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행 - 下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부산여행 - 下

0 개 1,901 한얼
20140816_142147.jpg

부산 여행에서 이런 저런 재미 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 고작 1박 2일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여행 첫날의 저녁식사였다.

부산의 특산품이라던가 유명한 음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친구에게 국적 상관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친구는 기꺼이 응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한 작은 인도 음식점이었다 (안타깝게도 가게 이름은 까먹었다). 골목에 있어서 핸드폰 네비게이션으로 돌고 돌아 간신히 찾아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정작 인상 깊었던 건 음식보단 그곳의 직원이었다. 혼자서 웨이터, 캐셔, 홀 지배인 역할을 모두 겸하고 있던 그는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했고, 원래는 어느 작은 IT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영어가 무척 능숙했다. 나 또한 반가움에 영어로 말을 걸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 이라며 신나게 떠들었다. 계산을 할 때에도 거의 5분을 붙잡혀 있었지만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외국인끼리의 동질감 때문일까. 물론 옆에 있던 친구가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나를 새삼 존경심 담긴(?) 눈빛으로 보았다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그 다음날은 좀 더 평온했다. 익숙지 않은 곳에선 잠을 통 이루지 못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습성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멀쩡했달까. 부산의 명소라는 자갈치 시장을 구경시켜주겠다고 친구가 나섰다. 나는 잔뜩 들떴다.

오후 1시, 자비 없이 쏟아지는 땡볕 아래서 돌아다닌 자갈치 시장의 인상은……그다지 깊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더웠던 날씨 탓일까, 생선 비린내며 온갖 냄새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예민한 후각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사람, 사람, 사람! 그 어마어마한 인파라니. 사람이란 존재가 이렇게 파리마냥 한꺼번에 와르르 몰려다닐 수 있단 것에 징그럽기까지 했다. 최대한 그네들과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진력일진대, 환경까지 이러니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반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나는 친구를 따라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정오 때까지 내리자는 바람에 아침도 점심도 구경하지 못한 배가 아파왔다.

그 다음에 향한 곳은 카페 거리였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그곳에 도달했을 때쯤엔 이미 반쯤 좀비가 되어 있던 상태였으므로 정확한 위치나 지명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것에 잘 신경 안 쓰기도 하고). 그저 그곳에서 정말 맛있는 닭요리를 먹고, 그 다음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크레페를 먹으러 카페로 들어갔다는 정도. 마침 손님도 없고, 에어컨은 시원했기에 기차를 타야 할 시간까지 눌러앉아 여유를 만끽했다.

이렇게 늘어놓으면 정말 별 것 없어 보일 것이다. 뭔가 특산품 같은 걸 먹은 것도 아니고, 딱히 명소에 간 것도 아니다. 나는 낯선 여행지에서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가령 영화관에 간다던가, 컴퓨터 게임을 한다던가, 내 동네에도 있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던가. ‘여기까지 와서 왜?’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궁하지만, 아마도 약간의 반항미와 더불어 자기 확인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 있지만 이곳에 속해 있진 않다. 나는 나의 장소에, 나만이 있을 곳이 있음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서.

돌아오는 길은 편안하게 좌석에 앉아서 올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세 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잠들었다.

레몬 나무 - 행복의 상징

댓글 0 | 조회 2,014 | 2012.10.09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 중에… 더보기

눈물에 대한 생각 몇 가지

댓글 0 | 조회 2,008 | 2015.11.26
눈물이 헤픈 편이다. 사소하고 별 것… 더보기

라디오 - 침묵을 채우는 방법

댓글 0 | 조회 1,999 | 2016.09.28
라디오를 원래 자주 켜놓는 성격은 아… 더보기

인형 - 익숙함과 편안함

댓글 0 | 조회 1,995 | 2014.10.29
인형을 좋아한다. 이 사실 때문에 들… 더보기

장난감 - 어려서도, 커서도

댓글 0 | 조회 1,982 | 2016.09.15
결혼한 사촌네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더보기

아기들 - 가까우면서도 가까이 하기 힘든

댓글 0 | 조회 1,976 | 2014.09.24
싫어하는 것/무서워하는 것 중에 아기… 더보기

추석 -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

댓글 0 | 조회 1,944 | 2015.10.15
한민족의 대명절 중 하나는 추석이다.… 더보기

명동 - 낯섦과 익숙함의 교차로

댓글 0 | 조회 1,924 | 2014.06.10
사실 한국에 살던 때에도 명동에는 한… 더보기

담배 - 어른의 향기

댓글 0 | 조회 1,912 | 2016.01.13
남동생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사… 더보기

초콜릿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06 | 2016.05.12
<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 더보기
Now

현재 부산여행 - 下

댓글 0 | 조회 1,902 | 2014.09.09
부산 여행에서 이런 저런 재미 있는 … 더보기

우주-언젠가 돌아갈

댓글 0 | 조회 1,867 | 2014.06.25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 중에 우주… 더보기

길가의 고양이들

댓글 0 | 조회 1,821 | 2016.07.27
뉴질랜드의 거리에는 유독 고양이들이 … 더보기

장신구 - 사랑(받는 여자)의 표식

댓글 0 | 조회 1,799 | 2015.10.29
보석은 사랑 받은 여자의 일생을 상징… 더보기

내 마음의 든든함

댓글 0 | 조회 1,798 | 2012.10.24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 더보기

이사-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

댓글 0 | 조회 1,792 | 2014.12.10
이사를 가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더보기

감기 - 불쾌한 잠복 동거

댓글 0 | 조회 1,790 | 2015.09.10
매년 거쳐가는 연례 행사로는 감기가 … 더보기

할로윈 - 믿고 즐기는 축제

댓글 0 | 조회 1,717 | 2016.11.22
할로윈이 왔다 갔다. 고작 24시간,… 더보기

숲 속을 걸어요

댓글 0 | 조회 1,713 | 2016.05.26
숲 속을 걷는다.대개는 운동 삼아서다… 더보기

동생 - 애매하지만 사랑스러워

댓글 0 | 조회 1,695 | 2016.04.28
동생이란 존재는 애매하다. 자식은 아… 더보기

음악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댓글 0 | 조회 1,685 | 2014.02.12
얼마 전에 어떤 노래를 발견했다. 정… 더보기

사진 - 기억하고 싶은 것

댓글 0 | 조회 1,680 | 2016.02.25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더보기

땅도 하늘도 바다도 아닌

댓글 0 | 조회 1,675 | 2013.12.24
땅이냐, 바다냐, 하늘이냐. 그렇게 … 더보기

여행-그리하여 돌아올 따뜻한 익숙함

댓글 0 | 조회 1,663 | 2014.10.15
여행. 이 단어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더보기

해후 - 피하고 싶은 돌발 이벤트

댓글 0 | 조회 1,650 | 2016.07.14
알고 지내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