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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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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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도 맥주의 소비는 꾸준한 편이다. 기존의 소비자들이 맥주의 ‘청량감’을 즐겼다면 현재는 맥주도 와인처럼 향과 풍미를 음미하며 천천히 즐기는 술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밝게 빛나는 색깔, 쌉사름하게 올라오는 쓴맛, 입안을 감싸는 부드러운 단맛과 혀를 짜르르 울리는 신맛까지, 맥주는 다양한 맛과 수만 개의 향을 통해 수천 년간 인간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뉴질랜드는 1770년대에 최초로 맥주를 양조한 제임스 쿡 선장으로부터 시작된 오랜 양조의 역사로 현재는 수준급의 수제맥주(Craft Beer)를 생산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50여개의 소규모 부티크 양조장을 방문해 갓 생산된 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특별히 남섬의 넬슨(Nelson)은 뉴질랜드에서 맥주의 주 원료인 홉을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유일한 지역이고 10여 곳이 넘는 수제 맥주 양조장이 있다. 세계적인 맥주 도시인 웰링턴은 크래프트 맥주의 수도로도 불리는데 최대규모의 수제맥주 축제인 비어바나(Beervana)가 개최되는 곳이고 꼭 양조장이 아니어도 훌륭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크래프트 맥주 역사는 100년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71-81년 사이에 Lion 맥주와 DB맥주 양조장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전국의 작은 양조장을 산 뒤 대부분을 폐쇄하고 전국적으로 5곳에서만 맥주를 생산했다. 그 이후로 이들은 제조기술을 공유하고 전국의 모든 술집을 소유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선택해서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980년대에는 크래프트 맥주라는 용어보다는 양조장(Brewery)라는 용어가 보편적이었다. 


크래프트 맥주라는 용어는 새로운 이민자들이 두 거인인 Lion Brewery와 DB Brewery 와 비교했을 때 작고 독립적인 양조장이라는 정체성을 알리는 차별화 방법이었다. 사실 작은 규모의 양조장 중에서도 많은 곳이 Lion과 DB와 같은 종류의 맥주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들 스스로를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초기에 크래프트 맥주 제조자들은 큰 양조장이 사용하던 전문적인 맥아, 독특한 홉 그리고 기발한 효모를 사용할 규모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 적으로 재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1985년에 IPA를 생산했다면 아마도 판매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 대 초에는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현재 뉴질랜드의 아방가르드 양조업자들은 1978년 홈 브루 금지가 폐지된 미국 캘리포니아의 양조혁명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페일 에일, IPA, Imperial Stout와 같은 유니크한 스타일을 장인정신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맥주는 스타일에 따라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로 나뉜다. 라거는 라거 효모를 대개 차가운 온도(9~14℃)에서 하면(Bottom) 발효시켜서 만들고, 에일은 에일 효모를 따뜻한 온도(16~26℃)에서 상면(Top) 발효해서 만든다. 라거는 산업화를 거쳐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 또한 에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낮고 밝은 색을 띠며 깔끔함이 두드러진 청량함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에일은 라거에 비해서 색깔, 맛, 향이 진하며 발효기간이 짧아서 탄산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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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스타일을 몰라도 맥주를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알코올 도수, 쓴맛의 정도, 맥주 색의 진한 정도를 구분할 줄 알면 된다. ABV(Alcohol By Volume),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 SRM(Standard Reference Method), 이 세 가지 중에서 ABV는 알코올 도수를 나타내는데 기준은 라거가 4~5%, IPA가 7%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IBU는 쓴맛을 나타내는 수치로 숫자가 클수록 쓴맛이 강하다. SRM도 맥주 색의 진한 정도를 나타내는데 역시 수치가 클수록 어둡다고 보면 된다. 만약에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맥주를 찾았다면 그 맥주의 ABV, IBU, SRM을 기준 삼아 다른 맥주를 하나씩 마셔보는 것이 맥주여행을 떠나는 훌륭한 방법이다. 


맥주에 대한 오해중의 한가지는, 호프집에서 손님들에게 맥주 양을 적게 주려고 거품을 많이 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맥주 거품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편견이다. 거품이 많으면 맥주 양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절한 거품은 맥주를 부드럽게 해주고 표면이 직접 공기에 닿아 산화되지 않도록 보호막 역할을 해줌으로써 맥주를 신선하게 유지해주고 고유의 톡 쏘는 맛을 살려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거품이 없는 맥주는 시든 꽃이다.


맥주 맛의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는 온도다. 최상의 맥주 맛을 내는 온도는 겨울에 8-12도, 여름에 4-8도다.  대부분 찬 맥주를 선호하지만 맥주가 너무 차가우면 미각이 마비돼 제대로 맛을 볼 수 없다.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 그 향이 덜한 것처럼 맥주도 너무 차가우면 맥아와 홉의 향이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집에서도 안주를 만드는 동안 냉장고에 맥주잔은 넣어두고 맥주는 미리 꺼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는 맥주를 잔에 따르면 탄산이 적당히 날아가 맛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작은 병에 든 맥주나 캔맥주도 그대로 마시지 말고 꼭 잔에 따라 마시기를 권한다. 하지만 잔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거품이 잘 생기지 않으므로 깨끗하게 말린 컵을 써야 한다. 



맥주는 따르는 잔의 모양에 따라 그 모습이 변화하고 맛과 향을 달리한다. 생크림처럼 봉긋하게 잔을 채운 부드러운 거품을 보면서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강한 것을 지배하는 법’ 이라는 가르침을 생각해본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 강한 것을 물리치는 힘은 부드럽게 낮추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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