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그 나무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성태용
명사칼럼
조기조
김성국
템플스테이
최성길
김도형
강승민
크리스틴 강
정동희
마이클 킴
에이다
골프&인생
이경자
Kevin Kim
정윤성
웬트워스
심혜원
전정훈
Mystery
새움터
멜리사 리
휴람
김준
박기태
Timothy Cho
독자기고

[373] 그 나무님!

0 개 3,185 KoreaTimes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기품있게 잘 생긴 한 그루의 고목.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주는 이 나라라고 해도 백 년은 훌쩍 넘었음직한 위용을 갖추어 지체 높은 어르신을 대할 때처럼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럽다. 주변에 그 흔한 벤취하나 마련못한 쓸쓸한 홀대에도 아랑곳 않고 철따라 잎을 피우고 낙엽도 떨구며....

  내가 이 나라에 처음와서 제일 먼저 정 붙이고 친구한 그 나무를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민들레처럼 홀씨하나 바람타고 날아와 외롭기 그지없는 이방인을 다정하게 받아주고 감싸 준 너그럽고 편안한 어른 나무님. 길 옆에 쳐진 목책 위에 걸터앉아 답답한 가슴을 긴 한숨으로 토해내며 하늘 끝에 닿은 듯 키가 마냥 높은 가지들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노라면 산들산들 잎새를 흔들어 땀도 식혀 주고 허허로운 마음을 잘도 다독여 주었다. 얼기설기 비늘 잎사이로 비추는 찬란한 금빛 태양을 내 쳐진 어깨에 힘을 실어주어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 아무도 특별하게 돌아보지 않는 외로움에 그 쪽도 내가 반가웠을까? 밀림처럼 침침한 나무 숲속 길을 꽤나 가보고 싶은 호기심을 무던히도 참아 내던 어느 날이었다. "나무님 산책 같이할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모든 주문을 다 들어 줄 것 같아 응석처럼 아무말이나 잘도 지꺼린다. 호젓하게 묻혀 있는 외진 집에서 낯선 인기척에 뛰쳐나올 늑대처럼 큰 개도 무섭고 사방에서 지저귀는 거친 새들의 합창도 예사롭지가 않아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를 낼 수가 없어 기도하듯이 조용히 보채 보는 것이다. 못 견디게 그리움에 허기질 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길게 누운 뿌리에 올아 않아 그 믿음직한 몸체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누구의 품에 안긴 듯 착각에 빠져 지각없는 어린 아이가 되어 현실을 잠시 잊고 무아지경에 빠져 버린다. 그게 좋아서 그 위로가 달콤해서 산책길 발걸음이 늘 가벼웠는지도 모른다.

  "나무님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요 바람도 산뜻하구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모처럼 환한 내 모습이 그 쪽도 반가웠을까? 그런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힌다.

  "오늘은 서울 친구들한테 편지를 써볼까 해요. 나무님과 이야기 나누며 살아가는 일들을 쓰려구요"(그거 좋겠네요 편지를 쓸 수 있으니 부럽군요). 분명 그런 말을 했을 나무님. "나무님 미안. 미안. 사람들은 욕심이 많지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 올라도 그는 묵묵히 내려다 볼 뿐이다. 그 과묵함이 좋아서, 스스로 묻고 답을 얻을 때까지 들어주는 편안함이 좋아서 둘만의 비밀로 밀애를 하듯 교감하며 깊은 절망감 속에서 서서히 빠져 나올 수가 있었다. 온통 낯선 얼굴 서툰 말 속에서 입술은 무겁고 녹슬어 가던 언어가 돌파구를 찾아 얼어붙던 가슴이 조금씩 따뜻해져 갔다. "나무님 오늘은 시티를 나가 볼까해요. 혼자서 수영장에도 갈꺼구요"(그럼요 그래야지요. 그렇게 그렇게 살게 되는 거랍니다). 간사한 동물이 사람이라던가 그 때부터 나무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혼자이고 영원히 그럴 것이니 걱정 말아요) 그를 배반한 것은 물론 나였지만 그 미안함조차 너그럽게 이해해 줄 것을 너무 잘 안다.

  이제 나는 그 나무를 아주 잊을 만큼 모든게 여유로워졌고 낯설음도 많이 멀어졌다. 지금은 오히려 말로써 다칠 상처가 두려워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말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움을 알아가고 있다. 뿌리없는 나무처럼 잘려나온 사람들의 근거를 모르니 이민사회란 참(眞實)이 어떤 것인지 사실 가려 살기가 쉽지 않다. 요즈음 잊고 살던 그 나무가 다시 생각나는 것은 웬 일일까? 영원히 반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 서러움을 속 시원히 허튼 소리로 떠들어 보고 싶어서일까? 말 무서운 세상에 혼자 듣고 묻어 두는 그 보다 더 믿어운 친구가 어디 또 있을까? 어쩌다가 스치고 지나치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보면 여전히 변함없이 우뚝서서 품위를 지켜 가는 그 님 위용에 조용히 머리가 숙여진다.

  모진 풍상에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만 품으면서 내색없이 살아가는 그 님. 그 의연함이 존경스럽다. 나도 과묵하게 그 님을 닮아 살고 싶다. 자기 삶에 충실해 조금도 흔들림없이 굳건한 자신감. 누가 관심가져 주지 않아도 투정 않는 너그러움. 크게 커서 작은 것들을 감싸 안고 튼튼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대단한 희생. 멀리 보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겸손함. 위풍당당 너무 잘 생겨서 오만함이 있을 법도 한데 전혀 도도하지 않은 내면의 아름다움. 자연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베푸는 넉넉함 등등.....

   또 한해가 저물고 새 해가 열렸다. 금년에는 그 나무님을 많이 생각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그를 흉내내며 살아 보련다.

“A”시에서

댓글 0 | 조회 4,013 | 2009.11.25
내가 살던 A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도… 더보기

서울 일기

댓글 0 | 조회 3,613 | 2009.10.27
9월 00일"여보시요 안녕하슈?" "… 더보기

딸이 좋아

댓글 0 | 조회 3,884 | 2009.09.22
딸하나, 또하나! 이 딸딸이 엄마를 … 더보기

메밀묵 사려∼∼

댓글 0 | 조회 4,201 | 2009.08.25
동지가 지나 열흘쯤 되면 그 짧던 해… 더보기

투표하러 가던 날

댓글 0 | 조회 3,065 | 2009.07.28
오늘은 아침부터 참 기분이 좋다. 어… 더보기

사람 구경

댓글 0 | 조회 3,476 | 2009.06.23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합창의… 더보기

꿈나무 동산

댓글 0 | 조회 3,249 | 2009.05.26
거기는 활기차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 더보기

왕 밤 줏으러 갔다네

댓글 0 | 조회 3,801 | 2009.04.28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해서일까? 그 누… 더보기

희망을 주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3,420 | 2009.03.24
이른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이름모를 진… 더보기

어둠속의 아이들

댓글 0 | 조회 3,977 | 2009.02.24
길을 걸어가는데 열살안쪽 검은 애들 … 더보기

검은 진주 가족의 아름다운 삶

댓글 0 | 조회 3,498 | 2009.01.28
딸 다섯에 막내로 아들 하나, 그 아… 더보기

나의 기쁨조 사람들

댓글 0 | 조회 3,511 | 2008.12.23
이 해도 마지막 달, 한 해를 마무리… 더보기

양귀비꽃 하루

댓글 0 | 조회 3,113 | 2008.11.26
찌프린 하늘이 회색으로 어둡다. 그 … 더보기

쌀밥에 뉘

댓글 0 | 조회 3,313 | 2008.10.30
주차장 옆, 시커먼 고목나무 팔 벌린… 더보기

봄이 오는 소리

댓글 1 | 조회 3,537 | 2008.09.24
연일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토록 안달하… 더보기

나나니 춤

댓글 0 | 조회 3,773 | 2008.08.27
삼십년만의 큰 태풍이란다. 홍수에 집… 더보기

"DOULOS"의 사람들

댓글 0 | 조회 3,487 | 2008.08.13
그 날은 왜 그리도 비바람이 사나웠는… 더보기

[383] 일탈(逸脫)의 쾌감

댓글 0 | 조회 3,248 | 2008.06.25
길고 긴 여름 가뭄에 늦더위가 기승이… 더보기

[381] 멋쟁이 멋쟁이! (황혼에 피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댓글 0 | 조회 3,186 | 2008.05.28
요즈음같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한… 더보기

[379] 이 가을에는.....

댓글 0 | 조회 3,345 | 2008.04.23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 세월에도 나를… 더보기

[377] 우리동네 시장 풍경

댓글 0 | 조회 3,854 | 2008.03.26
화요일 아침, 다른 때 같으면 잠자리… 더보기

[375] 짧은 만남, 긴 행복

댓글 0 | 조회 3,380 | 2008.02.26
금년(2008년) 설에 내 가족모임은… 더보기

현재 [373] 그 나무님!

댓글 0 | 조회 3,186 | 2008.01.30
티티랑이 언덕길 위에 우뚝 서 있는 … 더보기

[371] 예술처럼 늙고 싶다

댓글 0 | 조회 3,186 | 2007.12.20
"이제 늙고 볼품없어 제대로 보아주는… 더보기

[369] 나누며 사는 사람들

댓글 0 | 조회 2,898 | 2007.11.28
생각보다 무겁고 두툼한 그것을 건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