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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에 관한 오해

1 2,470 코리아포스트
뉴질랜드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6월 26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 일분기(3월31까지) 실업률이 5%에 육박했다.국내 총생산(GDP)도 전 분기 대비 1% 하락, 일년 전에 비해서 2.7%가 떨어졌다. 지난 해에 이어 5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앞으로도 소생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루에 실업자가 2천 명 이상씩 증가하고, 실업 수당을 타려는 이들의 긴 줄은 늘어나는데, 이미 정부 곳간은 텅 비어 있는 실정이다. 머지않아 실업률이 8%대에 이를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노동의 양태로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면 '개미와 베짱이'로 비유된다. 없는 일거리도 만들어 내서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개미족'이 있는가 하면, 일할 의지가 없어 그저 수당이나 타면서 놀고 먹는 '베짱이'부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개미족'들은 이 춥고 눅눅한 겨울날에도 난롯가에 앉아 호젓하게 쉰다거나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여유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개미족의 대표 U씨. 홈 비지니스를 하는 남편을 도우면서 홈스테이 학생을 세 명 돌보고 있다. 자기 아이들 두 명까지 더하면 일곱 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불우 이웃을 위한 봉사도 열심이다. 그녀는 새벽 5시에 눈을 뜨면 밤 11시까지 엉덩이 붙일 시간이 없다.

K씨는 낮에는 토마토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 일을 돕고 있다.

L씨는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남편과 청소일을 한다.

OECD 국가들의 노동 시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노동 시간은 2천 시간을 훨씬 넘어(2423시간/2004년, 2357시간/2006)단연 1위였다. 아니, 노동시간 2천 시간이 넘는 나라는 OECD국가 중 한국이 유일했다. OECD 통계 연보의 가장 최근 자료가 2006년 것임이 유감이긴 하지만, 2009년에도 한국인의 노동 시간은 연간 2천 시간이 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노동 시간보다 노동의 질이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인은 노동의 질 또한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넌 너무 일을 많이 해. 힘들지 않니? 좀 덜하고 살면 안돼?"

U씨의 앞집에 사는 키위는 U씨만 보면 걱정스레 묻는다.한국인들은 일벌레, 일중독자들이라고 혀를 내두르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반문해야 한다.

"놀고 있으면 빈 곳간은 누가 채우냐?"

반면, 베짱이 족들도 주변에 널려 있는데 그 전형을 지인의 가게에서 자주 본다. second hand와 전당포를 겸하는 가게다. 힘 좋게 생긴 청년이(그의 핏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특정 인종을 거론 하지 않기로 하자) 자기 키만한 냉장고를 장난감처럼 밀며 가게로 들어섰다.

"엄마 생일인데 케이크 살 돈이 없어서---"

"30분 후에 와. 냉장고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꽃도 사면 엄마가 좋아하실텐데, 많이 좀 쳐주라고 청년은 내 친구 손을 부여잡고 흐흐 웃었다. 청년이 30분 후에 오겠다며 가게를 나갔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처구니 없음과 무한한 감동이 한 가지 상황을 목격하고 벌어졌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케이크를 안 사 먹으면 되잖아. 냉장고를 잡혀서까지 꼭 케이크를 사야 하나?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은 다 어떡하구. 그래도 효심 하나는 끝내주네. 인당수에 몸 바쳐 아버지 눈을 뜨게 한 심청 못지 않게 뭉클하군!"

참으로 모를 일은 은행 잔고가 코인 몇 개 정도인 저네들의 마음은 저 푸른 초원의 양처럼 평화롭고 한가롭다. 만약 우리 개미족들이 돈이 없어서 냉장고를 잡혀 먹을 정도라면 스스로의 처지를 얼마나 비참해할까. 냉장고를 잡혀 케이크를 산다 한들 그 케이크가 달콤할까, 비감함처럼 쓴 맛이 아닐까.혹시 청년의 뒷 모습에서 가난한 자의 처량과 슬픔이 조금이라도 묻어나지 않을까, 힐끔 훔쳐보았지만 청년은 덤덤한 모습이다. 돈 생기면 다시 찾으면 되고, 돈 떨어지면 또 핸드폰도 맡기고 오디오도 맡기고, easy going! 있음 먹고 없음 말고 그저 되는 대로 산다.

뉴질랜드 인종별 실업률을 보면 '유럽피안-아시안-퍼시픽 아일랜더-마오리 순으로 유럽피안이 가장 낮고 마오리가 가장 높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전문 직종에 취업하기 유리한 유럽피안을 제쳐두면 뉴질랜드 정부의 곳간을 채우는 일은 '개미처럼 일하는' 아시안들의 몫이 되어버린 듯 하다.이 점을 간과한 덕택에 뉴질랜드 곳간은 텅 비어가고 스산한 바람만 휘몰아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는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짝짓기를 하고 후세를 남겨야 하는 종족보존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날개가 부스러지도록 구애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자연 상태의 어떤 생물도 나태함에 빠져 있진 않는다.

21C, 문명 사회에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오히려 더 엄격하게 존재한다. 게으르다는 것은 곧 도태된다는 뜻이다. 나태한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부지런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힘'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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