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그 사람 “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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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그 사람 “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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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을 또 만났다. 수영장엘 가면 만나게 되는 사람이지만 내가 자주 가질 않으니 오래간만에 만난 “프레드”다. 그의 곁에는 항상 동양 여자들이 같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 그가 동양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니면 수다스러워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은 한 번도 본적없는 어느 여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보통 때와는 다르게 느낌이 이상했다. 조용조용 속삭이듯 주고받는 대화의 모습이 뒤에서 보기에 예사롭지가 않아 문득 그의 와이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드 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지만 와이프는 일본여성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퍼뜩 그런 분위기를 떠올린 것이다. 왜 같이 안오고 늘 혼자만 오느냐고 물었을 때 여기 오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오늘은 웬일일까? 살짝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하는데 그가 벌써 나를 알아 버렸다.

  “헬로우 롱타임 노씨”

굵직한 목소리가 여전히 힘이 넘치고 명랑했다. 적당히 대답하고 밖에 나와 땀을 식히려는데 어느새 따라 나온 그가 그 여성과 함께 내 앞으로 다가와 정식으로 소개를 한다. “마이 와이프”라는 소리를 들으며 신통하게도 내 느낌이 맞아 떨어졌음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 여자는 만나서 반갑다고 화들짝 웃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에쎄이 라이터?”프레드를 처음 대할 때부터 내가 글쓰는 사람임을 아는 터여서 와이프에게도 그리 말을 한 모양이다. 요즈음도 글을 쓰느냐고 관심있게 물어온다. 프레드의 나이는 육십대 중반쯤, 그 여자는 오십이 아직 안된 젊은이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동양사람답지 않게 눈도 부리부리하고 시원해서 예쁘지는 않았지만 서구형의 건강한 여성이었다. 당신의 일본아내가 너무 아름답다고 칭찬해주니 입이 함박만해서 그렇다고 시인하며 좋아했다. 아주 천천히 알아듣기 쉬운 말로 영어가 모자라는 사람들과 잘도 어울리는 연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양 여성들 중에는 특히 일본여성들이 서양남자들을 무조건 좋아한다더니 그 실체를 보면서 그들이 어찌 만났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찐한 스토리가 분명 있었을텐데 말이 부족하니 들을 수가 없는게 안타까웠다. 그가 늘 하던 말, 자기 살아온 스토리를 쓰고 싶다더니 평범치 않은 과거사의 여운을 느끼게 했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일 년에 몇번씩 공연도 한다지만 남들이 쉬는 주말이 더 바빠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잠깐씩 면도하러 수영장엘 나온다던가. 어느날은 수도 파이프가 터져서 집안이 온통 물난리로 젖은 카페트를 말리느라 열흘씩이나 혼이 났다는 이야기며 유리창을 닦는데 며칠을 보냈느니 그런 일상의 일들을 제스츄어를 써가며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늘 수영복 차림으로 만나서 그런 이야기나 늘어놓는 그가 정장을 하고 두툼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는 게 영 연상이 되질 않는다. 남자다운 튼실한 체구에 어찌보면 찰톤헤스톤을 닮기도 한 것 같으니 멋진 남성 피아니스트일 것이다.

십 사오년전에 오스트리아로부터 이민을 왔다는데 휴가 때마다 가는 것은 형제자매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지만 자녀들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은 것같다. 재혼을 했을 터인데…, 결혼을 늦게 한 것일까? 인생스토리를 자주 들먹이는 걸보면 우여곡절 기복이 많은 삶을 살았다는 암시같이 들렸고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이 그걸 말해주는 것같아 나이는 그냥 먹는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와이프와 그의 어머니까지 세식구가 산다고 한다. 해마다 하는 고국 나드리에 장모가 동행하는 걸보면 그녀가 만만치 않은 재력가가 아닐까.  장모와 비슷한 나이의 사위, 젊은 아내와 그의 어머니, 두 여자 틈에서 우대받는 유럽남자, 일본 여성들은 시종처럼 남편을 떠받든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만족하고 행복할까?

한국에 관심이 많아 지금 봄이냐? 여름이냐? 나만 만나면 물어 오지만 지금은 삼월이니 아직은 그렇고 사월이면 꽃이 많이 핀다고 하니 오스트리아도 똑같다고 하며 좋아한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부인 한복입은 프란체스카 여사의 고국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동계 올림픽을 치룬 인스브르크에 갔을때 기념으로 남아있는 스키보드며 그 밑에 메달리스트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에 ㅇㅇㅇ 한국이름이 있어 놀랐던 일, 북한 선수였지만 분명 세글짜 우리 이름에 우쭐했었다. 밖에 나오면 우린 그냥 순수한 동족인 것을……, 언젠가는 내가 그 자랑을 꼭 하리라고 마음 먹는다.

구월이 되면 또 육주의 휴가여행을 하게 된다고 하니 나는 앵무새처럼 부럽다는 말을 해야했다. 독일로 이태리로 파리로 4000여 킬로씩 달렸다고 하는 자랑을 다시 듣게 되기 때문이다. 휴가를 한 번도 시시하게 놓치지 않고 값지고 알차게 보내는 그들의 의식이 돋보여서 부러운 게 사실이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도 그와 버금가게 열정으로 인생을 살찌우는 방식, 그 충전의 효과로 더더욱 윤택한 삶을 이어 나갈 그들의 노후가 행복 속에 오래오래 머물기를 가만히 빌어 준다.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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