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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개 1,908 박건호
저번 주였다. 내가 사는 플랫의 인터넷이 일주일 남짓 먹통상태일 때였다. 일주일 내내 플랫메이트들을 볼 때마다 얘기를 했다. 난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그리고 저번 주 일요일, 약간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고, 마지막에 깨달은 것은 “아, 얘들이 돈을 아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구나” 혹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게으르구나, 나도 옛날엔 저랬을까”라는 결론 아닌 결론이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금방 고쳐주겠다고 했다. 마치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느낌이랄까(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한 7명이 살고 있는 플랫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각자 애인이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여자아이는 남자친구 집에 가서 지내기에 거의 방에 없다시피 하고, 영국에서 온 여자는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질 않는다. 나머지 키위 네 명은 두 쌍의 커플로, 하루 종일 방에서 섹스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TV나 영화를 보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그 중의 하나인 사람들이다.
 
키위 중 한 명이 플랫의 대표격인데(인터넷 사용료가 많이 나왔다며 월 초에 아무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기계를 치웠던 녀석이다) 인터넷을 고쳐보자고 제안하는 내게 그가 물었다. 너 게임하니? 아니 난 게임은 전혀 안 해. 그런데 왜 필요한 거야? 인터넷은 내게 일종의 학교 같은 거라서, 이것저것 배우고 자료도 찾아봐야 돼. 음.. 그냥 핸드폰으로 해, 난 인터넷 안 필요하고, 필요하면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할 수 있거든.

참 이기적이고 불쌍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다른 키위들은 이렇지 않다) 인터넷을 생산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소비의 엔터테인먼트일 뿐. 즉 그래서, 그들의 하루일과는 보통 이러하다. 밥먹기→학교→집→밥먹기→알바하는 여자친구 데리러 가기→ 여자친구 데리러 갔다온 후 방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소리 죽여 섹스하기→밥먹기→TV시청 혹은 디브이디 시청→ 잠자기→ 반복, 가끔 장보기. 당연히 인터넷이 필요하지 않을 수밖에. 나도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갖가지 연애에 열을 올린 적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단순하게는 살진 않았다. 저렇게 살 순 없었다.

싱가포르 여자아이가 이 플랫에 들어오기 전에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키위 한 명이 있었다. 확실히 나이가 조금 있고, 사회인이라 그런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게감이 있었다. 뭔가 고장나면 말없이 수리에 나서는, 플랫의 리더였다. 밤에 플랫이 시끄러우면 조용히 하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성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가고 난 뒤, 학생들만 있으니 집이 엉망이다. 오로지 조용한 것을 원하는 것은 나뿐인 것 같으니 혼자 시끄럽다고 말하기도 참 그렇다. 19-20살 밖에 안 된 녀석들한테 말해봤자지 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티 내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주당 125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을, 소가 여물 씹듯 습관적으로 우물우물 반복해서 씹어댔다.

이제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살벌하게 시끄러운 대학생인 지금, 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사실 이번 인터넷 사건을 통해 이들과 약간 다툰 후, 화해는 했지만 이미 정이 심하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플랫엔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홈스테이에서 두 달을 살고, 이어 살게 된 이 방은 아는 한국인 형으로부터 인계받았던 것이라, 엄밀히 말해 내가 직접 방을 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즉 뉴질랜드에 온 지 1년 여만에 내 손으로 집을 구하게 되었고, 운이 좋았는지 집은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격은 비슷하게, 하지만 아주 깔끔한 곳으로.

2006년쯤부터 지금까지 8번의 이사(아파트, 하숙, 기숙사, 원룸, 옥탑방, 오피스텔, 반지하 등등..)를 했다. 그리고 뉴질랜드 플랫. 7명(때로는 그 이상)의 공동생활은 군대를 제외하곤 처음이었고, 내 이사의 이력 중 사실상 가장 더러운 곳이었다. 나름대로는 잘 지냈지만, 처음 온 사람 모두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니”, 라는 표정을 짓는 곳이었다. 쥐가 방을 놀이터 삼고, 내 방엔 심지어 카펫도 없어서 페인트 묻은 나무바닥이 그대로 드러나고, 창틀은 오랜 세월에 지쳐 삐뚤어졌으며, 옷장은 경첩 몇 개가 이미 떨어져나가 닫으려면 약간의 노동이 필요하고, 바로 윗방이 화장실인지라 천장 구석마다 곰팡이가 조금씩 피어있는 곳이었다.
 
이 곳 플랫메이트들이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지라 동네에 아무도 없었던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모여 하루 종일 파티를 했고, 가끔씩 마당에 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함께 산다면 앞으로도 인터넷 등의 불상사가 계속 발생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발을 빼야 할 타이밍.

뉴질랜드에서의 1년. 삶의 질을 조금 높인다 생각하고 이제 투 룸의, 단 둘이 사는 널찍한 플랫으로 옮기게 된다. 뭔가 알맞은 리듬이라 생각하고 이삿짐의 마지막 박스를 소파 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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