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이현숙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멜리사 리
수필기행
조기조
김지향
송하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박종배
새움터
동진
이동온
피터 황
이현숙
변상호경관
마리리
마이클 킴
조병철
정윤성
김영나
여실지
Jessica Phuang
정상화
휴람
송영림
월드비전
독자기고
이신

[361] 바보가 되어가는 이야기 하나

0 개 2,567 KoreaTimes
  "여기 우산 떨어졌는데요"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말에 흘낏 돌아보니 어떤 젊은이가 내 우산을 집어서 작은 돌담에 얌전히 걸쳐 놓고 간다.  (어머나 큰일 날 뻔 했네)  "고마워요" 철없는 아이처럼 너스레를 떨며 우리 아이들을 웃기고 즐거움을 준 우산이 아니던가. 무슨 마트였었지. 서울에서 마지막 쇼핑을 하던 날. 떠날 준비에 바쁜 내 곁에서 벌써부터 결별의 아픔을 달래는 표정의 언니 때문에 나는 소풍 가는 가벼운 기분으로 수선을 떨수밖에 없었다. "무슨 선물 같은 것 없나요?" 사은품이 넘쳐 나는 한국이기에 주책없이 보채 본다. "우산 밖에 없는데요. 그거라도 괜찮으시다면...." 한정된 금액에 미달이어서 곤란하지만 먼 곳에서 오신 분이라 특별히 드리겠다며 엄청 생색까지 낸다. 까짓거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장대같이 긴 케이스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것인지 꺼내 보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짐을 다 꾸리고 나니 그것 하나가 남아 썰렁한 자리를 지키고 있질 않은가. 오클랜드에 돌아가면 곧 우기일텐데.... 골프 우산이 시원찮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귀찮기는 하겠지만 꾹 참고 가지고 가 볼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살며시 가방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날은 억수같이 비가 퍼부었다. 가방을 끌고 내려오니 이 빗속에도 이사를 오는 사람이 있어서 하얀 차일을 치고 그 밑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차일 밑에 바짝 차를 들이대고 여자들이 낑낑대니 일하던 인부 한 사람이 안쓰러운지 가방을 번쩍 들어 차에 얹어 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에 오르려는 순간 우산 생각이 났다. 다시 돌아가 현관 바닥에 버려진 긴 박스를 찾아 짐 위에 걸쳐 놓았다. 꽤나 가로 걸리는 귀찮은 짐이라 용케 가져갈 수 있을런지는 끝까지 의문 부호가 찍혔다.

  인천공항! 딸애를 돌려보내고 배웅 나온 친구와 찐하게 수다라도 좀 떨려고 했는데 허겁지겁 밥 한그릇 먹고 입가심 차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바쁘게 헤어져 왔건만 겨우 시간에 맞출 것 같다. 게이트까지 왜 그렇게 멀고 먼지.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끌고 옆구리에 그 우산까지. 팔이 마냥 늘어나서 너무 많이 아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 한거야 다들 나갔나?) 문득 공항에 미아로 혼자 남았다는 바보같은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 때 마침 케어를 한 휠체어 손님과 노약자들이 도착했고 곧바로 개찰은 시작되었다. 그들이 타려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는 것은 내게도 반가웠다. "젊고 건강하신 분은 저 계단으로 내려가셔요"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나 젊지 않아요. 나도 자격있어요". 그 뻣뻣한 체면 자존심 다 어디에 버리셨나 바보같이. 밀고 들어가서 그렇게 비행기에 오르고 보니 내가 일등으로 아무도 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느긋하게 자리를 찾고 짐 칸에 가방까지 넣으니 드디어 살아났구나. 홀가분함에 안도를 했다. 물론 그 길다란 우산도 가로질러 짐 칸에 들어갔다. 짐과의 전쟁이 끝나고 나니 그제서야 억수같은 비 속을 집까지 무사히 들어 갔는지 딸애가 궁금해졌다. 헤어지는 슬픔마져도 깨닫지 못하고 얼떨결에 이별을 했으니 헤어짐은 이렇게 하는겐가. 혼자 씁쓸한 미소를 먹음는데 나중에 탄 사람들이 짐을 넣느라고 법석이다. 몇 사람이 가방을 올려 보다가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것은 문이 닫히지 않아서였다. 그게 그 우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끔틀 대는 양심에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이제 어쩔건가. 달아오르는 얼굴에 철판을 깐다.

  그렇게 그렇게 그 우산은 여기까지 잘 가지고 올 수가 있었다.
  짐을 모두 풀어 정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그 궁금한 우산을 꺼내 보았다. 새까만 바탕에 끝이 알록이 달록이다. 우산을 펼쳐 든 순간. 와! 멋져라 촘촘하게 열여섯개나 되는 튼튼한 살이 야무진 동그라미를 만드는데 알록 달록이는 빨ㆍ주ㆍ노ㆍ초ㆍ파ㆍ남ㆍ보의 무지개였다. "세상에 이걸 안 가지고 왔으면 얼마나 후회를 했겠나" 아이들은 철없는 애처럼 들떠서 호들갑을 떠는 나를 보며 웃어 죽는다고 야단이다. "우산 하나에 그렇게 좋으세요." 손톱만한거라도 내 맘에 꼭 드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마 그 집에서 쇼핑한 여름 옷가지들보다 별 생각없이 받아 온 이 선물이 더 마음에 드는게 틀림없는 일인것 같다. "이만 이천원에 파는거에요" 우산을 건네주면 하던 주인의 말이 생각났다. 물방울이 또르르르 젖지도 않는 방수 처리까지. 엄청 횡재를 한 것 같은데 그런 값에 여기서는 이런 것 어림도 없지. 한국것의 자부심이 뭉클 치솟는다.

  Made in Korea 만세! 바보 만세!

‘포우투카와’ 꽃잎 날리던 교정

댓글 0 | 조회 2,808 | 2011.08.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난 일들 가운데… 더보기

차 사랑 할아버지

댓글 0 | 조회 2,824 | 2011.07.26
‘허버트’ 노인이 또 차를 바꿨다. … 더보기

그 남자의 6. 25

댓글 0 | 조회 3,261 | 2011.06.28
시니어클럽 ‘무지개’에 나오시는 분들… 더보기

오월의 그 열기처럼

댓글 0 | 조회 2,706 | 2011.05.25
뜨겁게 달아 오르던 ‘제11대 한인회… 더보기

나눔의 기쁨

댓글 0 | 조회 2,988 | 2011.04.28
큼직한 상자에 여러 옷가지들과. 먹을… 더보기

호평동에서 온 편지

댓글 0 | 조회 3,388 | 2011.03.23
어린 강아지풀과 노오란 민들레꽃이 얌… 더보기

설 명절에 웬 송편을....

댓글 0 | 조회 3,394 | 2011.02.22
‘젊은이는 희망으로 살고 늙은이는 추… 더보기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댓글 1 | 조회 3,594 | 2011.01.26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 더보기

2010년 11월에는...

댓글 0 | 조회 3,057 | 2010.12.22
수도 없이 바뀌고 반복되는 세월속에서… 더보기

띵호아! 사랑의 도시락

댓글 0 | 조회 4,061 | 2010.11.24
그들이 알고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중국… 더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0 | 조회 3,326 | 2010.10.28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 더보기

젊음이 흘리고 간 낭만을 줍다

댓글 0 | 조회 3,423 | 2010.09.29
감색 양복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단추… 더보기

고목에 피운 무지개꽃을 아시나요?

댓글 0 | 조회 3,440 | 2010.08.25
“푸 -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Ⅲ)

댓글 0 | 조회 3,540 | 2010.07.28
조(鳥)도를 구경하고 다시 ‘진도’로…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Ⅱ)

댓글 0 | 조회 3,009 | 2010.06.22
진도대교 앞. 자그마한 모텔에 여장을… 더보기

고국의 가을 속으로 달리다(Ⅰ)

댓글 1 | 조회 3,374 | 2010.05.25
낙엽 구르는 바람 소리에 잠을 잃은밤… 더보기

여기는 지금 해 질 무렵의 오클랜드 시티

댓글 0 | 조회 3,638 | 2010.04.27
무공해 초록 나라에 사는 내가 부러워… 더보기

부자(富子)가 싫다는 사람도 있네

댓글 0 | 조회 3,498 | 2010.03.23
"돈은 역 효과를 낳는다. 행복이 오… 더보기

마음밭에 심기운 꽃

댓글 0 | 조회 3,046 | 2010.02.23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동거한다는 부산… 더보기

빛 바랜 도화지에 행복 그리기

댓글 0 | 조회 3,551 | 2010.01.27
새 카렌다를 바꿔 걸었으니 어김없이 … 더보기

실수야 떠나라

댓글 0 | 조회 3,349 | 2009.12.22
12월 마지막 달, 싫어도 또 하나 … 더보기

“A”시에서

댓글 0 | 조회 3,673 | 2009.11.25
내가 살던 A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도… 더보기

서울 일기

댓글 0 | 조회 3,264 | 2009.10.27
9월 00일"여보시요 안녕하슈?" "… 더보기

딸이 좋아

댓글 0 | 조회 3,542 | 2009.09.22
딸하나, 또하나! 이 딸딸이 엄마를 … 더보기

메밀묵 사려∼∼

댓글 0 | 조회 3,741 | 2009.08.25
동지가 지나 열흘쯤 되면 그 짧던 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