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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북섬을 흐르는 웅장한 황가누이 강(Whanganui River)은 단순한 물길이 아니다. 마오리들에게 이 강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연결되는 신성한 길이었다. 수백 년 동안 마오리 부족들은 황가누이 강을 따라 삶을 살아왔고, 그들의 전설과 믿음 속에서 이 강은 영혼이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통로로 여겨졌다.
황가누이 강은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으로, 길이만 해도 290km에 달한다. 북섬 중앙의 타우포 호수(Taupo Lake) 근처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흘러 타스만 해(Tasman Sea)로 이어진다. 강줄기는 깊은 협곡과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며, 때로는 잔잔하게 흐르고, 때로는 거친 급류가 되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오리들에게 이 강은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다. 황가누이 강은 ‘하나의 생명체’이며, 조상들과 영혼의 길을 연결하는 신성한 존재라고 여겨진다.
영혼의 길 – 조상들의 땅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
마오리 신화에서 사람들은 죽음 이후, 영혼이 황가누이 강을 따라 최후의 여정을 떠난다고 믿었다. 영혼은 강물을 따라 흐르며, 조상들의 땅인 테 레잉가(Te Rerenga Wairua, 영혼의 여행이 끝나는 곳)로 향한다.
. 영혼은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살아생전의 기억을 정리한다.
. 강가에 있는 신성한 나무와 바위들은 영혼이 쉬어가는 곳이다.
. 마지막에는 바다로 나아가 조상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마오리 부족들은 이 강을 신성하게 여기며, 고인의 영혼이 평화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의식을 치르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황가누이 강과 마오리 부족들
황가누이 강 주변에는 오랫동안 와누이 부족(Whanganui iwi)이 살아왔다. 그들은 이 강을 ‘고조부모’처럼 여겼으며, 단순한 물길이 아닌 삶을 주는 존재이자, 죽은 자를 조상들의 품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길로 존중했다.
이 부족들은 강을 따라 작은 마을들을 이루며 살아갔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카누를 타고 이동하며,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했다. 강이 주는 풍요로운 자원 덕분에 황가누이 강 유역은 마오리 문명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 강 주변의 바위와 숲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 와카(카누)를 이용해 마을 간 교류하며 강과 함께 살아갔다.
. 강을 더럽히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은 금기였다.
이들은 강과 조화롭게 살았으며,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조상과 후손을 위한 의무라고 믿었다.
황가누이 강의 법적 인격 부여 – 강은 하나의 존재이다
마오리들의 이러한 신념은 현대에 들어서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17년, 뉴질랜드 정부는 황가누이 강을 법적으로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 황가누이 강은 자연물 보호를 위한 세계 최초의 법적 인격체가 되었다.
. 강이 하나의 존재로 간주되며, 강을 대변하는 법적 대표자가 지정되었다.
. 강을 오염시키거나 훼손하는 행위는 마치 한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은 법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는 마오리 전통이 현대 법률과 융합된 놀라운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인도, 콜롬비아 등 여러 국가에서도 비슷한 법적 보호 조치를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가누이 강이 주는 교훈 –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황가누이 강의 전설과 마오리들의 믿음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준다.
. 우리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 삶과 죽음은 강물처럼 이어져 있으며, 우리도 언젠가 조상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 강을 소중히 대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황가누이 강은 그 신성함을 잃지 않았다. 강을 따라 카누를 타고 내려가면,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마오리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결국, 강처럼 흘러가며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황가누이 강이 영혼들의 길이듯, 우리의 삶도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여정일 것이다.
강은 흐르고, 우리는 배우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