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에 살던 때에도 명동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주 멋지고, 그래서 놀기 좋은 동네라는 표현은 들어보았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런 명동을, 아주 우연한 기회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연거푸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유가 아니라 명동이란 곳 자체이다. 그 왁자함. 그 복잡함. 그리고 결코 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활기찬 거리의 불빛.
사람이 가장 많을 때인 늦은 5월의 저녁은 어느덧 제법 더워졌고, 그래서인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반팔이며 반바지 같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거의 모두가 커플들이나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이었고, 나처럼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곳은 마치 처음이라는 것처럼 걸어 다니면서도 360도를 빙글빙글 돌아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이도 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어마어마한 촌뜨기처럼 보였으리라. 시골에서 갓 상경한 것 같은 (크게 틀린 표현도 아니지만).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들뜨게 한 것은 그 사람들의 종류였다. 남녀노소, 외국인까지도 한국인들 못지 않은 비율로 섞여 있는 군중. 사실 한국에 온 이후로 그렇게나 외국인들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다. 새삼 기쁘지 않았더라면 거짓말일 것이다. 마치 뉴질랜드에 돌아온 것 같아서.
내가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벌써 1년 가까이 보지 못한 집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뉴질랜드에선 느낄 수 없는 인산인해로 인한 경쾌함에 나도 모르게 흥분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는.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내 명동 체험기는 본의 아니게 먹자판이 되어버렸다.
전부터 꼭 먹어보고 싶었던 돈두르마는 특히 인상 깊었다. 터키식 아이스크림이라는 돈두르마는 그 아이스크림답지 않은 쫀득쫀득함이 특징인데, 그걸 가지고 아이스크림을 퍼주시는 아저씨들은 으레 장난을 치곤 한다. 아이스크림을 떠서 콘에 담아 건네는 척 하면서, 아이스크림의 끈적함을 이용해 휙 빼앗았다가, 더 담았다가, 도로 내밀었다가 다시 뺏는 것을 반복하는 장난.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빵’ 터지고 만다. 모든 장난을 아주 싫어하는 편인 나조차도 웃으면서 아저씨가 진지하게 건네준 콘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종류의 음식을 한곳에서 파는 것은 처음 보았다. 슈크림. 케밥. 크레페. 닭꼬치. 심지어는 짜장면이나 당면까지도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파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역시,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한 창의력을 발휘한다.
지금 머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집의 향취를 느낀다는 건 독특한 경험이다. 결코 다시 보거나, 듣거나, 느끼리라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다시 겪는 것. 그건 가장 뜻밖이고, 유쾌한 종류의 데자 뷰였다. 집, 또는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장소를 두 군데 가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낯섦과 익숙함의 교차로.
첫날도, 두 번째 날도, 마지막 날도 전부 같은 곳만을 돌아다녔지만 결코 질리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미줄처럼 좁고 넓게 퍼진 골목들을 파고 들면 들수록 새롭고 신기한 곳들을 발견했다. 중국어 간판을 단 가게들로만 이뤄진 길거리, 옷가게들만 쭉 들어선 골목, 그리고 -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 요깃거리를 파는 노점상들로만 꽉 찬 거리.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