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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거나 화장을 하려면 보는 것이 거울이다. 오래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잠잠한 물에 비추어 보다가 돌이나 금속을 매끈하게 갈아서 보려고도 했을 것이다. 수천 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지금의 거울을 명경(明鏡) 또는 세경(細鏡)이라고 불렀다. 거울은 빛을 100% 반사하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은 좌우가 바뀌어 있는 허상이다. 어릴 때, 벽에 걸린 거울의 뒷면이 궁금해서 그 공간을 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마치 TV 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던 것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거울은 커다란 판유리를 컨베이어 벨트에 싣고, 연마제와 브러시를 이용해 미세한 먼지나 기름기를 완벽하게 제거한다. 유리에 은이 잘 달라붙도록 특수 화학 용액(염화주석 등)을 뿌리고, 그 위에 질산은 용액과 환원제를 동시에 분사하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유리 표면에 아주 얇은 순은(Silver) 막이 형성되어 거울이 된다. 대단한 발명이다. 이것을 적절한 크기로 잘라서 쓴다. 그런데 깨어진 거울은 아무리 잘 붙여도 원래 하나의 거울처럼 하나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애정이나 믿음에 금이 가도 그러지 싶다.
시인 이상은 ‘거울’이라는 시를 썼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 또꽤닮았소 / 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도 그렇다. 거울이 없었더라면 어찌 내가 나를 만났을까? 시인 윤동주는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라고 읊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떠오르는 분위기다. 마음도 물처럼 가라앉지 않으면 생각이 어지러운 법이다.
이백(李白)은 “추포가(秋浦歌)” 제15수에서 시름 때문에 길어진 흰머리(白髮)가 3천장(三千丈)이라며 대단한 뻥을 친다. 자기가 보면서 거울에 비친 사람(明鏡裏)을 못 알아본다(不知)고 한다. 그러고는 백발이 마치 흰 서리 같다고 한다. 시는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이다. 신라의 대문장(大文章) 최치원은 “자경(自鏡)”이라는 시에서 거울이 마음까지 비춘다고 하였다. 明鏡心能照(명경심능조) 거울이 마음까지 훤히 비추는데 寒姿老自悲(한자노자비) 쓸쓸한 모습, 늙어가는 게 스스로 슬프구나 不須多恨別(불수다한별) 굳이 이별을 많이 한탄할 것 없으니 靑 已如絲(청빈이여사) 검던 머리칼 이미 실(백발)처럼 되었구나.
오랜만에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만나 뵙고 농축된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대면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누구나 세월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이긴 하다. 수년 후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안 되는 걸 알지만 더 늙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욕심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고 끝내기에 들어가야 하는 판국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 살아온 내 모습이나 환경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보건(保健)이라는 말이 건강한 상태를 잘 보전한다는 뜻이니 무리하지 않고 잘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게 제일이다.
사람들은 제 손으로 밥숟갈 뜨고 제 발로 화장실 가고 제 정신으로 가족들과 웃으며 떠나는 것을 대단한 행복이라 한다. 이건 축복이고 은총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는 영화는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는 사람의 이야기다. 왜 그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누구에게도 그런 일은 없다. 마지막에는 주름지고 쭈그러든 모습이라 외모로는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이다. 갓난아기처럼 보살핌을 받다가 떠난다. 그때도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외로우나 외롭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웃으면서 여유 있는 척하고 끝끝내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나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위를 쳐다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자신이 부족하여 또 못나 보이고 아쉬울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본 수년 후의 내 모습이 그러지 않기를 빈다. 허리가 구부러지고 말이 느려지고 동작이 굼뜬… 그렇다. 오랜만에 내 모습을 보여준 선생님의 거울은 아주 정확했다. 그런데, 이 봄이 또 지나간다.
* 출처 : FRANCEZONE

■ 조 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