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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사는 지은이네가 이사 온지도 어언 일년이 지났다. 대학생 지은이는 큰 딸과 친구가 되어 저를 언니라 부른다고 했다. 동생이 하나 더 생겨 좋다나.
엄마와 세살위의 언니 그렇게 세 식구가 산다고 하는데 그의 엄마는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직업을 가진 바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가까운 곳에 새로지은 아파트 지하상가가 드디어 오픈을 했다.
이제 멀리 안 나가도 필요한 물건들을 살수 있게되어 좋다고 인근의 주민들이 몰려가 구경하느라 시끌벅적이었다.
조금 조용해진 어느날 천천히 구경을 하러 나섰다. 이것저것 새로운 상품들로 아이쇼핑에 시간을 투자해도 별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릇 가게가 나란히 두개가 붙어있는데 ‘ㅇㅇ라인’ 간판을 단 가게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진열해 놓은 스타일이 백화점 수준이었다. 새내기 주부들이 좋아할 귀엽고 예쁜 그릇들 주방용품들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구식다리 그릇들을 싹 치우고 화사한 신식 것들로 주방을 바꾸고 싶었다. 주부들이라면 모두들 그런 마음이겠지만 선뜻 사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눈도장 찍어놓고 가는 구경꾼들만 분주히 드나드는 것 같았다.
내가 꼭 집었던 커피세트는 그동안 팔려나갔을까? 부질없는 호기심으로 갈 때마다 그 가게를 둘러보았다.
주인 여자는 차림새가 곱고 장사하는 사람 같지않아 보였다.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참새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웃거리는데 그녀가 아는체를 했다.
“어서 오세요~ 구경도 하시고 차 한잔 하며 놀다 가셔도 되요.”
마치 옛날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대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장사 처음이신가봐요!” 라는 말이 나왔다. 수줍게 웃으며 “그렇다” 라고 대답하는데 볼이 빨개져 있었다.
누구에게나 다 그리 친절한지 차 뿐 아니라 먹을것들을 한가득 내 놓았다. 물건 팔아주는 단골도 아닌데 호의가 부담스러워 손사래를 쳤다.
“저 아무한테나 이러지 않아요 . . . 왠지 친밀감이 느껴지는 분이세요. 그냥 편하게 동생처럼 대해 주세요”
그녀의 소박한 진심을 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지은이 엄마라는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 . 바로 옆 집 사는 사람을 이렇게 밖에서 만나게 되다니 . . . 기이한 우연이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 급속도로 친해져 정말 형님 아우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딸 지은이는 제법 키가 큰 편이었다. 엄마는 키가 작고 몸매가 통통해서 모녀가 닮은곳이 없었다.
“형님은 키도 크고 어찌 그리 날씬하셔요. 너무 부러워요.”
키 큰 사람은 가늘고 키 작은 사람은 옆으로 퍼지는지 늘 부티나게 살 좀 찌고 싶은 나였다.
편하게 걸치고 나오는 옷들이 하나같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민낯처럼 자연스러운 얼굴 화장도 은근히 세련미가 풍겼다. 작은 키가 불만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자 혼자서 가장으로 살았다면 전직이 있었을터인데. . . . 세련된 겉치레와 달리 순수하고 때묻지 않아 신분이 늘 궁금했다.
어느날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내 손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인가 포장을 뜯더니 나에게 입어보란다. 그릇 가게에서 옷을 펼치다니 어이가 없어 서 있었다.
물건하러 새벽 시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릇 장사가 맘에 드는 옷들을 보면 그것부터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다 사오고 싶다록 욕심이 생긴다나.
정말 내 키에 딱 맞는 치마였다. 거울속에 보이는 내 모습이 정말 근사했다. 멋있다며 그녀가 너무 좋아했다. 비싼것 아니니 부담없이 예쁘게 입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멋쟁이란 무조건 고가의 것만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패션의 감각이 있어야 선택의 안목도 생긴다는 것. 그리고 조화롭게 입어내기까지. 금방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 멋쟁이었다. 예쁜 것을 잘도 선택할 줄 아는 감각이 예민한 그녀. 어디서 무엇을 했던 여인일까?
날씨 꿉꿉한 어느 날 부추 부침개를 붙여 먹고 몇조각을 들고 나갔다. 대단한 별식도 아닌데 먹어본지 오래 되었다며 맛있게 먹었다. 잘 먹어주니 내가 더 고마웠다.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데 어디서 꺼냈는지 불쑥 사진 한장을 내밀었다. 갑자기 무슨 사진? . . . 언뜻 가족 사진인듯 해서 자세히 드려다봤다.
이게 누구야? 내가 아는 당대의 배우와 가수의 얼굴이 확 눈에 들어왔다.
키는 작았지만 성격 배우로 유명한 ㅇㅇ와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 여가수 ㅇㅇㅇ가 부부로 남매인듯한 어린 애들을 앞에 앉히고 찍은 낡은 사진이었다.
그녀가 손가락 끝으로 여아를 가리켰다. 말없이 얼굴을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여섯살 쯤 되어보이는 여아의 옷치장이 요란했다. 어린 공주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아버지 배우 ㅇㅇ의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보니 그녀가 아버지의 얼굴을 똑같이 닮아 있었다. 지금의 키 작은 몸집까지 . . .
당대를 주름잡던 두 연예인은 전처의 소생 남매를 두고 재혼을 했다. 감출것도 없이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내 친구중에 미용사가 있었는데 명동에 소재한 미용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류라고 알려진대로 여배우들이 단골이어서 팁도 많이 받는다고 늘 자랑을 했다. 배우들 실물 보고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큰소리를 쳤다. 어느날 그 친구를 만나야할 사정이 생겨 갔을 때였다. 어쩐 일인지 그 날은 거짓말처럼 배우는 콧배기도 비치지 않았다.
썰렁한 양지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을 밀고 들어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일곱살쯤 되어보이는 여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장끼없는 맨 얼굴이었지만 첫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ㅇㅇㅇ가수였기 때문이다.
“우리 딸 ㅇ옥이에요 귀엽죠?”
안에서 손님을 맞으러 나오는 주인을 보고 아이를 먼저 소개했다. 엄마는 수수한 옷차림 이었지만 딸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ㅇ옥 이라는 여아가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여인이라니 . . .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 하는 여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부모님 밑에서 클 때는 온갖 호강을 다 누리고 살았을 것이다. 결혼할 때 바리바리해 가지고 갔지만 지금은 이 꼴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 생전에는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 돌아가시고 나니 자기들 남매는 외톨이가 되었다고 했다.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더니 . . .
계모 여가수는 아직도 가끔씩 가요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낳은 이복 동생도 잘 나가는 가수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안되는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떠났다. 자리가 잡히면 가족들을 데려 가겠다는 말만 믿고 기다렸다. 그 세월이 어느새 7.8년이 되었다고 안타까운듯 말했다. 입을 열기 시작하자 말문이 트인 선무당처럼 지나온 일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사정을 처음으로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고 울먹였다.
두 딸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공부를 이어갔지만 해본 일 없는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지못해 친구가 하는 레스토랑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얼마간 일을 도와주었다. 바로 옆집에서 볼수 없었던 사정이 그래서라는 걸 알게되었다.
누님의 고생이 안쓰럽던 친동생이 보다못해 이 가게를 차려 주었단다. 한 여인의 고달픈 인생사를 다 들었지만 선뜻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장사나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등 을 토닥여 주었다.
천성이 착해서일까? 헤퍼 보일만큼 잘 웃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웃음만큼 헤픈 것은 씀씀이었다. 체구에 비해서 통이 큰건 아직도 옛날 버릇 그대로인 것같아 보기에 민망했다. 내 피붙이였다면 현실을 직시하라고 오지랖을 펼쳤을테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옷을 사다가 줄 때마다 그냥 받기 미안해서 돈 을 쥐어주면 한결같이 뿌리쳤다. 형님이 옆에 있어서 든든하다며 매달리듯 어리광을 부렸다.
내가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나눈것 뿐인데 . . . .
고생을 하면서도 세상에 때묻지않고 맑게 살아가는 심성이 고마웠다. 원망도 설움도 많으련만 안으로 삭이며 내색 않으려는 외유내강의 정신은 참으로 대단했다.
남편에게서 이미 버림받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만은 끝내 하지않는 그녀.
“엄마 지은이 아빠 미국에서 딴 살림 차리고 잘 산대요.”
지은이가 말했다며 아이들끼리는 다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켜주고싶어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불쌍해서 어쩌나 . . .
연예인의 딸이라는게 호기심의 대상이어서 감추고 살았던 그녀. 잘 살아도 못 살아도 입방아에 찍히는건 마찬가지이지만 잘못 사는건 수치였기에 더 두렵다고 했다. 여인들 입안에 껌처럼 씹히는 수다의 주인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살려고 서울을 벗어나 외곽의 여기까지 왔던 그녀였다.
그녀의 추억이 묻어있는 조끼를 나는 요즘도 잘 입고 나선다. 이제 몸도 옛날같지 않으니 젊었을때 옷이 부담스럽지만 개의치 않는다. 짓궂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자랑처럼 말한다. “이거 배우의 딸이 사준거라서 못 버리지” 그녀가 옆에 있다면 제일 싫어하는 말 아닌가. 농담같지만 진실의 말 을 이제는 하고있다.
그녀가 알면 지금도 노여워할까? 그녀도 지금은 오래된 누군가의 이야기라며 웃어 넘길 것이라 믿는다. 내 기억속엔 어제 일처럼 너무도 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녀의 천진스런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즐거우니까.
“형님 너무 멋져요”
그 한마디 소리가 떠오르면 아직도 귀가 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