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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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송편

0 개 2,285 오소영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매서워 아직도 나는 겨울을 살고있는데 엊그제까지만 해도 시커멓게 검던 묵은 나무가지에 분홍 벗꽃이 화사하다.
 
끊임없이 질척거리던 날씨. 유난히 지루하고 짜증스럽던 긴~겨울. 이제 다 낡아 덜컹거리는 기계처럼 잔병치레도 빈번해 마음마져 음습했는데 답답한 터널을 빠져나온듯 반짝이는 햇살이 무척이나 반갑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나보다. 우리들 카렌다엔 가을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추석 연휴의 빨간 글씨가 겹겹으로 한가위 명절을 알리고 있는데... 몸이야 어디있든 그건 상관이 없다. 마치 옷에 베어있는 냄새처럼. 긴 세월 길드려진 의식속에 세속의 풍습은 잊어지지 않는 진한 정서요. 추억의 그리움으로 절절하기만 하다. 문 밖에서 유혹하는 봄의 전령을 무시하고 잠시 풍요로운 고국의 가을. 추석을 맞으러 한걸음으로 달려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조여오는 세월앞에 앞으로 몇번이나 더 추석명절을 맞을 수 있을까?   

여기 문화에 젖어사는 아이들에게 고국의 세속정서도 일깨우고 집안의 어른인 할머니의 추억을 그 들 마음속에 깊이 각인시키고자 해마다 식구들과 함께 송편을 빚으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지 않았던가.

모두가 제 할 일 바빠 챙기기 힘든 이 곳에서 짬을 낸다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기에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명절다운 기분이 된다.

“이번 추석에도 송편 빚어야겠지. 솔잎 뜯어갈께” 솔잎을 준비한다는 것은 내게 든든한 파워이기에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어렵게 만들어진 시간이 추석날 오후였다.
 
손녀 딸애가 그동안 해왔던 경험으로 흉내를 곧잘낸다. 팔을 다친 제 엄마는 송편 속 만든 것 만으로도 큰 수고를 했으니 남은 일은 우리 몫이다. 떡가루를 체에 곱게 내리고 물을 끓여 익반죽을 하는 순서가 제법 익숙하다. “밀가루 반죽처럼 말고 힘드려 많이 치대야 한다.” 이런 때나 한번 큰소리 쳐보는 할머니의 마음을 벌써 알아차렸다. “알고 있죠~” 대답이 명쾌해서 반가운 할머니. 괜스레 잔소리를 했구나. 혼자 실소를 할 수밖에... 하지만 아이는 아이. 지루하다는 표현이겠지. 주무르다 말고 갑자기 주먹으로 퍽퍽 두드리면서 장난끼가 발동 해 깔깔거린다. “아빠처럼 힘만 써서 그릇 또 깨 부슬라” 식구들을 웃음바다에 풍덩 빠뜨리면서 한바탕 난리를 치뤘던 때를 떠올리면서 또다시 웃음보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가장(家長)이 동참했다는 새로움 때문에. 까짓 그까짓 프라스틱 바가지 하나쯤 그릇은 깼지만 그 어느 때보다 떡이 쫄깃하고 맛도 특별했었다.   

“너무 야했나?” 아이가 만들어 온 반죽은 징그럽도록 진한 새빨강색이었다. “웬 일이니?” 작년에 조금 넣었더니 색이 시원찮아서 조금 많이 넣었단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다 싶었지만 세상에 이런 떡은 우리밖에 없을테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대로 해 보기로 한다.
 
호박쪄서 노란떡을, 그리고 쑥떡, 백년초 가루가 분홍색을 내 주는데 그걸 너무 많이 넣었던 것이다. 인공색소가 아니고 자연의 재료이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손에 물이 들 것처럼 새빨간 반죽으로 송편을 빚으며. 웃음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아이 마음 다칠까봐 혼자만 속으로 실컷 웃는다. ‘속 먹자는 만두, 떡 먹자는 송편’이라는데 이 아이는 저 좋아한다고 깨를 터지도록 넣어 배를 통통 불려서 동글동글 굴러가게 만들면서도 양귀퉁이를 예쁘게 잘도 세워 놓는다.   
 
‘스마트폰’만 잡고사는 요즘 아이가 ‘카톡’ 하는데 편하려고 길렀을 엄지손가락 손톱을 과감히 잘라내고 떡판에 끼어든 별난 일탈을 지켜보면서 이 할머니는 그저 대견하고 신통해서 그지없이 만족 하기만 했다.
 
한 편에선 솔향기 폴폴 풍기며 송편이   잘도 쪄지고 있다. “이걸 어떡해” 아이가 소리 치기에 가 보니 색이 바래기는커녕 날것 때 보다 더욱 선명하게 자즈러지도록 빨갰다. 가랑잎 굴러 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는 그런 나이의 아이. 처음에는 그 아이가. 그 애 웃는걸 보면서 모녀가 함께 잘도 깔깔거린다. “엄마 이거봐” 또 장난끼가 발동한 아이. 그 빨강 송편 두 개를 겹쳐서 입에 물고는 죽는다고 다시 또 웃는다. 웃음에 인색해진 나도 따라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징그럽도록 두툼하게 삐져나온 영낙없는 빨강 립스틱의 입술. 마치 섹시스타 ‘마리린 몬로’의 입술같았다. 제 엄마는 사진을 찍는다고 수선이고... 한 쪽에선 이모한테 전화걸어 사진 보이라고 야단이다. 그 모든 풍경을 정신없이 휩쓸어 담고있는 내 마음속 카메라는 언제 스톱이 걸릴는지?   
 
“엄마 내 것도 만들어 보내 주시지” 요즘 한국에선 송편빚는 사람 없다며 작은 딸 애가 보채온다. 우리는 외국에 나와 살기 때문에 안달스럽도록 고국의 정서를 못 놓치고 사는가보다.
 
현대생활에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에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정서며 인성(人性)을 몽땅 빼앗기고 사는 세상이다. 잠시나마 그 것을 내려놓고 식구들끼리 얼굴 맞대고 즐길수 있었던 한나절. 금년 추석을 추억하려면 백년초 가루 무딘 향기까지 읽어낸 그 특별한 빨강송편이겠지. 약했다가 너무 진하고 정확한 양을 맞출 때까지 실수를 거듭하면서 진화하는 과정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게 조금씩 성공의 길로 나아가는게 아닐까?. 아이가 그 진리를 깨달았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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