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제니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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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제니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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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네 발로 기어 살다가 두 발로 서고 나중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 이름이 뭐게?" 어렸을때 수수께끼로 재미있어 했던 놀이였다. 허지만 철없던 시절 사람이 왜 세 발로 걷느냐고 박박 우겨대던 아이가 머리 나쁜 나였던게 생각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임을 스스로 깨닫기까지 꽤나 세월이 지났었던 걸로 기억된다. 누구나 아이 때는 기어 다니다가 자라면서 두발로 서서 걷는다. 그러나 그 힘이 다 되어 세 발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곧 저물어 가는 인생임을 뜻함이 잖은가.

  옆집의 제니는 나보다 한살 아래의 여인이다. 그가 얼마 전부터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빛나는 은발에 살 집이 아주 좋은 아이같이 순수한 영국 여인이다. 옆에서 보면 마치 다이아몬드 형으로 불룩 나온 배와 큰 엉덩이 때문에 가느다란 다리가 지탱을 못해서인지. 아니면 유별나게 자상한 남편 때문에 어리광으로 그러는지? 함께 외출할 때는 지팡이 대신 튼튼한 남편의 팔에 메달려 뒤뚱뒤뚱 오리 걸음으로 따라 가는게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교류하는 남편 지팡이를 가진 제니는 자랑하듯 그런 모습을 늘 즐거워 하는 표정이어서 다행스럽다.

  우리가 벌써 그런 때가 되었나? 당연한 일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문득 빗소리를 들으며 괜스레 슬퍼져서 눈물 솟는 밤이 있다. 열 여덟에 경험 했던 그런 감정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리는 없고...... 이유없이 촉촉해지는 가슴 한 귀퉁이에서 겸허한 삶의 한줄기 빛이 섬광처럼 번쩍이고 지나간다. 이것이 곧 살아 있음이야. 어쩔수 없이 저물어 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내가 진정 살아 있음을 일깨운다. 모든 것이 희석되어 희미해져 가는 하루하루를, 무엇을 사고하며 무슨 희망과 낙으로 살아 내야 하는지 수없이 의문 부호를 찍으며 황혼을 맞이해야 하는 시간들, 이런거였을까? 인생이란 게.... 참 재미없고 시시하다. 웃음조차도 젊음의 전유물인 듯 잊어 버린지 오래인데 슬퍼서 눈물이 난다는 것도 어찌 보면 사치스런 감정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반갑다. 아직도 퇴색되지 않은 열정의 찌꺼기가 손톱만큼이나 남았나 보다,라고 눈물을 찍어 내며 혼자 씁씁한 미소를 흘린다.
  나이 먹어 살아 간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쉽게 잠이 오지 않는 것도 두렵고, 적막 가운데 열심히 움직이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징그럽고 사납다. 추적 추적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는 빗소리가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내려 주고 있음인지 외로움에 벗이 되고 있어 차라리 다행이다.

  내일을 맞기 위해 이 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일찌기 루즈벨트 대통령 부인 "에레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옛 일이고 내일은 신비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내게 오늘이 있다는 것은 축복 받은 선물이고 다시 내일을 맞이한다는 것은 분명 신비로움에 틀림없다. 이 밤 비가 오고 나면 내일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제니는 어김없이 빨래 통을 안고 나오는 남편 팔에 메달려 다리를 끌며 따라 나올 것이고 커다란 쓰레기 바켓츠를 빨랫줄 밑에 갖다가 놓고 세탁물을 올려 놓아 줄 때까지 위태위태하게 서서 기다릴 것이다. 바라보는 이 쪽이 불안하고 불편한데 그녀는 장난삼아 그렇게 하는 아이처럼 마냥 히죽거리며 웃는다. 나는 그 모습이 존경스러워 늘 도둑 고양이처럼 훔쳐보며 낯선 풍경을 즐기고 시샘이 번져 나오는 마음을 달랜다. 몸이 불편해도 티없이 해 맑게 웃을 수 있는 그녀의 여유가 부러워 그렇게 닦아 보자고 다짐도 해 본다. 현실을 긍정하며 밝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제니에게 세발 인생인들 뭐가 그리 두려울까. 몸은 아니어도 마음은 언제 늙을지, 그녀의 표정은 활짝 핀 한 송이 수선화처럼 화사하기만 하다. 사실 나는 제니보다 더 큰 소리로 웃으며 살아도 되질 않는가. 언제인가 춥다고 웅숭거리는 나를 보고 몸에 살이 너무 없다고 안쓰러워 하던 제니. 깡 말랐어도 나는 아직 튼튼한 두 다리로 마음놓고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행복은 그렇듯 비교 속에서만 잠깐 느껴지는 요물일까?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내 보잘 것 없는 속물이기에 어쩔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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