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조성현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로렐라이의 선율과 제주 4·3

0 개 711 명사칼럼

b68e57c89b077917d8ca37386f2ba3ee_1712719602_1067.png
▲ 영화 ‘비정성시’ 포스터


지난해 출간된 현기영 작가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에는 제주 4·3 시절 산에 올라 투쟁에 나섰던 청년들이 부르던 노래가 소개된다. 이 노래의 가사는 “둥실 떠가는 작은 배 나갈 길 막연해”로 끝난다. 이런 문구에는 당시 그들이 지녔을 마음의 무늬, 그 불안과 정처 없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튜브(‘산·들·바다의 노래: 음악으로 듣는 4·3’)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노래의 선율은 가사만큼이나 애절하고 서정적이다. 제목이 전해지지 않는 이 노래는 독자로 하여금 ‘제주도우다’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서와 생각을 한층 입체적이며 풍부하게 느끼게 만든다.


4·3 당시 항쟁조직의 비밀연락원이던 김시종 시인은 4·3 발발 직전에 제주 중앙우체국 합창단 일원으로 독일 민요 ‘로렐라이’를 함께 부르곤 했다. 당시 시인은 애초 일본어 가사를 스스로 한글로 중역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토록 서정적인 노래를 즐겨 부르던 청년 김시종이 그 직후 우편물 방화 시도 사건에 연루돼 조국을 떠나 지금까지 난민이나 망명자에 가까운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곡절 많은 인생을 반추해 본다. 그가 로렐라이를 부르던 순간에 과연 이 같은 파란만장한 운명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나의 가정이지만 만약 김시종 시인의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담대했던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면 우체국 직원들과 로렐라이를 합창하는 장면은 꼭 포함되어야 할 테다.


김시종 시인이 일본 밀항 이후 영영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통절한 그리움은 아버지 기일 20주기에 즈음해 발표한 산문 ‘클레멘타인의 노래’(1979, ‘재일의 틈새에서’ 수록)에 담담하게 표출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릎에서 함께 부르다가 기억하게 된 조선의 노래”가 바로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었다. 시인은 뒤늦게 이 노래의 기억을 통해 한때 황국소년이었던 자신과 거리를 두던 아버지의 슬픔과 고민을 이해하게 된다. 두 곡의 노래에 대한 묘사와 언급은 김시종의 역정(歷程)에 한층 생생한 실감과 아련한 여운을 선사한다.



최근에 각본집이 번역 출간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기념비적 영화 ‘비정성시’에도 로렐라이의 선율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타이완 판 제주 4·3이라고 할 수 있는 2·28 사건(1947)을 배경으로 한다. 친구들의 정치적 대화 와중에 축음기에서 울려 퍼지는 로렐라이의 선율은 연인 문청(양조위 분)·관미의 필담과 어우러지며 그토록 슬픈 영화 ‘비정성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조성한다. 일본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 수용된 로렐라이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널리 불렸던 노래였으리라(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로렐라이를 부르는 청년이 등장한다). 마치 민들레 홀씨가 퍼져나가듯 한 독일 민요의 선율은 국적과 이념을 초월해 동아시아 민중들의 마음을 관통한다. 70년대 후반 중학교 음악시간에 합창하던 로렐라이의 선율은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곧 제주 4·3 76주년이다. 그 시절 불린 노래를 통해 당시를 바라보면 어떨까. 그런 시도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마음과 고민의 속살, 그 열정과 의기, 빛과 그늘에 대해 한층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테다. 서로의 생각과 감성이 극심하게 갈라진 이 시대에 함께 마음에 담아 기억하는 노래가 있다는 건 귀한 축복이 아닐까. 누군가의 창의적 예술혼을 통해, 시대의 우울을 달랠 수 있는 한국판 로렐라이 같은 노래가 만들어지기를 염원한다. 


출처 : 한겨레신문


b68e57c89b077917d8ca37386f2ba3ee_1712719685_5517.png
 

■ 권 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가족 및 자원 봉사 간병인을 위한 정부 실행 계획

댓글 0 | 조회 483 | 2일전
Consultation on Action Plan to Support Carers 사회개발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MSD)는 … 더보기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 수상 안전 실시

댓글 0 | 조회 268 | 3일전
지난 11월 22일, 타마키 마카우라우 경찰 소수민족 서비스팀은 피하의 바넷 홀에서 소수민족 공동체 지도자들과 함께 수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더보기

위험한 감정의 계절: 도박과 멘탈헬스 이야기

댓글 0 | 조회 157 | 4일전
12월은 흔히 ‘축제의 달’로 불린다. 거리의 불빛은 화려하고, 사람들은 마치 잠시 현실을 잊은 듯 들뜬 기운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화려한 분위기 뒤에는 또 다… 더보기

에델바이스(Edelweiss)의 추억

댓글 0 | 조회 167 | 4일전
음악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감정 표현, 미적 즐거움, 소통, 그리고 심리적 및 신체적 치유 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한다. 또한 집단 정체성 확립, 사회통합, … 더보기

18. 루아페후의 고독한 지혜

댓글 0 | 조회 126 | 4일전
# 산 속의 침묵루아페후 산은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화산이다. 높고 험하며 사계절 내내 눈이 덮인 이 산은 항상 침묵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

댓글 0 | 조회 473 | 4일전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2지난호에 이어서 계속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3. 영국 및 미국 대학 유학하버드 대학교미국과 영국은 뉴질랜드 유… 더보기

그 해 여름은

댓글 0 | 조회 122 | 4일전
터키의 국기처럼 큰 별 하나를 옆에 둔 상현달이 초저녁 하늘에 떠 있고, 검푸른 하늘엔 뱃전에 부딪혀 흩어지는 하얀 포말처럼 은하수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 더보기

어둠은 자세히 봐도 역시 어둡다

댓글 0 | 조회 118 | 4일전
시인 오 규원1어둠이 내 코 앞, 내 귀 앞, 내 눈 앞에 있다어둠은 역시 자세히 봐도 어둡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장난이라고 나를 욕한다그러나 어둠은 자세히 … 더보기

아주 오래된 공동체

댓글 0 | 조회 160 | 4일전
처서가 지나면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처서가 지났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고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 열대야 현상이 계속되었다. ‘습식 사우… 더보기

이삿짐을 싸며

댓글 0 | 조회 545 | 5일전
갈보리십자가교회 김성국하루에 조금씩만이삿짐을 꾸렸습니다그래야 헤어짐이늦게 올 것 같았습니다차곡차곡 넣고구석구석 채웠습니다그래야 천천히 올 것 같았습니다짐 드러낸 …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에게 독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482 | 5일전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말하고 평가받지만, 단순한 영어 실력만으로는 뉴질랜드 교육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보… 더보기

깔끔하게 요약해 본 파트너쉽 비자

댓글 0 | 조회 293 | 5일전
뉴질랜드에서 배우자 또는 파트너로 체류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사실혼(파트너쉽)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신청할 수 있는 영주권 비자와 비영주권 비자가 … 더보기

2026 의대 진학을 위한 연말 전략: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141 | 5일전
▲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안녕하세요? 뉴질랜드, 호주 의치약대 입시 및 고등학교 내신관리 전문 컨설턴트 크리스틴입니다. 2026년 뉴질랜드 및 호… 더보기

시큰둥 심드렁

댓글 0 | 조회 93 | 5일전
어떤 사람이 SNS에 적은 글에 뜨끔한 적이 있었다. “눈팅만 말고 ‘좋아요’ 좀 누르면 안 되나요?” 마치 눈팅만 했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발이 저려서… 더보기

언론가처분, 신상 정보 공개 금지 및 국민들의 알 권리

댓글 0 | 조회 209 | 5일전
지난 9월 8월, 본인의 자녀들을 수년간 납치해서 숨어 살았던 톰 필립스 (Tom Phillips)가 경찰에 발견되었고 결국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 소식 … 더보기

고대 수메르 문명은 왜 사라졌는가

댓글 0 | 조회 131 | 5일전
메소포타미아 사막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때면, 거친 바람은 먼지를 일으키며 과거의 귓속말을 실어 나른다. 그 속삭임은 무너진 벽돌과 부서진 신전 기둥 사이를 스… 더보기

스코어카드와 인생의 기록 –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

댓글 0 | 조회 99 | 5일전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코어카드를 손에 쥐고 라운드를 시작한다. 한 홀 한 홀마다 몇 타에 공을 넣었는지를 적어 내려가며, 18홀을 돌고 나면 총합이 자… 더보기

나도 의대 들어갈 수 있을까 : 의대 경쟁률 10:1 그 진실은?

댓글 0 | 조회 296 | 8일전
출처: https://www.istockphoto.com/kr/%EC%9D%BC%EB%9F%AC%EC%8A%A4%ED%8A% B8/%EC%9D%98%EA%B3%B… 더보기

‘인공 방광’이란

댓글 0 | 조회 270 | 9일전
국민보험공단이 발표한 ‘2024 지역별 의료 이용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에서 진료받은 6대 주요 암 환자 중 유방암 환자가 인구 10만명당 52… 더보기

수공하는 법

댓글 0 | 조회 150 | 9일전
수공(收功)은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동작으로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주변에 형성된 기운을 거두어 단전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명상 중 급한 용무로 명상을 멈추어야 … 더보기

AI 시대의 독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독서가 필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590 | 2025.12.01
공자는 논어 첫 문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배움 자체가 인생의 의미가 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더보기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향: AI와 함께 생각하는 힘

댓글 0 | 조회 531 | 2025.11.28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은 그 속도와 영향력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있… 더보기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 확대

댓글 0 | 조회 320 | 2025.11.26
무료 유방암 검진 연령이 74세까지 전면 확대된다.

에이전시 (대리인) 관련 법

댓글 0 | 조회 221 | 2025.11.26
우리는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대신’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랍니다. 친구가 멀리 던진 공으로부터 내가 더 가까우면 친구 대신 공을 주워서 던져주기도 하는… 더보기

뉴질랜드 학생들이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중 어느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비용…

댓글 0 | 조회 423 | 2025.11.26
비용 효율성과 미래 발전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 1자녀가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어디로 대학 진학을 가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