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 어른의 향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담배 - 어른의 향기

0 개 1,907 한얼
남동생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깨닫고는 있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물론 동생은 왜 이제 와서 그러냐는, 새삼스럽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어느 늦은 저녁, 중국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만, 하더니 주머니에서 꺼내 무는 담배 한 개피. 그 모습에 나는 어째서인지 너무도 충격을 받아, 우뚝 멈춰서 지켜보기만 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 빨아들이고 후 내뱉는 모습이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쳐다보는 시선을 눈치챈 걸까, 동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물었다.
“담배......피우네?”
“뭐? 피운 지 얼마나 됐는데. 왜 그래.”
“아니. 피우는 건 지금 처음 봤어.”
재빨리 상표를 훑어보았다. 던힐 라이트. 아빠가 피우는 것과 똑같은 상표였다. 나는 그만 침묵하고 말았다.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은근히 많은 편이다. 일단 당장 가족만 해도 아빠와 남동생이 피우고 있고, 사촌 동생도 종종 담배를 문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담배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주워들어서 아는 편이다. 멘솔 담배를 커피를 마시면서 피우면 박하 사탕을 먹는 것 같다던가, 향담배는 무엇이며 맛담배는 무엇인지 등등.

아빠는 내가 아는 중 가장 오래된 흡연자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피웠기 때문에 아빠와 같이 살 적엔 집안 모든 곳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빠는 헤비스모커는 아니지만, 하루에 반 갑에서 한 갑 정도를 피우는 것 같다. 아빠한테선 항상 담배 냄새가 난다. 깨끗이 씻고 나와도, 청량한 샴푸나 비누 냄새 아래에 항상 배경처럼 니코틴 냄새가 배어 있다. 엄마는 그걸 ‘찌들었다’고 표현했고, 어른이 된 지금은 나도 그 표현에 공감하는 편이다. 담배 냄새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일종의 낙인 같다.

그런데, 그걸 지금은 나보다도 어린 동생이 피우고 있다니. 조만간 동생에게서도 향긋한 샴푸나 향수 냄새 대신 담배의 찌든 냄새만이 나겠지. 나는 불현듯 슬퍼졌다.

어렸을 때 만나 지금껏 친하게 지내고 있는 언니가 한 명 있는데, 그 언니도 흡연자다. 자기 말로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피워왔다고 하니, 세월만 따져보면 우리 아빠 못지 않은 애연가인 셈이다. 다만 그 언니에게선 찌든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간단했다. 담배의 차이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날 때면 언니는 종종 잠깐 실례한다는 말을 하고 특정 편의점으로 달려가 담배 한 갑을 사오곤 했다. 골초였다. 하루에 한 갑에서 두 갑도 다 피워버린다는 그녀의 담배가 궁금해서 나는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그 담배는 불을 붙이면 익숙한 니코틴 냄새 대신 체리향이 났다. 블랙스톤이었던가, 여하튼 이름도 예쁘장한 외제 담배였다. 장미처럼 어둡고 새빨간 곽이었다. 내가 신기해 하자, 언니는 싱긋 웃으면서 맛보라며 그것을 건네주었다.

“싫어, 괜찮아. 나는 담배가 싫어.”
“그럼 필터만 핥아봐. 단 맛이 나.”

그 말에 나는 호기심이 들어 담배의 필터를 살짝 핥아보았다. 정말로 단 맛이 났다. 학교에서 종종 입에 물고 빠는 흉내를 내곤 하던 담배 모양 사탕 같아, 신기해서 웃어버렸다.

그 언니는 담배를 물고 체리향을 풍기면서, 입으로 연기 도넛을 만들어 보이거나 용트림처럼 길게 올라가는 연기를 퐁퐁 피워 올리곤 했다. 내가 신기해 하며 박수를 치면 씨익 웃었다.

나는 담배는 싫었지만, 그 언니가 정말 멋져 보였다. 나와 나이 차이도 많지 않은데, 벌써 담배를 피울 만큼 세상은 니코틴마냥 지독하다고 말하던 그녀는 내 눈에 어른처럼 보였다.

담배는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게 어른의 상징이다. 세상에 찌들었지만 지쳐도 살아가고 있는 어른.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간에.

레몬 나무 - 행복의 상징

댓글 0 | 조회 2,014 | 2012.10.09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 중에… 더보기

눈물에 대한 생각 몇 가지

댓글 0 | 조회 2,007 | 2015.11.26
눈물이 헤픈 편이다. 사소하고 별 것… 더보기

라디오 - 침묵을 채우는 방법

댓글 0 | 조회 1,998 | 2016.09.28
라디오를 원래 자주 켜놓는 성격은 아… 더보기

인형 - 익숙함과 편안함

댓글 0 | 조회 1,994 | 2014.10.29
인형을 좋아한다. 이 사실 때문에 들… 더보기

장난감 - 어려서도, 커서도

댓글 0 | 조회 1,982 | 2016.09.15
결혼한 사촌네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더보기

아기들 - 가까우면서도 가까이 하기 힘든

댓글 0 | 조회 1,973 | 2014.09.24
싫어하는 것/무서워하는 것 중에 아기… 더보기

추석 -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

댓글 0 | 조회 1,943 | 2015.10.15
한민족의 대명절 중 하나는 추석이다.… 더보기

명동 - 낯섦과 익숙함의 교차로

댓글 0 | 조회 1,922 | 2014.06.10
사실 한국에 살던 때에도 명동에는 한… 더보기

현재 담배 - 어른의 향기

댓글 0 | 조회 1,908 | 2016.01.13
남동생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사… 더보기

초콜릿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3 | 2016.05.12
<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 더보기

부산여행 - 下

댓글 0 | 조회 1,901 | 2014.09.09
부산 여행에서 이런 저런 재미 있는 … 더보기

우주-언젠가 돌아갈

댓글 0 | 조회 1,866 | 2014.06.25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우주… 더보기

길가의 고양이들

댓글 0 | 조회 1,820 | 2016.07.27
뉴질랜드의 거리에는 유독 고양이들이 … 더보기

장신구 - 사랑(받는 여자)의 표식

댓글 0 | 조회 1,798 | 2015.10.29
보석은 사랑 받은 여자의 일생을 상징… 더보기

내 마음의 든든함

댓글 0 | 조회 1,797 | 2012.10.24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 더보기

이사-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

댓글 0 | 조회 1,791 | 2014.12.10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더보기

감기 - 불쾌한 잠복 동거

댓글 0 | 조회 1,789 | 2015.09.10
매년 거쳐가는 연례 행사로는 감기가 … 더보기

할로윈 - 믿고 즐기는 축제

댓글 0 | 조회 1,714 | 2016.11.22
할로윈이 왔다 갔다. 고작 24시간,… 더보기

숲 속을 걸어요

댓글 0 | 조회 1,712 | 2016.05.26
숲 속을 걷는다.대개는 운동 삼아서다… 더보기

동생 - 애매하지만 사랑스러워

댓글 0 | 조회 1,692 | 2016.04.28
동생이란 존재는 애매하다. 자식은 아… 더보기

음악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684 | 2014.02.12
얼마 전에 어떤 노래를 발견했다. 정… 더보기

사진 - 기억하고 싶은 것

댓글 0 | 조회 1,677 | 2016.02.25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더보기

땅도 하늘도 바다도 아닌

댓글 0 | 조회 1,673 | 2013.12.24
땅이냐, 바다냐, 하늘이냐. 그렇게 … 더보기

여행-그리하여 돌아올 따뜻한 익숙함

댓글 0 | 조회 1,661 | 2014.10.15
여행. 이 단어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더보기

해후 - 피하고 싶은 돌발 이벤트

댓글 0 | 조회 1,649 | 2016.07.14
알고 지내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