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칼럼 | 지난칼럼 |
웰링턴의 바람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 도시에서는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게 일상이지만, 그건 단지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가끔은 내 생각을 흔들고, 또 가끔은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바람이다.
나는 수원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했다. 인생의 반을 일본에서 살았지만,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 육첩방은 결국 남의 나라였다. 이질적인 나의 일본어 억양은 몇몇 학생들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좋은 핑계였다.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말라, 기준을 낮춰라”는 부학장님의 말은 내게는 곧 “네가 세운 원칙을 버려라”라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자신이 세운 원칙과 기준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는 현실에 순응하는 지혜였지만, 나에게는 비겁함의 교훈이었다. 쉬운 교육과 고뇌 없는 지식은 바람 없는 하늘처럼, 잠시 고요하지만 결국 탁해진다.
그렇게 나는 타국에서 나의 생계를 지탱해주는 직업을 잃을 각오로 맞섰고 3년 반을 일했던 그 곳에서 내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때 놓치지 않은 나만의 원칙이 나를 뉴질랜드의 빅토리아 대학으로 데려왔다.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켈번의 강의실에서, 학생들은 나의 영어 억양보다 내 열정과 진심을 먼저 기억했다. 곧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들이 건넨 “이제까지 들은 강의 중 최고였어요”라는 한 마디, 그리고 일본에서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는 학생들의 이메일, 유럽에서 보낸 “당신의 수업이 교환학생 경험 중 가장 인상 깊었다”는 메시지. 나는 깨달았다. 진짜 연결은 언어가 아니라 진심으로 통한다는 걸.
운명처럼 흘러온 이 나라, 뉴질랜드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지식은 스며들지 않는다. 스스로 붙잡고 흔들어 깨우고 도발해야 한다.” 배움이란 결국 나와 학생들이 서로를 흔드는 일이다. 마치 웰링턴의 쉼 없는 바람처럼. 나는 학생들이 나의 말을 따르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가정을 뒤집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더 나은 답을 찾아내길 바란다.
학문과 사색의 언덕 켈번을 떠나 삶의 거리 테아로의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 빛은 아스라이 멀지만, 분명히 나에게 닿아 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 그리고 내가 지켜갈 자리. 남반구의 이 바람은 아직 낯설고 차갑지만, 이제는 떠돌던 마음도 이 바람 속에 머무른다. 남의 나라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나를, 그리고 나의 나라를 다시 배우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기준으로, 부끄럽지 않게 가르치고 글을 쓴다. 내일도, 웰링턴의 바람은 분다.
박서희 조교수
빅토리아 대학교 웰링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