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그 나무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73] 그 나무님!

0 개 2,850 KoreaTimes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기품있게 잘 생긴 한 그루의 고목.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주는 이 나라라고 해도 백 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위용을 갖추어 지체 높은 어르신을 대할 때처럼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럽다. 주변에 그 흔한 벤취하나 마련못한 쓸쓸한 홀대에도 아랑곳 않고 철따라 잎을 피우고 낙엽도 떨구며....

  내가 이 나라에 처음와서 제일 먼저 정 붙이고 친구한 그 나무를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민들레처럼 홀씨하나 바람타고 날아와 외롭기 그지없는 이방인을 다정하게 받아주고 감싸 준 너그럽고 편안한 어른 나무님. 길 옆에 쳐진 목책 위에 걸터앉아 답답한 가슴을 긴 한숨으로 토해내며 하늘 끝에 닿은 듯 키가 마냥 높은 가지들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노라면 산들산들 잎새를 흔들어 땀도 식혀 주고 허허로운 마음을 잘도 다독여 주었다. 얼기설기 비늘 잎사이로 비추는 찬란한 금빛 태양을 내 쳐진 어깨에 힘을 실어주어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 아무도 특별하게 돌아보지 않는 외로움에 그 쪽도 내가 반가웠을까? 밀림처럼 침침한 나무 숲속 길을 꽤나 가보고 싶은 호기심을 무던히도 참아 내던 어느 날이었다. "나무님 산책 같이할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모든 주문을 다 들어 줄 것 같아 응석처럼 아무말이나 잘도 지꺼린다. 호젓하게 묻혀 있는 외진 집에서 낯선 인기척에 뛰쳐나올 늑대처럼 큰 개도 무섭고 사방에서 지저귀는 거친 새들의 합창도 예사롭지가 않아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를 낼 수가 없어 기도하듯이 조용히 보채 보는 것이다. 못 견디게 그리움에 허기질 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길게 누운 뿌리에 올아 않아 그 믿음직한 몸체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누구의 품에 안긴 듯 착각에 빠져 지각없는 어린 아이가 되어 현실을 잠시 잊고 무아지경에 빠져 버린다. 그게 좋아서 그 위로가 달콤해서 산책길 발걸음이 늘 가벼웠는지도 모른다.

  "나무님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요 바람도 산뜻하구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모처럼 환한 내 모습이 그 쪽도 반가웠을까? 그런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오늘은 서울 친구들한테 편지를 써볼까 해요. 나무님과 이야기 나누며 살아가는 일들을 쓰려구요"(그거 좋겠네요 편지를 쓸 수 있으니 부럽군요). 분명 그런 말을 했을 나무님. "나무님 미안. 미안. 사람들은 욕심이 많지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 올라도 그는 묵묵히 내려다 볼 뿐이다. 그 과묵함이 좋아서, 스스로 묻고 답을 얻을 때까지 들어주는 편안함이 좋아서 둘만의 비밀로 밀애를 하듯 교감하며 깊은 절망감 속에서 서서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온통 낯선 얼굴 서툰 말 속에서 입술은 무겁고 녹슬어 가던 언어가 돌파구를 찾아 얼어붙던 가슴이 조금씩 따뜻해져 갔다. "나무님 오늘은 시티를 나가 볼까해요. 혼자서 수영장에도 갈꺼구요"(그럼요 그래야지요. 그렇게 그렇게 살게 되는 거랍니다). 간사한 동물이 사람이라던가 그 때부터 나무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혼자이고 영원히 그럴 것이니 걱정 말아요) 그를 배반한 것은 물론 나였지만 그 미안함조차 너그럽게 이해해 줄 것을 너무 잘 안다.

  이제 나는 그 나무를 아주 잊을 만큼 모든게 여유로워졌고 낯설음도 많이 멀어졌다. 지금은 오히려 말로써 다칠 상처가 두려워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움을 알아가고 있다. 뿌리없는 나무처럼 잘려나온 사람들의 근거를 모르니 이민사회란 참(眞實)이 어떤 것인지 사실 가려 살기가 쉽지 않다. 요즈음 잊고 살던 그 나무가 다시 생각나는 것은 웬 일일까? 영원히 반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 서러움을 속 시원히 허튼 소리로 떠들어 보고 싶어서일까? 말 무서운 세상에 혼자 듣고 묻어 두는 그 보다 더 믿어운 친구가 어디 또 있을까? 어쩌다가 스치고 지나치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 여전히 변함없이 우뚝서서 품위를 지켜 가는 그 님 위용에 조용히 머리가 숙여진다.

  모진 풍상에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만 품으면서 내색없이 살아가는 그 님. 그 의연함이 존경스럽다. 나도 과묵하게 그 님을 닮아 살고 싶다. 자기 삶에 충실해 조금도 흔들림없이 굳건한 자신감. 누가 관심가져 주지 않아도 투정 않는 너그러움. 크게 커서 작은 것들을 감싸 안고 튼튼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대단한 희생. 멀리 보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겸손함. 위풍당당 너무 잘 생겨서 오만함이 있을 법도 한데 전혀 도도하지 않은 내면의 아름다움. 자연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베푸는 넉넉함 등등.....

   또 한해가 저물고 새 해가 열렸다. 금년에는 그 나무님을 많이 생각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그를 흉내내며 살아 보련다.

[383] 김유신의 말

댓글 0 | 조회 2,026 | 2008.06.25
김유신이 젊었을 때 천관(天官)이란 … 더보기

[382] 기복(祈福)

댓글 0 | 조회 1,719 | 2008.06.10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으려 하고 복을… 더보기

[381] 고해(苦海)

댓글 0 | 조회 1,603 | 2008.05.28
사람의 삶에는 참 행복이 없다. 그것… 더보기

[380] 고집(固執) - II

댓글 0 | 조회 1,658 | 2008.05.13
대원군은 자기의 고집 때문에 외부세계… 더보기

[379] 고집(固執) - I

댓글 0 | 조회 1,706 | 2008.04.23
'고집이 세다'는 말은 자기 생각이나… 더보기

[378] 계산하고 산다, 저울질하고 산다

댓글 0 | 조회 1,799 | 2008.04.08
어린 시절 어머니가 먹을 것을 주면 … 더보기

[377] 떠남

댓글 0 | 조회 1,640 | 2008.03.26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린 시절 고… 더보기

[376] 두 그루 참나무 이야기

댓글 0 | 조회 1,950 | 2008.03.11
어느 집 뒤 야트막한 야산에 참나무 … 더보기

[374] 마음과 건강(Ⅲ)

댓글 0 | 조회 1,528 | 2008.02.12
조상의 삶과 마음도 자손의 건강에 영… 더보기

[373] 마음과 건강(Ⅱ)

댓글 0 | 조회 1,610 | 2008.01.30
마음을 이해하면 건강과 병도 쉽게 이… 더보기

[372] 마음과 건강(Ⅰ)

댓글 0 | 조회 1,596 | 2008.01.15
캄캄한 밤에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 … 더보기

[371] 불나방(Ⅱ)

댓글 0 | 조회 1,510 | 2007.12.20
불나방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불꽃으로 … 더보기

[370] 불나방(Ⅰ)

댓글 0 | 조회 1,525 | 2007.12.11
불나방은 불을 보면 날아가서 동심원을… 더보기

[369] 뜻밖의 결과(Ⅱ) - 영감(靈感)

댓글 0 | 조회 1,509 | 2007.11.28
만유인력.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 더보기

[368] 뜻밖의 결과(Ⅰ) - 실수(失手)

댓글 0 | 조회 1,530 | 2007.11.13
비아그라. 최근 발기부전(勃起不全) … 더보기

[367] 모두가 내 탓(Ⅱ)

댓글 0 | 조회 1,496 | 2007.10.24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 더보기

[366] 모두가 내 탓(Ⅰ)

댓글 0 | 조회 1,472 | 2007.10.09
일체는 내가 있어서 내 탓이다. 내가… 더보기

[365] 남 탓하며 산다(Ⅱ)

댓글 0 | 조회 1,566 | 2007.09.26
시련을 겪으면 하늘을 원망하기도 합니… 더보기

[364] 남 탓하며 산다(Ⅰ)

댓글 0 | 조회 1,384 | 2007.09.11
여우가 길을 가다가 어느 집 담장 밖… 더보기

[363] 나는 누구인가(Ⅱ)

댓글 0 | 조회 2,298 | 2007.08.28
성현(聖賢)들이 참된 복이 무엇인지 … 더보기

[362] 나는 누구인가(Ⅰ)

댓글 0 | 조회 2,021 | 2007.08.14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나 어… 더보기

[361] 길 떠나 온 사연

댓글 0 | 조회 1,382 | 2007.07.24
그 부모한테 태어난 사연도 지금 이곳… 더보기

[360] 물 웅덩이

댓글 0 | 조회 1,610 | 2007.07.10
깊은 산골짜기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 더보기

[359] 머무름

댓글 0 | 조회 1,304 | 2007.06.27
구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물도 흐… 더보기

[358] 가진 것에 매여 산다(Ⅲ)

댓글 0 | 조회 1,396 | 2007.06.13
사람은 태어나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