드리워질 무렵.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 있는 파킹장으로 나왔는데. 키 큰 그 남자가 다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까만 자동차 뒷 시트 쪽으로 허리를 깊이 숙이고 연신 뽀뽀를 보내고 있었다. 운전석엔 머리 희끗한 노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더니 생각난듯 부르릉 시동을 걸었다. 

 

남자는 아쉬운듯 사라져가는 차를 바라보며 한 발작씩 걸음을 옮겼다. 아까 화사하게 웃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땀으로 젖은 옷, 아직 그대로 쳐져있는 어깨, 그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 해 보였다.  

 

(아! 그런거였구나)   

 

나름 상황이 짐작 되었고 혹시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안쓰러움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이혼 부부의 아이가 별거의 아빠를 만나는 날 이었나보다. 아이가 낯도 익히기 전에 헤어졌는지?.... 

 

아이는 아빠가 낯설어 내내 무관심이었고 아빠는 그런 딸이 안타가워 친해지려고 재롱떨고...

픽업을 하신 분은 아이의 외할아버지였을까?

 

돌아오면서 마치 내 일이기라도 한듯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같은 세상 수 만리 밖에서도 얼굴 보며 통화하고 곁에 있는듯 살아가는데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닫혀 있으니 수 만리 밖 보다도 더 멀고 멀구나.

 

아이는 언제쯤 아빠와 정이 통할까?

 

오늘같은 정성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면 아빠의 진심을 알고 마음을 열겠지.   

 

그들 부녀가 오늘밤 내 단잠을 빼앗아 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내 걱정이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잖은가. 부질없는 노파심은 이제 버려야 편하게 살 수 있음을 아는데도 말이다.

 

피붙이의 힘

댓글 0 | 조회 2,583 | 2013.12.24
불을 끄고 마악 첫잠이 들려는 찰나.… 더보기

[332] 9988ㆍ1234

댓글 0 | 조회 2,574 | 2006.05.08
적당히 잘쓰면 좋지만 잘못쓰면 남에게… 더보기

[326] 섣달 그믐날

댓글 0 | 조회 2,566 | 2006.02.13
어제까지만 해도 구름이 오가는 변덕날… 더보기

북유럽 여행기 (스웨덴)편

댓글 0 | 조회 2,557 | 2013.01.31
실야라인(silja line) 크루즈… 더보기

[317] 솔잎 향기 그윽한 추석을 맞다

댓글 0 | 조회 2,535 | 2005.09.28
바람 몹씨 사납던 지난 주말, 추석을… 더보기

Happy new year

댓글 0 | 조회 2,534 | 2012.01.31
2012년. 첫날 새 아침. 현관문을… 더보기

[320] 그 비취에 가면.....

댓글 0 | 조회 2,533 | 2005.11.11
처음에 그 곳을 찾았을 땐 단순히 집… 더보기

[322] 쌍둥이 아빠 고마워요

댓글 0 | 조회 2,526 | 2005.12.12
지치도록 피곤하게 운동하고 돌아와 막… 더보기

빨강 구두 아줌마

댓글 0 | 조회 2,522 | 2017.07.25
밖은 비 바람이 사납다. 오늘같은 날… 더보기

[358] 서울내기 전원에 살다

댓글 0 | 조회 2,515 | 2007.06.13
숨가쁘게 달리던 차가 여주 "세종대왕… 더보기

[329] 천사들의 합창

댓글 0 | 조회 2,515 | 2006.03.27
어제 비맞은 골프가방이 아직도 포켓마… 더보기

마음이 부자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509 | 2016.07.28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이불속에서 오… 더보기

[325] 청계천을 가보고 싶다

댓글 0 | 조회 2,488 | 2006.01.31
해가 바뀌고 나니까 마음도 바뀌나? … 더보기

[313] 바람이 흘리고 간 티끌이겠지…

댓글 0 | 조회 2,486 | 2005.09.28
친정 어머니가 아마 지금의 내 나이때… 더보기

반갑잖은 손님이 저기 또 오시네

댓글 0 | 조회 2,467 | 2015.12.22
집 앞 길가에 나가서 빨간 신호등을 … 더보기

[294] 베티의 웃음소리

댓글 0 | 조회 2,467 | 2005.09.28
무슨 꽃일까? 부스럼 앓는 나무처럼 … 더보기

그날, 버니(Burnie)에서

댓글 0 | 조회 2,458 | 2012.03.28
크루즈 중에 배에서 내리는 날은 언제… 더보기

[328] 잘못된 친절

댓글 0 | 조회 2,449 | 2006.03.14
“아뿔사 그랬었구나”밤에 잠자리에 들… 더보기

미나리, 미나리 강회

댓글 1 | 조회 2,445 | 2012.09.25
지겹도록 비가 내려 지루하기만 하던 … 더보기

‘세익스피어 파크’에서

댓글 0 | 조회 2,423 | 2015.04.30
이민 보따리를 풀고 한참 지나서 처음… 더보기

꽁트 한마당(공선생의 하루)

댓글 0 | 조회 2,407 | 2014.03.26
베란다에 들어오는 햇볕이 눈이 시리도… 더보기

현재 부녀 별곡 (父女 別曲)

댓글 0 | 조회 2,370 | 2016.03.24
이제 여기 여름도 한국처럼 덥다고 느… 더보기

행복의 유람선, 크루즈 여행

댓글 0 | 조회 2,357 | 2019.04.23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머리속에 지워… 더보기

그러시면 안돼죠

댓글 0 | 조회 2,343 | 2012.04.26
“엄마, 이모한테 전화 좀… 더보기

살다보니 이런일이...

댓글 0 | 조회 2,297 | 2022.01.26
온종일 정신없이 일을 해 냈으니 몸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