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영혼의 지팡이(Ⅰ)-마두금 연주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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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영혼의 지팡이(Ⅰ)-마두금 연주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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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처럼, 어미 낙타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아기 낙타를 품에 들이고 젖을 물렸다.

  며칠 전, 어미 낙타는 새끼를 낳았었다. 오랜 시간 난산 끝에 새끼를 뚝 떨군 어미 낙타는 푹 고꾸라진 새끼를 핥지도 않고 훌쩍 몇 걸음 도망치 듯 가 버렸다. 새끼는 비척거리며 일어나 어미의 품을 파고 들었다. 그런데 어미 낙타는 새끼를 매몰차게 외면하며, 빚쟁이 피하 듯 도망 다니기 바빴다. 지독한 산고를 치르면서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받은 어미 낙타는 새끼가 소름 끼치도록 미웠던 것이다.

  동물이 새끼를 낳는 장면은 항상 안타깝다. 언제 적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풀 숲에서, 바람 부는 초원에서, 물가에서, 그저 혼자 힘으로 새끼를 낳아야 한다. 더구나 사막의 모래 산 위에 길을 만드는 위대한 낙타의 긴 다리는 산도(産道)를 통과할 때 얼마나 큰 장애물일까. 오죽 큰 고통이었으면 모든 동물의 원초적 본능인 모성애마저 내버리고 싶었을까. 낙타 어미나 새끼 모두 가엾긴 마찬가지였다.  

  황량한 모래 바람이 부는 몽골에서 낙타 없는 생활은 생각하기 힘들다. 낙타는 사막의 어머니요, 사막의 배이며, 자동차다. 유목민들은 낙타 젖을 짜 먹기도 하고, 짐도 나르고, 교통 수단으로 두루두루 의존한다. 그런 낙타가 새끼를 낳으면 사람이 애 낳은 것보다 더 경사스럽다.그런데 어미가 젖을 안 먹이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미 낙타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몽골의 유목민들은 마두금(馬頭琴)이라는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이웃 마을의 촌로(村老)인 '낙타 심리 치료사'가 문제의 낙타와 만난다. 촌로는 아들에게 마두금을 켜게 한다. 마두금이 연주되는 허허로운 벌판에서 촌로는 어미 낙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무어라고 궁시렁궁시렁댄다. 아마  이런 말들이 아닐까.

  "새끼 낳느라고 고생 많았지? 내가 다 안다, 알고말고. 장하게도 예쁘고 건강하고 튼튼한 새끼를 낳았구나. 대단한 녀석이 나오려고 네가 그리 힘들었던 게야. 낙타야, 너는 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어미 낙타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비로소 새끼를 보듬고 핥아 주고 젖을 먹였던 것이다. 이상은 얼마 전 텔레비전의 동물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몽골 지방의 낙타이야기였다. 눈물 흘리는 낙타 이야기는 몇 년 전 몽골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세계에 소개된 바도 있다.

  마두금은 몽골 전통 악기로 고작 두 줄짜리 자그만 현악기다. 충성스런 말이 죽으면서 주인에게 자신의 주검으로 악기를 만들라고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자신의 머리로는 울림통을 뼈로는 대를 털로는 줄을 만들어 켜면 아픈 영혼들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악기의 윗 쪽에 말 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마두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 다리 사이에 끼고 활로 긁어 소리를 내는 마두금이 어떻게 낙타의 마음을 치료했을까. 인터넷에서 마두금 연주곡을 찾았다. 나는 '단지 두줄짜리 아이들 장난감 같은 악기'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나의 경솔함을 탓했다. 나는 밤새 마두금 연주를 들었다. 소리는 자못 장중했고 애절하며 섬세했다. Matouqin Yunhu, Wind of Dream, The great earth, 사계라는 곡을 들었는데 곡마다 느낌이 달랐다. 해금, 첼로, 바이올린 소리와 비슷하나 어느 악기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맛이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조잡하지 않았다. 현악기 특유의 날카롭게 신경줄을 건드리는 예민함도 없다. 몽골 초원의 광활함과 역동성이 느껴졌다. 유목민들의 우수와 바람처럼 허허로운 인생이 휙휙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나면 아무 음률도 기억 나지 않았다. 무엇하나 가슴에 담아 놓지 말라는  것인가. 바람 같은 인생, 상처 뿐인 영광---그것이 인생이라고 마두금은 위로했고, 가슴은 허했다.

  나는 인간의 독점물이라고 생각했던 눈물을 낙타의 눈에서 보았다. 충격적이었다. 낙타의 눈물이 시시때때로 떠올랐다. 과연 어미 낙타는 마두금의 연주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마두금의 선율이 아기 낙타 울음 소리 같아서 어미 낙타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지 모르지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모르지만---.

  영혼의 상처는 저절로 치료되기 어렵다. 상처의 깊이에 걸 맞는 위로와 용서가 있지 않고서는. 어미 낙타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주었던 새끼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위로'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 주고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는 위로, 그것은 몽골 벌판에서 바람과 같이 한 평생을 살아온 촌로(村老)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바람 속 티끌처럼 사라지는 것이니라, 아파하지 말아라, 고통에 목매지 말고 그저 바람처럼 자유롭게 떠돌아라. 고통은 영혼의 지팡이니라. 고통이 있음으로 너는 설 수 있는 것이다. 낙타는 촌로와 마두금의 위로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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