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사리 모신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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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사리 모신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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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파의 등장


대부분의 사찰에는 법당과 함께 탑이 있다. 신도들은 대개 법당에 들어가 예경을 하지만,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탑이 먼저 생겼다. 불상보다 먼저 탑이 예경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석탑들은 법당들보다 더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목조건물인 법당은 수많은 전란으로 다시 짓기를 거듭했지만, 석탑은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리의 석탑에는 어떤 역사가 쌓여 있을까?


탑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Stupa’이다. 이를 중국어로 음역하여 솔도파(率都婆), 졸탑파(卒塔婆) 등으로 부르다가 줄인 말로 탑파(塔婆)가 되었고, 다시 ‘탑’이 되었다. 당연히 돌로 만든 탑은 ‘석조탑파’라고 해야 하지만, 간편하게 석탑으로 부른다.


스투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다비(茶毘: 화장)하여 나온 사리를 모신 건조물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투파를 만들 때에는 둥근 발우를 엎어놓은 모습으로 만들라는 말씀을 생전에 하셨다. 그래서 복발탑(覆鉢塔)이라고 부른다. 처음 스투파는 부처님을 상징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부처님 스투파에 대한 신앙이 생기면서 예경, 공양의례도 정착됐다. 부처님에 대한 존숭의 의미로 부처님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 듯 스투파 주위를 세 번 도는 참배 의례도 생겨났다.


흔히 중국을 전탑의 나라, 한국을 석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말한다. 나라별로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익숙한 재료를 선택하다 보니 이러한 비유가 생겼겠지만, 그만큼 세 나라에서는 많은 탑을 세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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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이 나타나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으므로 목탑과 전탑이 같이 전해졌을 것이다. 백제의 경우 현존하는 전탑의 흔적은 없다. 대신 침류왕 1년(384) 불교를 받아들인 이래 200여 년간 주로 목탑을 만들며 많은 기술적 노하우를 쌓았다. 신라가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의 권유로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울 때에도 기술 총책임자는 백제의 장인 아비지였다. 이보다 앞서 백제는 일본 오사카에 장인 3명을 파견해 시노텐지(四天王寺) 오층목탑을 완성하기도 했다.


신라는 전탑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전탑은 한반도의 풍토에 잘 맞지 않았다. 여름 장마철에는 전탑 내부로 빗물이 스며들어 도괴의 위험이 있었고 겨울철에는 벽돌 틈으로 눈 녹은 물이 들어가 얼어 터지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목탑은 불에 취약하고 전탑은 물에 취약하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불에도 강한 화강암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화강암으로 탑을 처음 만든 사람은 백제인들이었다. 석탑뿐만이 아니라 돌로 만든 불교 문물은 대개 백제인들의 손에서 나왔다. 마애불, 석등, 석불도 그 시원이 백제지역이다. 그 증거물이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익산 미륵사지 석등 부재,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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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들은 돌을 깎아 목탑 모습대로 탑을 만들었다. 모델이 목탑이었기에 그 모습을 돌로 재현한 것이다. 이 석탑이 바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이다. 백제 무왕 40년(639)에 세워진 석탑으로 건물 곳곳에서 목조건물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백제가 익산에 석탑을 건립할 무렵, 신라는 서라벌에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은 모전석(模塼石)으로 탑을 세우고 있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이 대표적이다. 선덕여왕 3년(634) 분황사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3층만 남아있다.


신라의 모전석탑은 물론 전탑이 모델이다. 모전석탑의 등장은 신라에서도 석탑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곧 벽돌을 만들 수 있는 적당한 흙이 많지 않고 주기적으로 보수해야 하는 등 단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미륵사지는 『미륵경』에 근거해 탑 3기, 금당(법당) 3동이 있는 3탑 3금당 형식으로 지어졌다. 이러한 미륵사 건립은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로서 무왕이 40여 년간 백제를 다스리며 쌓은 국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미륵사지 인근은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있었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이곳은 황등석이라고 하는 큰 화강암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이러한 대형 석탑을 세우려면 더욱 막대한 경비가 들어간다. 석재를 옮기는 일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미륵사지 석탑을 본뜬 축소형 석탑이 사비성에 등장했다. 바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이다.

이 탑의 1층 몸돌 네 귀퉁이 기둥은 미륵사지 석탑처럼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민흘림기법을 쓰고 있다. 얇은 지붕돌은 추녀 끝을 살짝 들어 목조건물 지붕선을 본받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여기에서 막을 내린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의자왕과 왕족, 귀족들을 인질로 잡아 당나라로 끌고 가면서 백제 678년의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졌다. 미륵사지 석탑을 세운 지 불과 21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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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함의 완결 석가탑


삼국이 통일된 후 안정기에 접어든 통일신라시대에도 탑은 계속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신라에는 모전석탑이 등장했으나 안정성이나 조형미에서 만족 할 수 없었는지 전탑 양식에 목탑 양식을 가미한 석탑이 출현하게 된다. 그 대표적 유물이 바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이다.


이 석탑은 높이가 9.6m에 이르는 데다 언덕 위에 솟아있어 더욱 높고 우람해 보인다. 기단부는 백제 양식처럼 단층으로 하고 네 귀퉁이의 기둥은 민흘림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 석탑은 전탑을 모델로 하였기 때문에 지붕돌의 아랫면과 윗면이 전탑처럼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추녀 끝을 살짝 들어 목조건물의 지붕선을 본받으려 하였지만, 그 멋이 살아나지는 못했다. 구조적 한계로 인한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백제의 석탑과 신라의 전탑이 적절하게 조화된 석탑이 등장한다. 바로 경주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이다. 곧 지붕돌 의 아랫면은 전탑의 계단식을 본받고 윗면은 백제 석탑의 지붕선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 쌍탑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지 14년 뒤인 신문왕 2년(682)에 세워진 탑이다. 높이가 13.4m에 달하는 대형 탑으로 통일 직후 신라의 씩씩한 기상이 그대로 우러나는 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문화적 전성기는 불국사, 석굴암이 만들어지던 750년 경이다. 국가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물산이 풍부해지면서 문화적 역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특히 불국사는 부처님이 계신 정토세계를 이 세상에 구현한다는 야심에 찬 계획 아래 조성되었기 때문에 치밀한 구성과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당연히 불국사 경내에 있는 두 탑은 신라의 문화 역량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두 탑의 이름은 각각 석가탑, 다보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두 탑은 조형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석가탑이 소박하고 절제된 미를 추구했다면 다보탑은 세밀한 구성으로 짜여진 화려한 탑이다. 석탑의 계보에서 보자면 감은사지 쌍탑이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석탑이 바로 석가탑이다.


석가탑은 높이가 10.4m에 이르는 작지 않은 탑이다. 하지만 단아하다. 감은사지 쌍탑처럼 거친 들판의 장수 같은 씩씩한 기운은 줄어들었지만 안정된 자세와 균형미가 돋보인다. 또한 몸돌과 지붕돌을 하나의 통돌로 만들어 한결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결국 목탑과 전탑양식을 적절히 융화시켜 신라만의 모범답안을 만들어 낸것이다.


당연히 석가탑이 만들어진 이후 신라의 영역에 세워지는 탑들은 거의 석가탑을 모델로 했다. 이중 기단의 삼층석탑이 석탑의 기본양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는 당시에도 석가탑이 안정적인 미감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조성하기도 간편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석탑은 법당 앞에 세우는 구조물이다. 당연히 법당의 높이에 맞추어서 조성한다. 이중기단은 이럴 때 매우 중요하다. 단층 기단을 써서 높이를 맞추려면 몸돌과 지붕돌도 커져야 한다. 석재의 운반이나 조성에도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하지만 이중기단으로 하면 밑면이 넓어져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취할 수 있고 몸돌과 지붕돌의 크기도 작아져서 건립하기도 쉬워진다. 전국적으로 석가탑 양식이 유행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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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습의 고려 석탑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국교가 불교였기에 석탑이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다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석가탑 형식이 옛 신라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면 고려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형식의 탑이 전국적으로 세워졌다.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찾는다면 석탑의 몸돌 아래에 받침돌이 등장하고 지붕돌 아래 계단 모양의 층급받침이 간략하게 줄어든 점이다. 전체적으로는 지붕의 층수가 늘어나 5층, 7층의 석탑도 많이 나타난다. 6각형이나 8각형 석탑도 등장한다.


고려 당시 티베트 양식을 가미한 석탑으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1기가 남아있다. 석탑의 꼭대기에 청동으로 된 티베트식 금동보탑을 얹은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탑이다. 고려 말에는 원나라 장인들이 직접 들어와 주도적으로 석탑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이 대표적이다. 이 탑은 일제강점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내부에 옮겨져 있다.


고려는 이렇듯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의 석탑을 세웠지만, 신라 때부터 내려온 목탑, 전탑, 모전석탑도 조성했다. 모전석탑은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국보)이, 전탑은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이 대표적이다. 목탑으로는 문종 때 세운 남원 만복사 오층목탑이 있었으나, 정유재란(1598) 때 남원성이 왜군에 함락될 때 불에 타 없어졌다.


고려시대 석탑 중에는 세워진 장소가 특이한 탑들도 있다. 법당과 무관하게 조성된 탑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불교 이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기도터에 석탑을 세워 그곳이 신성지역임을 표시하기도 하고, 산천의 약한 기운을 보완하는 비보용 석탑을 세우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 고려시대는 다양한 용도의 석탑이 전국적으로 세워졌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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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세운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불교는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고 많은 재정과 인력이 들어가는 석탑의 조성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나마 한국 유일의 목탑으로 임진왜란 후에 복원된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이 남아있는 것은 우리에게 큰 다행이다.


■ 출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매거진(vol.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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