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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의 시간

0 개 1,485 박건호
CV만 40장째였다. 차가운 웰링턴의 바람만큼이나 핸드폰 수화부에도 스산한 침묵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포화상태를 이룰 때쯤, 몇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 중 한군데, 조그만 옷 가게의 면접을 보러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수 십장의 CV가 켜켜이 쌓여있었고, 파란 눈과 하얀 머리의 할아버지가 이방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를 청하자, 가볍게 내 손을 잡고 흔들고는 커다란 아이보리색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한국에 대해서 묘사해 볼 수 있겠니? 네가 내 가게에 지원한 유일한 아시안이라서 말이야.

몇몇 질문 끝에 굉장히 뜬금없이 그 질문이 나왔고, 나는 극단적인 이념들과 대단히 바쁜 삶들이 횡횡하는 사회(의도는 그랬다)라고 했다.

다음 질문은 상황극이었다. 그가 파란 눈을 똑바로 뜨고 내게 말했다. 내가 딸을 데리고 가게 왔는데, 네가 가게를 보고 있어. 자, 내가 들어간다. 하이 데얼? 나는 두리번거리다 앞 테이블의 빵 봉지를 집어 들고 엉터리 리본을 만들어 머리에 맞붙이고는 이거 좋아! 예쁘지 않아? 라고 퍽 흉하게 말했다. 픽, 하고 사장이 웃었다. 그리고는 “Ok, em.. ok put that down”이라고 말했다. (한국어로는 “자, 됐고요” 쯤 됐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질문이 지나 갔고, 그가 내게 물었다.
 
“고객에게 왜 친절해야만 하지?”
 
프랑스의 바깔로레아를 방불케 하는 그 질문에 잠깐 당황한 나는,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역시 의도는 이러했다)

저는 판매자가 단순히 판매자의 역할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 마음 대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손님이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서 가게 밖으로 나선다 해도, 저의 친절함으로 인해 그 손님이 웃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저는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면접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내가 옷가게 면접을 본 것인가? 아니면 대기업 심층면접을 본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오후 3시에 만나 30분 이상 계속되었었던 면접은 15평 남짓의 옷가게라고 하기엔 내 마음에 너무도 거대한 자국을 남겨놓았다.

심지어 많이도 아니고 FULL TIME 단 한 명을 뽑는 면접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지인을 통해 상업영화 편집보조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 이틀간 편집기사(편집감독님) 얼굴도 못 뵈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을 뵈었을 때, 한 가닥 악수와 두 마디 통성명을 한 후, 그 후 2달간 일적인 대화만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 이외 한국에서 다른 일을 할 때엔 빵집, 광고 일 등 모든 면접이 5분 내로 끝나거나 연줄을 통해 들어갔더랬다.
 
존재를 자각하는 일은 곧 책임을 느끼는 일이다. A회사는 30분의 면접을 통해 들어간 직장이고, B는 입사 후 이틀 후에 사장을 만난 회사라고 하자(직원은 두 회사 모두 2-3명 정도다). A와 B 두 개 회사 모두 일에 대한 흥미도와 비전, 급여 등을 동등하다 가정할 때, A 회사와 B회사 중 어느 직장에서 책임감을 느낄지는 자명하다. 책임감은 곧 존재의 자각으로 치환되고 그것은 곧 인생의 즐거움으로 배가될 것이다.
 
난 그 때의 면접을 생각할 때마다 그 때의 시간을 스스로 존중하려 애쓴다. 옷가게의 그 면접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맘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내 존재의 그림자가 형식적으로나마 뉴질랜드에 처음으로 드리워졌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존중하다보면, 어느새 - 흐르는 삶 속에서 다른 방식, 더 나은 방식 등으로 나 자신이 스스로 바꾸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 기억으로 말미암아 비록 지금은 내 손이 비어 있다 해도, 언젠가는 그 손에 어떤 무엇인가를 꼭 쥘 날이 올 것을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다.
 
그 면접 후 이틀 뒤, 그 옷가게에선 문자가 왔다. “I’m sorry you were unsucessful for the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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