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에 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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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쌀밥에 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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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옆, 시커먼 고목나무 팔 벌린 가쟁이에 장난치듯 길다란 밧줄을 던지고 있는 노인,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위치에 여러 차례 던져 보지만 잘 걸리지 않는다. 노인은 계속해서 던지고... 무엇을 하려나? 외출을 서두르던 나는 발길을 멈춘 채 흥미롭게 그 짓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마 열 번도 더 넘게 끈질긴 시도 끝에 드디어 밧줄이 걸렸다. 그는 저쪽으로 흘러 내린 것과 이쪽 것 두 줄을 함께 몰아 쥐고 몸을 매달려 힘껏 아래로 잡아나꾼다. (으흠 그거였군) 그러나 그의 힘으로 될성 싶지 않아 헛 고생을 하는 것 같아 속으로 웃었다.

그 나무는 부스럼 딱지같이 지저분하고 흉물스러운 껍질에 죽은 듯이 늦게까지 검고 칙칙하다가 맨 나중에 일을 달고 꽃을 피우는데 꽃답지 않은 모양새에 향기도 없다. 손톱같이 허옇게 바스러져 떨어지는 꽃잎들이 눈꽃 같다고 황홀하게 바라본 것은 잠깐. 차에 말라 붙어 떨어지질 않아 애를 먹이니 이젠 악의 꽃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유난스레 불러 들이는 새떼들의 오물세례 때문에 악명으로 미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랑 못 받는 나무가 동물들과 교감이라도 하듯이...

부질없는 짓 인줄은 알지만 그 마음만은 알 것 같았다. 노인이 용을 쓴다. 힘껏 한 번 두 번...
우지직! 드디어 나무의 비명같은 소리와 함께 가지가 땅으로 내팽겨 쳐졌다. 보기보다 기운이 장사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 집요한 고집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를 즈음 그가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웅크려 앉아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무슨일일까? 가까이 가 보았다. 아뿔사!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흥건히 흘러 내리고 있질 않은가. 제법 큰 가지인데 떨어질 때의 위험을 생각지 못한 아둔함을 탓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휴지를 내다가 닦아 주고 지혈을 시킨 다음 집으로 데려가 연고를 발라 주고 밴드를 붙여 주며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날카롭게 생긴 콧날에 차가워 뵈는 인상 때문에 가까이 하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후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는 이웃이 되었다. 그와는 아무도 어울려 주지 않는 외톨이임을 나중에야 알았는데 노인을 가리켜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었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 아닌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가 주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도 동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라인을 지키는 것은 볼 수가 없고 늘 상 아무렇게나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질서의 역행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도 여러번 곤경을 겪다가 견디다 못해 집에 찾아가 노인을 불러내 상황을 보여 주고 사정을 했더니 아기같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주긴 했다. 늘 그리 해 달라고 부탁도 했음은 물론인데 천만의 말씀. 그 실행은 요지부동이다. 그 형편에 운전은 어찌하는지 불안을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더니 "허버트"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끌고 노인의 차 앞으로 갔다. 손가락으로 차창에 세금딱지를 지적하는데 자세히 보니 벌써 오래 전에 바꿨어야 할 날짜가 그대로였다. 그는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낯을 찡그렸다. "허버트"는 유머가 풍부해 만나면 늘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다. 차에 새 똥을 닦느라고 애를 쓰면 나무를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해서 곧잘 웃기곤 한다.

어떤날 " 캔" 또한 나를 데려가 보여 주고 그도 역시 동그라미를 그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말로 시원하게 안 되는 내게 실체를 보여 주는 것인데 그런 상황들이 그 동안 많이도 쑥덕거렸음을 느끼게 했다. (참 냉정한 사람들이구나) 늘 따뜻하고 상냥하고 친절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싶어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리고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말로 교감하지 못하는 마치 쌀밥에 하나 뉘처럼 섞여 사는 내가 아닌가.

"패티"를 보면서 영국인의 깔끔함과 부지런함을 알게 되고 "릴리안"을 보면서 텁텁하지만 경우 밝고 푸근한 섬사람들을 느끼듯이 그들도 나를 보며 한국인, 코리아를 말 할 것이다.

같은 겉모습 같은 말을 쓰면서도 질서에 어긋난 행동을 조금도 용납 못하는 냉정한 그들에게 보여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늘 부드러운 눈길로 마주칠 수 있어 잘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더욱 더 조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야 했다. 기 죽지 말고 씩씩하게 당당하게 지킬 것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코리안을 보여 주리라. 뉴질랜드 어느 한 귀퉁이, 이 동네에서는 내가 바로 한국의 외교사절이기에 말이다.

ⓒ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http://www.koreatimes.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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