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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을 항해하면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진입하다보면 금문교(Golden Gate) 밑을 통과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바로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만 입구에 보이는 바위섬이 넓이 22에이커(축구장 12개 크기)의 알카트라즈(Alcartraz)이다. 이 섬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의 랜드 마크(Land Mark)로서 등대가 있어 뱃길을 인도하는 외에 미국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교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소자의 권리보장 및 후생복지와 생존 보장이 최악이었고 탈출이 불가능한 교도소로 유명하다. 미국에서도 가장 흉악범을 수용하였으며 1920년대 미국 정부가 금주령을 내렸을 때 마피아의 대부, 밤의 황제 알 카포네(Al Capone)가 수용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통칭 ‘더 록(The Rock)’라고도 불리는데 영화 ‘(The Rock)’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다.
안익태 선생이 1930년대 초 이 교도소에 하루 동안 수감된 일화가 있다. 미국 유학을 위해 여객선 ‘프레지던트 제퍼슨 호’를 타고 갈 때 선상에서 첼로 독주회를 열어 승객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매주 일요일 선상 예배에서 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후, 세관에서 첼로 소독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고, 세관측은 업무 방해죄로 안 선생을 알카트라즈 교도소에 수감한 것이다. 다행히 안선생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간수의 도움으로 감방에서 독주회를 열게 되었으며 감동을 받은 간수 리처드잭슨의 배려로 하루 만에 석방된 것이다.
탈옥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교도소임에도 실제로는 총 14차례의 탈옥 기록이 있고 탈옥수 중 5명은 지금까지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섬은 샌프란시스코 앞 바다가 백 상어를 비롯한 여러 상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고 수십 미터의 절벽인데다 섬에서 빠져나온다 해도 주변의 빠른 조류나 수온 등으로 인해서 탈출이 힘든 요새임에도 그렇다. 재소자들이 머무는 방의 창문이 시내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있어 불야성을 이루는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면서 재소자들은 신세 한탄을 하였을 것이다. 감옥 속의 가혹한 환경과 2Km 떨어진 금방 헤엄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바깥 세계의 화려함이 대비되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이는 재소자들에겐 희망고문이다. 바로 코앞에 샌프란시스코가 보이는데 붙잡을 수 없는 희망을 바라보며 심적 고통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1800년대부터 골드러시로 서부로의 이주민이 증가하자 연방 정부는 이 섬에 미국 육군이 주둔할 군사기지를 설치하게 되는데 이 섬은 샌프란시스코가 한 눈에 보이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알카트라즈는 남북전쟁 때까지 샌프란시스코를 지키는 연방 육군 기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후 군 수용소로서의 기능을 추가하게 되었고 점차 교도소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1934년에 연방교도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벌보다 교화가 중요하다는 인권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재소자 당 다른 감옥의 2.5-3배에 달하는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어 1963년에 폐쇄하고 말았다.
알카트라즈가 방치되면서 사람들에게 잊혀져갔으나 1969년에 원주민 대학생들이 이 섬을 점거하고 이를 인디언 해방구로 지적하여 19개월 동안 인디언 공동체를 유지했다. 이 사건은 원주민 공동체에 독립 운동의 싹을 틔우게 되었고 한 때 이 인디언 공동체는 5개 부족 600여 명이 넘는 거대 공동체로 성장하기도 했으나 1972년에 해체되었다. 그 후 정부는 알카트라즈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알카트라즈를 방문하기위해선 샌프란시스코 33번 부두에서 투어 형태로 유람선을 이용하며 표 한 번 구입으로 왕복 이용하게 된다. 알카트라즈 부두에 도착하면 도보로 섬 일대를 돌아보게 된다. 수용소 주변의 부속 건물을 돌아 꼭대기에 이르면 셀 하우스(Cell House)라고 부르는 감옥 건물에 도착한다. 감옥은 흉악범을 수용했던 만큼 전부 독방이며 말썽을 일으키는 죄수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교정 교방에 수감되었다. 사람들은 알 카포네가 감금되었던 방에 관심이 많으며 알카트라즈를 탈주했던 3인의 방에는 탈출을 위해 파냈던 벽의 구멍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알카트라즈를 견학하면서 인간 사회의 삶과 죄, 진정한 교화(矯化)의 방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인간 사회에는 가난, 차별, 교육 부족, 가정 문제 등 개인의 선택 이전에 영향을 주는 환경들이 많다. 삶이 너무 힘들면 유일한 탈출구로 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분노, 상처, 정신질환 등 개인의 심리적 요인이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범죄는 나쁜 사람의 행동이라기보다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 시대나 문화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기도 한다. 즉 어떤 대상에겐 정당하다고 느끼는 행동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해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도소는 필요한 제도 인가? 교도소를 돌아보면서 인간사회의 실상을 반추해 본다. 누군가는 감옥 안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 나머지 인생을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감옥이 오히려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벌을 주는 것만으로는 교화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지니고 있으며 오로지 신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교화한다. 반면 불교에서는 인간은 탐(貪, 욕심), 진(瞋, 분노), 치(癡, 어리석음)라는 번뇌에 휘둘려 고통을 받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화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인간은 선과 악을 모두 가진 복합적인 존재로 본다. 환경, 경험, 교육, 유전 등이 사람을 형성하며,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본성은 없다고 한다. 결국 우리 개인은 인간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 끝날게 아니라 각자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선한 길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