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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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Ⅰ)

0 개 2,235 박지원
약 혹은 총기류를 쓰지 않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살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목을 매는 자살인 교사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투신의 방법. 노인은 그 두 가지 중 교사를 택하고 싶었다. 중력의 힘으로써 격렬하게 충돌되기보다는 중력을 거스르는 듯하지만- 땅이 자신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으로 죽길 바랬다. 

부우욱. 그리고 노인은, 12월 20일 이후의 모든 일력(日曆)을 손을 들어 찢어냈다.

------------------------- 절취선 ------------------------           
   
올해는 눈이 많이 왔다. 노인의 부인이 묻힌 무덤 위에도, 노인과 부인, 가족이 함께 걸었던 거리 위에도, 노인이 홀로 사는 60년 된 낡은 연립주택에도 허연 눈이 노인의 텅 빈 시간처럼 수북하게 쌓였다. 4층의 오래된 연립주택은 창문이 없는 복도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인은 하늘에서 재처럼 흩날리는 눈발을 지나 3층 복도 끝의 8호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복도의 낮은 벽에는 규칙적으로 조그만 구멍들이 뚫려있었는데, 전쟁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만든 총 구멍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구멍에 서늘한 총열을 들이밀어 붉은 총알을 난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멍인 것이다. 그러나 지어진 지 60년 째, 전쟁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고, 그 총구멍은 그냥 창문도 없는 복도의 바람 구멍이 되어 세월을 통과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낡은 복도 벽처럼, 노인의 가슴에도 광음(光陰)을 통과하는 구멍들이 생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노인의 자식들은 해외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고, 아내는 3년 전에 지병으로 죽었다. 노인은 8호 문을 등지고, 자신 앞에 쏟아져내리는 눈들을 멀거니 보고 있었다. 이내 한숨과 함께, 입고 있던 쥐색 파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열쇠를 찾아냈다. 열쇠구멍. 언제인가부터 문을 열 때마다 열쇠구멍이 뻑뻑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열쇠가 들어가긴 하는데, 잘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간다고 해도 한 번 더 아귀에 힘을 넣어 돌려주어야만 문이 크게 심호흡을 하듯 덜컥, 열리곤 했다. 갑작스레 열린 8호의 문을 통해 노인은 늘 그렇듯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과 방에 높이 차를 두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인지, 신발을 벗은 노인은 항상 자신의 무릎을 크게 들어 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방으로 들어가면, 늘 그렇듯 퀴퀴한 노인의 냄새와 라면냄새, 김치 익는 냄새가 TV소리와 함께 자신을 덮쳐오고는 했다. 외롭지 않기 위해 늘 TV를 켜놓는데, 그것이 요즘 들어 노인을 조금씩 더 외롭게 만들곤 했다. 색이 바랜 장판을 터벅터벅 걸어들어가, 머리와 천장이 닿을 듯 말 듯한 방에서 노인은 파카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그 옷걸이를 다시 못에 걸어두었다. 노인은 방에 앉아 왁자지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TV를 보다가, TV 앞의 개다리소반 위의 먹다만 라면을 보았다. 면발이 외롭도록 쪼그라들은 라면은, 노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요리였다. 노인은, 부인이 자신이 먼저 가면 어떡하냐며 요리를 가르치려 들 때,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한사코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부인의 손길을 잃은 냉장고의 음식들은 하나둘 부패하는 가운데 소주들이 길 잃은 유령처럼 들어찼고, 갖은 양념과 식기들로 가득했던 조그만 찬장은 라면이 그득히 쌓여갔다. 

노인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꺼냈다. 손에 힘을 주어 소주뚜껑을 딴 노인은, 채널을 돌려 낚시채널에 맞추어 놓았다. 한 리포터가 흥분된 목소리로 어탁을 뜨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내 삶으로 저렇게 어탁을 뜰 수 있다면… 노인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젓고는 이내 소주를 마셨다. 18. 햇빛이 들지 않는 불투명한 창문 옆 벽에 걸린 일력이 오늘의 날짜를 커다랗게 표시하고 있었다. 카아아아. 노인은 소주의 열기를 홀로 가래소리로 삭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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