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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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대란

0 개 2,367 정경란
폭풍과 전력대란 얘기를 해야겠다. 간혹 오클랜드 일부 지역 혹은 남섬의 넬슨 지역이 폭우와 강한 돌풍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끊겼다는 소식을 저 먼동네 얘기로만 들었다. 며칠전부터 예고된 남극지역으로부터의 차가운 공기 유입과 눈 소식 역시 저 아랫동네 얘기였다. 그러던 것이 남섬에 눈을 뿌린 남극발 폭풍은 웰링턴까지 상륙했고, 지붕이 과연 이 바람을 견딜까 싶을 정도로 강한 돌풍은 잠자리를 어지럽혔다. 21일 새벽, 잠자리가 차가워 일어나니 전기가 끊긴 모양이었다. 혹시나 해서 머리맡에 두고 잔 손전등으로 두꺼비집을 확인한 후, 전기회사에 전화를 했다. 때는 새벽 2시 30분. 웰링턴의 많은 지역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단다. 인내를 갖고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그나마 겨울철 난방은 주로 벽난로를 사용하고 전기 히터 제품은 거의 쓰지 않던 터라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문제는 취사였다. 빨리 전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냉장고의 저 음식들은 다 어쩔 것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김치만 쉬어버릴뿐, 상할만한 음식은 많지 않았다. 녹을만한 몇몇 냉동식품빼고는. 아침에 슈퍼를 가보니, 양초가 바닥이 났단다. 가스버너용 부탄가스를 구해서 취사는 그럭저럭 해결할 지 싶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이른 폭염에 맞춰 전력공급에 비상이란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하는데 규격에 맞지 않는, 그래서 더 저렴한 부속품을 사용해서 가동이 멈추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뉴질랜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일일당 전력 소모량이 크게 윗도는 한국에서 도심지 전력공급이 끊긴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집집마다 괴물처럼 서 있는, 이제는 더 이상 커질래야 커질 수 없을 것 같은 냉장고, 김치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인터넷과 컴퓨터... 그야말로 올 스톱이다. 

냉장고의 크기만 봐도 한국에서의 생활과 이곳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거대해진 가전기구들, 큰 만큼 넓은 공간을 채우기 위해 주말마다 대형마트를 가족나들이처럼 다니고, 한 두개가 아니라 묶음으로 상품을 사면서 집안 여기저기에 물건을 “쟁여놓고” 살기 시작했다. 미래에 있을 소비를 앞서 당기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웰링턴에서 냉장고를 사러갔을 때, 도대체가 자취생이나 쓸만한 작은 사이즈의 냉장고를 보면서 얼마나 한심해했던지... 협소한 부엌때문에 결국 한국에서 쓰던 것의 절반크기의 냉장고를 들여놓고는 생활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첫째, 많이 사서 쟁여놓지 않게 되었고, 둘째, 일주일치의 식료품을 면밀히 계산해서 구입하느라 씀씀이에 체계가 잡혔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보니, 큰 냉장고가 절대로 필요하지 않다는 나름의 결론도 얻었다.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한국에서도 원자력 발전소 이용을 줄이거나 금지하자는 환경단체의 외침이 커지고 있다. 귀담아 들을만한 중요한 쟁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일상에서 소비에 대한 되돌아봄이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자취생의 소규모 냉장고가 아무리 넣고 넣어도 공간이 남아도는 거대한 냉장고로 변신하는데까지는 불과 몇 십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지난 10년 사이에 대한민국 웬만한 가정의 냉장고는 다 양문으로 바뀌었거나, 아니면 세련된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여분으로 두는데 까지 발전했다.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구조가 일상화 되어있는게 한국이다. 편리하고, 쾌적하다. 한번 편리와 쾌적에 익숙해진 몸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뀌려면 시간과 품이 든다. 

공장 굴뚝없는 청정한 환경을 위해 난방과 취사를 전기에 의존하는 나라 뉴질랜드. 그만큼 치뤄야 하는 값도 크다. 전기는 주로 남섬의 수력발전소와 곳곳의 풍력 발전소로부터 나온다. 에너지는 비싸다는 것을 아이들도 일찌감치 배운다. 

촛불을 켜놓고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앉아서 학교를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라디오에 (전기충전해 놓은 라디오) 귀를 기울이던 새벽. 한가지 떠오른 생각은 전기가 없는 상황을 더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준비를 더 해두자는 거였다. 겨울이 지나면 가까운 공원에서 땔감도 더 구해놓고, 왠만한 추위에도 반팔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딸내미처럼 ‘자가에너지’ 용량도 더 키워놓을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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