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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
목회를 마치니
늦잠을 잔다 해도
눈치 볼 일 없어 좋다
일찍 눈 떠지는 날은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부지런한 것 같아
그것도 좋다
수염은 게으른 몫으로 두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다듬어도
아내조차 눈치 주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기도하고 성경 읽기를 마치고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 안 해도
부끄럽지 않다
아내 심부름으로
파 한 단 사러
수염 다듬어
말끔한 옷 입고 나서는데
구멍가게 가는데 왜 그러냐고
그제야 아내가 희롱하지만
처음 만나는 게으른 세상인데
초면에 실례를 범할 순 없다고
실없이 받는다
파는 도대체
무슨 맛을 내는지
대파는 어떤 음식에 넣고
쪽파는 언제 필요한지
대파와 쪽파는 맛도 다른지 모양만 다른지
대파를 작게 잘라 쪽파처럼 사용하면 안 되는지
계산하는 여인에게 물어보고 싶다
진리 영원 거룩
이런 무거움에서 나를 내려놓으니
파 맛도 모르며 살아온 내가 가엾다
두고 떠나도 아쉽지 않은
허락된 게으름이
죄스럽지 않아 참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