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몇 달 만에 처음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자동차가 무서워 생각도 하지 않았고, 대학 때는 버스나 배를 타고 다니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한 탓에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무면허로 살아온 나였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회 생활에의 필요성과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따게 되었다.
처음 뉴질랜드에서 면허를 딸 때도 어마어마하게 긴장했다. 그냥 문제만 풀면 되는 건데, 서너 개까지만 틀릴 수 있다는 한계가 엄청난 무게가 되어 손이 덜덜 떨렸던 것까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압력을 잘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무난하게 합격하여 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다음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에 비하면 차라리 문제 풀기는 양반이었다. 실전에선 더욱 심하게 긴장해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도 아니건만 아드레날린이 마구잡이로 펌핑되어 몸 속 장기들의 진동마저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옆에서 언제 소리를 지르거나 꾸짖을지 모르는 도우미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첫 시범 주행에서 차를 들이박지 않은 건 가히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차저차하여 결국 전문 강사에게서 도로 연수를 받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실력 증강은 느낄 수 없었다. 사실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언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는 것이다. 설사 그 실수를 극복하더라도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다른 엉뚱한 사고를 치고야 만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일찌감치 완벽해지기를 깨끗이 포기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의 불완전함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아무리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더라도 힘든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거친 열 몇 번의 강습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끝났다. 무엇보다도 추돌 사고나 충돌 사고 같이, ‘돌’ 자로 끝나는 불운을 피하게 된 것에 가장 안도했다.
한국에 오면 대중 교통이 훨씬 잘 발달되어 있으니 운전면허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하고 희희낙락했더니만, 아뿔싸. 여기서도 면허 취득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시험을 치르고, 연수를 받아야 했다. 원래 남들이 다 하고, 다 해야 한다고 말하면 더욱 하기 싫어지고 피하려 드는 성격이다. 반골 기질이 다분한 탓에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게 피곤한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연수를 해주는 선생님이 이번에는 그다지 내가 좋아하는 유형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 했다. 물론 아저씨라는 점은 뉴질랜드의 강사와 같았지만, 공통점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 선생님은 연설이 길었고, 간섭을 많이 했으며,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조언을 - 예를 들어서, 빨간 불이어도 주변에 사람이나 차가 없으면 가도 된다는 식의 - 해주었다.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물론 나쁜 선생님이라는 건 아니다. 아마도 잘못은 (잘못이라고 거창하게까지 표현해도 좋다면) 그가 아닌, 시스템 자체의 결함에 있을 것이다. 신호등의 비실용적인 패턴에서부터 어처구니 없이 끼어들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도로의 차들에. 혼잡한 도로의 무질서는 내게 긴장이나 공포를 넘어 분노까지 느끼게 했다.
“빨간 불인데, 왜 지나가도 된다는 건가요?”
“다른 차들이 없을 때 빨리 지나가야 돼요. 안 그러면 못 지나가니까.”
“빨간 불인데도요?”
“네.”
“양쪽 다 빨간 불인 것보단 번갈아 가면서 초록 불이었다가 빨간 불이었다가 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왜 안 그런 거죠?”
“만들 때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참 불합리적이네요.”
원래 다 그런 거랍니다, 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선생님의 문장 앞에 인생은, 이라는 말이 빠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