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선물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선물

2 3,051 NZ코리아포스트
우연히 들른 것인지 영역을 넓히려 온 것인지, 어느날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진한 갈색의 야성적인 무늬가 매력적인 ‘삵’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첨 보는 녀석이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쌈질을 하거나, 발정 나서 울어대다가 책임지지 못할 새끼를 낳거나, 생선을 훔쳐가거나 하는 건달 놈팽이 중 하나겠지. 그런 놈들은 나와 무심히 마주치면 호들갑떨며 줄행랑치기 일쑤였다. 내가 무슨 해코지라도 한 것처럼.

‘삵’은 달랐다. 현관 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선가 나타나 ‘야옹’ 인사를 했다. 심지어 현관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한 달음에 달려와 또 ‘야옹’ 반긴다. 발에 착착 감기면서 쫓아다녀서 걸음을 내딛다가 넘어지기도 했고, ‘삵’의 발이 밟혀 ‘야옹!’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텃밭에서 치커리를 뜯고 있으면 무릎에 비벼대고, 마당 수도가에서 치커리를 씻고 있으면 또 와서 물이 졸졸 흘러가는 모양을 고개를 박고 들여다본다. 온 몸이 갈색인데 발과 발목만 흰색이다. 네 발을 모으고 옹송거리고 있는 ‘삵’의 발에는 흰 버선이 신겨져 있고, 내 입가에는 빙그레 웃음이 돈다.

‘삵’은 먹을 것을 주면 먹지 않았다. 나는 굳게 믿었다. ‘삵’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좋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렇게 두어 달이 흘렀다.

어느 날, ‘삵’이 안 보이면 궁금했다. 이제 안 오는 건가? 호둥그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삵’이 삼삼하게 밟혔다. ‘야옹’ 박자를 넣으며 앞 다리와 뒤 다리를 쭉 뻗는 스트레칭, 발라당 누워 좌우로 뒹굴던 애교도 그리웠다. 줄타기하던 왕의 남자처럼 데크 위 난간에서 묘기를 부리다가 사뿐히 내려앉던 모습은 어디서 찾을까. ‘삵’이 한 이틀 안 나타나자 나는 갑자기 쓸쓸해졌다. 아침마다 창 아래 와서 ‘야옹’ 아들을 깨우던 자명종 ‘삵’은 어디에? ‘삵’의 방, 덤불 아래를 들여다 보면 텅 비어있다. 작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표범처럼 폼 잡던 ‘삵’의 자태는 온데간데 없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긴 길을 달려오던 녀석의 숨찬 발걸음도 그리웠다.

그렇게 그리움이 짙어질 무렵 ‘삵’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 반가웠다. 나는 버선발을 꼭 쥐고 악수를 했고 아들은 얼굴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어느날 ‘삵’은 선물을 가져왔다. 아들은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 하려는 것이라 했다. 엄지 손가락만한 쥐였다. 그렇게 작은 생쥐를 어떻게 잡았을까 ‘삵’은 참 재주도 좋지, 신통방통했다. 모름지기 선물이란 ‘낭만’이라는 포장지로 멋을 내야 한다고 믿었던 내 생각이 바뀌었다. 생쥐 선물은 전혀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삶의 더러운 욕망은 덜어내고 순수한 빛을 더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사랑에는 고난이 따르는 법. 남편의 질투가 시작되었다. 자기보다 ‘삵’을 더 예뻐한다나 어쩐다나. 고의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삵’은 생쥐 선물을 꽤 오랫동안 앞 마당에 두었다. 남편이 차고에서 차를 꺼내 나가다가 그만---. 차 바퀴에 깔려 ‘삵’의 선물은 포가 되었다. 말 그대로 ‘쥐포’가 된 것이다. 생쥐는 마당에 데칼코마니되었다. 머리, 몸통, 꼬리까지 섬세하게. ‘삵’의 선물은 우리 집 마당에 한동안 작품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로도 또 한 번 ‘삵’은 생쥐 선물을 가져왔다. 우리는 곧 그 집을 떠나야 할 상황이었고, ‘삵’의 선물은 이별 선물이 되었다. 아들은 새 주인에게 ‘삵’을 잘 대해주라고 부탁할 것이라고 했다. 어떡하지? 우리 고양이도 아닌 데 서로 깊게 길들여져서..

새 주인이 마지막 인스펙션을 하러 오기로 한 날, ‘삵’은 그날도 우리 집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새 오너가 등장했다. 갑자기 ‘삵’이 그들을 너무 반가워했다. 온 집안을 졸졸 쫓아 다녔다. 발걸음이 저리 신날 수가 있는가. 내 사랑이 다른 이에게 문드러질 정도로 비벼대는 꼴을 눈 앞에서 봐야 하다니---. 우리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삵’은 갔다. 나는 아직 ‘삵’을 보낼 수 없었지만.

이사하는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내 가슴에도 보슬비가 질척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아이큐가 얼마쯤 되지? 냄새는 잘 맡나?”

아들에게 물었다. 길 하나 건너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으니 ‘삵’이 혹 냄새를 맡고 찾아오지나 않을까, 그럼 다 용서해야지.

이사 다음 날, 짐을 푸느라 수선을 피우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거실 창 밖으로 ‘삵’의 모습이 보였다.

“삵이다!”

문간방에 있던 아들이 얼른 뛰쳐나가서 잠깐 보았는데, 녀석은 금세 사라졌다. 그 뒤로 아직까지 녀석은 오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일까, 새 주인에게 듬뿍 사랑을 받으며 너무 행복해서 우리를 까맣게 잊은 것일까.

나는 요즘 ‘흠칫’ 거린다. 바람결에 얼핏 갈색이 보이면, 하얀 버선발이 보이는가 싶으면---.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yooye841
이곳에 이민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겉으로 내색은 안한다는 것이지요. 고양이지만 만리 타국에 있는 친척보다 어찌보면 더 정이 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김영나
제가 워낙 동물을 좋아합니다.

그네들은 엔돌핀을 샘솟게 만든답니다.

고양이 녀석 보고 싶네요.

NZ 경제요약- (07년 2월2일)

댓글 0 | 조회 844 | 2007.02.28
1. 국내 경제 2. 금리, 환율 동… 더보기

나의 지음(知音)은 어디에?

댓글 2 | 조회 2,925 | 2012.10.24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가만히 있어도… 더보기

침묵의 봄

댓글 0 | 조회 1,912 | 2012.10.09
봄날 밤, 벚꽃놀이를 했었다. 동행자… 더보기

좋은 일, 나쁜 일, 이상한 일

댓글 0 | 조회 2,331 | 2012.09.25
수십 년 영화를 만들었고, 거장이라 … 더보기

강북스타일

댓글 3 | 조회 3,146 | 2012.09.11
이민 생활의 방향, 성패는 뉴질랜드에… 더보기

죽기(훨씬) 전에 꼭 해야 할 일

댓글 2 | 조회 3,965 | 2012.08.29
옛날에는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할 때 … 더보기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다

댓글 5 | 조회 4,668 | 2012.08.14
지난 일요일, 3백여 개의 식탁이 차… 더보기

눈물 많은 남자

댓글 4 | 조회 2,240 | 2012.07.24
동시대에, 지구에 함께 살고 있다는 … 더보기

화살보다는 손수건을---

댓글 5 | 조회 2,244 | 2012.07.11
모름지기 좋은 정치란 국민들이 &ls… 더보기

그 저녁이 참 그리웠다

댓글 5 | 조회 3,724 | 2012.06.26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요즘, 뒤통… 더보기

당신을 희망의 메신저로 임명합니다

댓글 3 | 조회 2,385 | 2012.06.12
---- 코리아 포스트 창간 20주년… 더보기

항아리 속 女子

댓글 4 | 조회 3,036 | 2012.05.22
#1. 한국의 전통 장(醬)들은 오래… 더보기

지지고 볶고 끓여주세요!

댓글 1 | 조회 2,596 | 2012.05.09
그보다 더 시끄러울 수는 없었다. 한… 더보기

Angry Birds

댓글 4 | 조회 2,524 | 2012.04.24
시인 타고르는 한국을 ‘동… 더보기

존 키의 선물

댓글 1 | 조회 2,598 | 2012.04.11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형성하며 … 더보기

살얼음판 위의 여자들

댓글 3 | 조회 2,746 | 2012.03.27
인간의 삶과 기후는 뗄래야 뗄 수 없… 더보기

세종대왕과 사무라이

댓글 3 | 조회 4,670 | 2012.03.13
2년 전쯤 한국에 갔을 때, 가수 &… 더보기

아파트

댓글 5 | 조회 2,908 | 2012.02.29
뉴질랜드는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 부족… 더보기

채식주의자는 행복해!

댓글 3 | 조회 2,858 | 2012.02.15
내 아들이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5년… 더보기

Summer time

댓글 4 | 조회 3,142 | 2012.01.31
엊그제, 안개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 더보기

댁의 마음은 어디 계십니까?

댓글 2 | 조회 2,882 | 2012.01.17
내 영역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 더보기

화다닥씨의 편지-맛있게 잡수세요!

댓글 6 | 조회 3,709 | 2011.12.23
세월이여, 나는 당신을 ‘… 더보기

12월엔 퀸 스트리트에 가야 한다

댓글 5 | 조회 5,587 | 2011.12.13
산타와의 슬픈 추억 한 토막을 얘기하… 더보기

개와 늑대의 시간

댓글 4 | 조회 3,251 | 2011.11.22
하루에 두 번, 하늘에는 더블 캐스팅… 더보기

소통해야 성공한다

댓글 2 | 조회 2,701 | 2011.11.09
10월 21일 발표된 ‘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