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 샴 트윈(Siamese Twin)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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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샴 트윈(Siamese Twin)의 비극

0 개 2,517 KoreaTimes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한 20년쯤이나 되었을까, 나는 신문을 읽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1811년, 당시 태국의 이름은 '샴(siamese)'이었다. 영화 '왕과 나'에서 율브린너가 다스리던 그 나라다. 샴에서 몸통이 붙은 채로 형제가 태어났다. '창(chang)'과 '엥(eng)'이었다. 희미한 흑백 사진 속의 창과 엥은 알파벳 소문자 r처럼 서 있었다. '샴 트윈'이라는 의학 용어의 유래는 그 때부터. 샴 형제는 미국 사람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건너가 서커스단에서 활약했다. 몸이 붙어 있는 창과 엥을 보려고 사람들은 몰려들고 흥행은 매번 성공적이었다. 창과 엥은 미국 필부(匹婦)를 만나 결혼했고, 각각 10명, 11명(9명, 10명이라는 설도 있음)씩의 아이도 낳았다. 그 와중에(?)!!! 창이 사랑을 나눌 때, 엥은 자는 척 했을까, 엥이 사랑을 나눌 때 창은 실눈 뜨고 훔쳐봤을까, 흥분했을까.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보아도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간의 적응력과 의지력, 순응력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갈수록 태산이라고 창과 엥은 나를 참 기막히게 했다. 창은 성격이 급하고 놀기 좋아하고 노름과 술을 좋아했다. 엥은 내성적이었고 조용했다. 저녁이 되어 지는 노을을 보며 사색에 잠긴 엥, 창은 노름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유순한 엥은 번번이 창에게 끌려 다녔다. 얘기의 클라이막스는 창이 노름판에서 위스키를 들이키며 끗발을 올리고 있을 때 엥는 꾸벅꾸벅 졸고 있더란 대목이었다. 실제로 본 듯한 그 장면은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게 했다. 주체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인간은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같은 피가 서로의 핏줄을 돌고 영양분을 빨아들여서 생명을 유지했을 창과 엥. 63세 때, 창이 먼저 죽고 몇 시간 뒤 엥도 죽었다. 창이 죽어서 어깨 위에 있는데, 그 주검을 코 앞에 두고(정말 코앞이다)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엥의 심정은 어땠을까. 타인이었지만 자신이기도 했던 창, 자신이었지만 타인이기도 했던 엥. 주체이면서 객체였고 객체이면서 주체였던 두 사람!

  사지가 멀쩡히 분리되어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고 우리는 샴 트윈이 아니던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은 주체와 객체를 넘나드는 갈등 관계와 '지옥' 같은 '타자(他者)'들 속에 살고 있다. 술, 친구들, 노는 것 좋아하는 남편은 창이고 나는 엥이다. 유순하고 말없는 여동생들은 엥이고, 성격 급한 엄마는 창이다. 재미는 있지만 지옥 같다는 한국은 창이고, 재미는 없지만 천국이라는 뉴질랜드는 엥이다. 나와 칡 넝쿨처럼 얽혀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들 중에는 속 시원히 분리 수술을 해 버리고 싶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기적이고 아내를 배려하지 않는 남편, 잔소리쟁이 아내, 속썩이는 자식들, 경우없이 구는 지인들---.

  샴 트윈의 얘기를 그린 영화 "Twin Falls Idaho"에서 마크 형제는 어린 시절, 기차 길에 누워 자신들의 몸이 분리되는 꿈을 꾼다.

  "기차 소리가 들려!"

  기차가 획 지나가면 깔끔하고 완벽하게 분리되어 온전하게 '자신'만으로 살게 될 생각으로 마크 형제는 흥분한다. 2003년,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던 라단, 랄레 자매도 분리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설레었던가. 남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법학과 저널리즘도 따로 공부하고, 정면으로 거울을 보고 화장도 해보고. 그것이 죽음을 담보로 한 위험한 설레임이었다는 것은 곧 밝혀졌다.

  샴 트윈은 20만 명 중 한 명 꼴로 태어난다. 수술 도중 숨진 이란의 라단, 랄레 자매처럼 머리가, 혹은 가슴이나 하반신이 붙은 경우도 있다. 샴 트윈은 몸의 기관을 공유하거나 호르몬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히드라처럼 머리는 둘이어서 엄밀히 다른 주체다. 만약 중요 장기가 하나 뿐이라면 과연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샴 트윈의 분리 수술 문제는 의학적, 윤리적 측면 모두 인간의 판단 저편에 있다.

  생물학적이 아닌 사회적, 유기적인 관계는 어쩜 몸이 합쳐져 있는 것 못지 않게 질기고 질긴 많은 인연과 사연으로 얽히고 설켜 있다. 만약 그 '지옥'같은 사람이나 상황을 잘라낸다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아님 사르트르의 경고처럼, '그들의 시선이 나를 봐주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끊어 낸 뒤에는 나도 사라지는 걸까? 잊을 수 없는 창과 엥이 20년만에 내게 준 해답은 간단했다. 내가 '존재'하므로 샴 트윈의 비극도 원죄처럼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행복한 비극'이라는 것.

  뉴질랜드에서 살기 힘들다고 한숨 폭폭 쉬는 요즘, 아수라장이어서 진절머리가 나는 한국과 느려터져서 복장터지는 뉴질랜드를 함께 향수(鄕愁)하는 이민자는 곱절의 비극 속에서 한숨 대신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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