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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대고 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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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포스트에 450자짜리 수필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개월이 지난 것 같다. 1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시간 관념은 한 번도 내 강점이 아니었으므로 (나의 명예를 위해 덧붙이자면, 물론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라고 하겠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말이다. 가슴에 절절이 와 닿는, 참으로 깊이 공감 가는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궁극적으로 그것밖에 자신이 걸어갈 길이 없어서가 아닐까.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 세상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 아니, 어쩌면 닿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먼 곳에 있어 얼굴조차 모르는 이와 소통하기 위한 방편으로.

내가 그러했다. 사춘기 시절,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갑자기 체감되었다. 학교는 귀찮았고 어른들은 무서웠다. 아무리 말하고 괴로워해도 네 나이 땐 누구나 그랬어, 나도 그랬는걸, 어린애 같이 굴지 말고 얼른 철 들어, 라는 핀잔들만 던져주던, 자신들만의 중년의 사춘기에 새로이 갇혀 외면하기 바쁜 그들. 주변의 비슷한 시기를 거치는 아이들은 사납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십대 청소년의 고민거리 따위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엇나가지 않고 자라는 나를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해줬으면 했지만, 그것마저도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어 내 십대 시절은 뿌듯함도, 보람도 뭣도 없는 지리멸렬한 팔여 년의 모놀로그였다.

그 때 불현듯 글을 씀으로써 내 삶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다…… 같은 진부한 깨달음(epiphany)은 없었다. 이해하길 바란다. 나는 지금에마저도 꽤나 단조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고, 그때도 다를 바는 없었다. 단지 좀 더 어렸고, 멍청했었지만 눈은 더 열려 있는 아이였단 것만 빼면.

다만 글을 쓰는 것이 재미 있었을 뿐이다. 그 땐 타인의 눈길도, 나 자신의 머릿속에서 수군거리는 비판의 목소리도 없었으니 자연히 창작의 고통 따위도 없었다. 신세계의 신이 된 느낌이었달까, 펜과 종이만 잡으면 - 또는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 앉으면 - 뭐든지 내 마음대로였다. 그 감각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비좁은 현실에서, 유일하게 내가 내키는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자유.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유치한 아이디어나 스토리들마저도, 그냥 생각으로 품고 있을 때와 노트에 직접 적어 눈으로 읽을 때는 무척 다른 법이다. 뭔가 위대한 작가라도 된 듯한 기분에 마구 글을 휘갈겼던 기억이 난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무작위로 썼던 글들. 간혹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그 때의 글이 좀 더 나답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때는 아무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이고도 근본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하다못해 ‘오늘 소풍을 갔다. 참 재밌었다’라고 쓴 초등학생의 일기조차도, 노벨상을 수상한 고명한 작가의 책과 그 본질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글이란 것은 자신의 생각의 기록이고, 더 나아가서 소통의 방식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고독하고, 인간이란 누구나 궁극적으론 혼자인 존재이니까. 글쓰기는 그것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손을 뻗는 방법 중 하나다.

아직 내 글을 읽고 깊이 공감했다거나 나를 이해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언젠간 그런 독자 한 명쯤은 나오지 않을까, 오늘도 희망을 품고 이렇게 타자를 두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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