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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인 분쟁은 항상 정신적인 고통을 야기합니다. 그 분쟁의 이유가 부부 혹은 가족관계의 파탄, 계약불이행, 고용관계 분쟁처럼 잘 알던 사람과의 문제이던지, 혹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의 문제이던지 말이죠.
또한 내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모든 재산이 다 하찮게 느껴지고 심지어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만큼 정신의 문제는 재산상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번 칼럼에서는 과연 정신적 피해보상은 재산상의 피해보상과 비슷하게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기존 칼럼에서 다루었듯이, 뉴질랜드에서는 부부간의 재산분할 문제에서는 (심지어 양육권, 가정폭력 같은 다른 가사소송에서도) 위자료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재산분할은 순수하게 ‘재산’만 분할을 합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별거를 했는지 어떤 사람이 어떤 재산에 더 애착을 가지는 지는 대부분의 경우 법원에서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어느 재산을 누구에게 귀속하고 다른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상할지 등으로 고려가 될 수는 있지만, 최소 위자료와 관련해서는 그러습니다. Spousal maintenance 혹은 child maintenance라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정신피해와는 전혀 관련 없이, 재산적으로 공평함만을 다룹니다.
양육권, 가정폭력도 순수하게 전자의 경우 양육을 어떻게 분담해서 할지, 후자의 경우 폭력으로 인해 보호명령 (protection order)을 주는 문제만 다룹니다. 가정파탄의 이유를 제공해도, 가정폭력을 일삼아도, 최소한 ‘위자료’를 부담하는 일은 없습니다.
일반 계약관계에서도 기본적인 손해배상은 재산상의 손해배상입니다. 즉 상대방이 계약을 위반하면, 내가 입은 재산상의 손해를 계산하여 청구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계약을 위반하고 내가 소송을 해야 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라고 해도 위자료가 승인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기는 한데, 재산상의 손해배상이 ‘정신피해도 치유한다’라는 느낌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법원에까지 가지 않아도 되도록, 혹은 법원에 가더라도 일이 수월하게 풀릴수 있도록, 계약조건이 위반되었을 때 어떤 피해보상을 하게 될지 미리 계약상에 설정해놓는 방법도 추천됩니다. 다만 매번 모든 손해를 예측하기는 어려워서 항상 적용되는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Tort라는 특정 카테고리의 소송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negligence 과실), 이 분야에서는 정신적 피해보상이 어느정도 확립되어 있습니다. 특히 한창 난리였던 ‘leaky building’ 소송건들 중에서, 2023년 Argon Construction Ltd 소송에서 고등법원 판사는 집에 살고있지 않았던 1인 소유주에게는 $10,000; 공동소유주는 총 $16,500; 집에 살고있었던 1인 소유주에게는 $16,500; 공동소유주는 $23,000라는 금액을 책정했었습니다. 혹시 미국뉴스에서 위자료의 기본단위가 항상 몇백만불이라는 얘기를 자주 접하셨는지요? 그렇다면 뉴질랜드의 금액은 굉장히 소박하게 느껴지실겁니다.
고용분야도 위자료가 잘 확립되어 있습니다. 이전 판례법에서부터 인정되어오던 것을 법조항으로 확립하여, (1) 직원이; (2) 고용주로부터 부당해고나 여러가지 부당대우 등을 당하여; (3) ‘personal grievance’ 문제제기를 90일 내에 (혹은 성희롱의 경우 12개월 내에) 한 경우, 다른 재산상의 피해보상과 더불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즉 고용주가 직원에게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위자료 책정 방법은 법조항으로 되어있지 않고, 판례법으로 나름 확정되어 왔습니다. 물론 그 기준을 적용하는 결정권자 (ERA 고용위원회 멤버, 혹은 고용법원 판사)도 전부 사람이다 보니,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경향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당해고의 경우, 고용관계가 너무 짧지만 않았으면 대략 1만불에서 3만불 사이에서 책정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보통 ‘아주 극심한 경우’ 5만불로 설정해놓았습니다. 부당대우의 경우 그 지속기간이나 심각성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부당해고의 절반정도 (5천불에서 1만5천불 사이)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당해고에서 재산상의 피해의 경우 원래 급여 기준으로, ‘부당해고로 인해 다음 고용을 구할 때까지 손실된 급여’이다보니, 그 경우에 따라 위자료보다 훨씬 적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주당 $1000씩 받았었는데 5주만에 직장을 새로 구했다, 그러면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5000이 됩니다. 거기에 세금까지 떼고 나면, 몇만불의 위자료가 더 감사히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2024년 7월경 고용법원의 판례는 눈여겨볼 만 합니다. Kath and Ron Cronin-Lamp라는 두 고등학교 상담사가 학생들 및 지역사회에서 32명의 죽음과 관련하여 정신상담을 해주다가, PTSD를 진단을 받았고, 학교측에서 해결해주지 않아서 대략 13년간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해 고용법원에서는 고용법의 위자료가 아닌 계약법의 위자료를 적용해 Kath의 위자료를 $130,000, Ron의 위자료를 $97,500 로 책정했습니다 (고용법 위자료였으면 각각 $85,000; $63,750). 그 외에도 급여손실, 렌탈수입이 있던 부동산 판매로 인한 손실금 (차액) 및 렌탈수입손실, 의료비용 등 총액 $1.8 million이라는 어마어마한 손해배상을 책정했었습니다.
하지만 항소법원에서 항소를 할 수 있도록 사전신청 (leave to appeal)을 승인해주었고, 실제 항소의 결과는 진행이 되고 있는건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건 보통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 책정금액이 너무 높아서 일반 사건의 판례로 사용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사건이었긴 합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송사를 피하실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셔서 소송을 하셔야 할 때 이 칼럼이 위자료를 청구 할 수 있는 소송인지 아닌지, 얼마나 청구할 수 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실 수 있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