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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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누드 비치

0 개 6,671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우리 동네 과일 가게에서, 적당히 잘 익은 키위를 고르느라 손으로 살짝 키위를 잡았다 놓았다 하던 무심한 순간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검은 천으로 온 몸을 감싸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쾌걸 조로, 아니 저승사자 복장의 여인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는 검은 바람처럼 휙휙 공간을 가르며 가게 안 이곳저곳에 출몰했다. 나는 발 없는 유령 같은 그녀의 동선이 그저 신기해서 넋 놓고 바라보았다.

뉴질랜드에서 무슬림 전통 복장을 입은 여인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쇼킹해서 한동안 그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도르'나 '히잡'이 스카프처럼 둘러쓰는 정도의 가리개라면 '부르카'는 얼굴마저 장막 속에 가둬 버린다. 눈 부분은 망사천으로. 염을 해 놓은 것처럼 온몸을 천으로 두르고 다니는 모습은 답답함과 불편함을 넘어선다. 그녀들은 자유와 인권이 억압된 검은 감옥을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몸에 둘러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속박된 그녀들이 어떻게 머나 먼 이국땅 뉴질랜드까지 왔을까, 의문이었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복장을 천형처럼 입고 다니는 이들이 뉴질랜더라면, 틈만 나면 옷을 벗어 던지는 누드족 또한 뉴질랜더다.

나는 순전히 길을 잘못 들어 누드족과 만났다. 오클랜드 미션 베이 윗쪽 바윗가에서 심심풀이로 아들과 낚시를 하는데 젊은 두 남녀가 바로 지척에서 '남녀 상열지사'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포르노그라피가 되기 전에 자리를 떠야할 것 같아 황급히 짐을 챙겨 다른 해변을 찾아 들어간 것이 그만 레이디스 마일 비치였다. 비치를 걸어 올라가는 동안 누드족들과 맞닥뜨릴까봐 지레 겁을 먹어서 나는 얼어 있었다. 그래서 돈 떨어진 것이 없나, 그런 폼으로 땅만 보고 걷는데, 내 뺨에 강한 텔레파시가 꽂히는 것이었다.

“날 좀 봐주세요, 제발! Oh Baby!”

물리칠 수 없는 염력이었다. 내 머리는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모래밭 덤불가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 누드였다! 한 쪽 다리를 세우고 한쪽 다리는 털썩 모래밭에 내려놓은 자세였다. 그 남자는 자랑스럽게 거시기를 내보이며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고 있었다.

‘에그머니나!’

나는 진땀을 흘리며,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밭을 도망치 듯 빠져 나왔다. 옷 벗은 남자의 아쉬운 눈빛이 옷 입은 여자를 한동안 따라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석양 무렵이었고 옷 벗은 남자는 기우는 해처럼 늙어 가고 있는 초로의 남자였다. 외로운 남자, 고독한 해변이었다. 누드비치는, 싱싱하게 빛나는 나신(裸身)들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마음껏 생명의 찬란함, 자연과 하나됨을 즐기는 축복의 장이 아니었던가. 나의 선입견은 사정없이 깨져 버렸다. 그 날 이후, 나의 누드 비치는, 석양의 누런 빛가루가 안개처럼 조금씩 내려 쌓이는 오래된 사진 같은 모습이었다.

퇴색해가는 사진처럼 누드비치는 점점 지구촌의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오노프레 누드 비치는 9월 1일부터 수영복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어길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하고, 누드족들은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 스위스 레망 호숫가의 누드 비치도 경찰이 순찰을 돌면서까지 누드를 금지시키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에 위치한 우제돔 비치는 독일의 누드족들과 폴란드의 반 누드족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반 누드족들은 누드 비치에서 성추행이나 성범죄, 은밀한 섹스, 외설 행위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주의 스완본 누드 비치 안내문은 아예 ‘변태 사절!’이란다.

‘The area is well policed and perverts are not welcome.’

누드비치의 본질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삶의 열망이다. 분쟁을 일으키고 경찰의 제재와 관리를 받아야 하는 누드비치는 또 다른 양상으로 인간을 속박시키는 역겨운 모양새다. 차라리 수영복, 비치가운 입고 자유롭게 바다를 만끽하는 것이 낫겠다.

세계 최고 길이, 장장 45km의 누드비치가 뉴질랜드에 생긴다고 한다. 웰링턴 북쪽의 Kapiti Coast가 바로 그 곳. 시속 45km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한 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거리를 모두 누드족에게 내준단다. 누드족이 그렇게 많다는 것인가, 응큼한 관광객들을 불러 모아 돈을 벌겠다는 것인가. 무엇을 위한 누드이고, 자유인가.

11월 8일, 뉴질랜드 총선을 앞두고 있다. 뉴질랜드가 벗어 던져야 할 것은 옷이 아니다. 부르카족과 누드족처럼 사회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화합하고 상호 보완해서 상생의 정치를 펼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벗어 던져야 할까, 고민해야 할 때다.

ⓒ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http://www.koreatimes.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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