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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의 레즈비언

2 2,847 왕하지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오는 여자가 있다. 초롱초롱한 눈가에 흰 분칠을 하고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기고 야들야들한 몸매에 나를 만나면 몸 둘 곳을 모르고 가는 곳마다 다소곳하게 따라 다니는 여자,
 
얼마 전이었던가, 내가 밖으로 나가자 잔디밭에 있던 참새들이 모두 도망가는데 한 마리 참새는 껑충껑충 뛰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여자참새였다. 도시참새들은 사람들 가까이 접근하지만 시골참새들은 겁이 많아 사람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는데 의외였다. 내 손에는 빵이 들려있었는데 나는 손톱만 하게 잘라 참새에게 던져주었다. 참새는 빵을 물고 한발 물러나더니 부리로 빵을 네 조각으로 잘라 차곡차곡 물고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나무위로 날아갔다. 음, 엄마참새로군, 고층아파트에서 4남매를 키우고 있군.

내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유리창에서 참새가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창틀에 붙은 거미를 잡아먹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예요, 엄마참새,”
 
내가 데크로 나가자 참새는 내 발밑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할아버지, 우리 애들이 배고프데요.”

“그래~ 그럼 뭐, 빵을 먹여야지.”

나는 빵을 콩알만 하게 잘라 4개를 던져줬더니 가지런히 물고 고층아파트로 날아갔다. 그렇게 3번이나 퍼 날라 자식들 배를 불린 후 또 날아왔는데 이번에는 엄마참새가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래 너도 먹어라, 새끼들은 크고 나면 엄마 얼굴도 잊어 버린다.”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내가 시간이 있어서 잠깐 갤러리에 들렸는데 오클랜드에서 온 키위부부가 오리그림을 사고 싶은데 모두 수컷이라고 불평하는데...”

“암컷들보다 수컷이 예뻐서 그렸다고 말하지 그랬어?”

“말했지, 그래도 레즈비언은 싫대, 그래서 앵무새 그림을 샀어.”

앵무새? 앵무새들이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한다는 거야, 그림을 그린 나도 잘 모르는데... 동성애자 차별이 심하지 않은 뉴질랜드에서 그림속의 새들 가지고 이렇게 차별을 하다니, 동성애자들도 합법적인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떠들고 있는 나라에서 말이야,

유리문 앞에서 엄마참새가 또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예요~”

내가 데크로 나가 엄마참새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지금까지 남자 참새들만 그린거야, 뉴질랜드 여자참새는 여자오리처럼 눈가에 흰 분칠을 했기 때문이다.

“또 게이들만 그렸다고 한소리 듣게 생겼군. 이상하단 말이야, 한국토종참새는 남녀 모두 얼굴에 커다란 검은 점이 있고 똑같이 생겼는데 말이야,”

“예에? 여자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어요? 어휴 망칙해, 할아버지, 우리 애들이 배고프데요.”

“그래, 그럼 애들 빵부터 먹이고 와, 근데 어찌 빵만 먹고 사느냐, 고기도 먹어야지,”

닭고기나 햄을 던져줬더니 색깔도 틀리고 냄새도 틀린지 먹지 않았다. 역시 시골참새라 촌스럽군, 잡식성인 주제에 고기도 안 먹다니...

그런데 엄마참새는 빵을 물고 고층아파트로 안 가고 나무 밑으로 가는 게 아닌가, 아니 반 지하로 이사를 갔나? 내가 슬쩍 가서 보니 엄마참새는 빵을 물고 나무 밑에서 비를 쫄쫄 맞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엄마참새가 한참 만에 풀 속에서 푸드득 거리는 새끼참새를 찾아 빵을 먹이는데 우리 집 개가 눈치를 채고 달려가고 있었다. 새끼참새가 개밥이 되려는 순간 소리를 질러 개를 내쫓고 새끼를 보니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날지도 못하는 것으로 보아 고층아파트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무에 올라가서 새집에 넣어줄 수도 없고 십중팔구 죽을 것 같아 데리고 와서 양동이에 넣어 개가 안 닿는 곳에 놓았더니 엄마 참새가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서 며칠만 더 크면 날아갈 수 있겠어.

오늘도 많은 참새들이 내 머리위로 날아가는데 한 마리 여자참새만 내 발밑으로 날아들고 있다.
달중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재미있는 왕하지님의 글 ^^ 고맙습니다 ^^
왕하지
달중이님 안녕하셨어요.
요즘, 엄마참새가 자기보다 몸집이 더 큰 아들참새랑
같이와서 빵을 달라고 합니다. ㅎㅎ
구걸이 대를 이으면 안되는데... 걱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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