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 디지탈과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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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1/2013. 13:28
한얼 (210.♡.28.40)
조각 케이크의 나날들
디지털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거부하고 ‘전화는 통화와 메시지만 보낼 수 있으면 장땡’이라고 여기던 내게, 얼마 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스마트폰이 생긴 것이다. 날렵하고 매끄러운, 마치 <매트릭스>의 트리니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그것은 안타깝게도 배터리가 망가져 운명해버린 구식 핸드폰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굿 바이, 아날로그폰. 안녕, 스마트폰.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쯤부터이니, 나는 비교적 늦게 디지털 세대에 합류한 셈이다. 이전부터,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열 중 아홉은 이 ‘똑똑한 전화’를 쓰는 것에 놀랐었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아, 다들 이렇게 바뀌어가는 구나, 하고. 나만 해도 상당히 우연한 기회로 이 전화를 손에 넣은 것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전화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타인과 얼굴, 또는 목소리를 한 공간에서 - 또는 한 전파 상에서 공유하며 -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소통의 도구들은 전부 혐오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왜 현대에는 전보라는 우아하고도 세련된 전달 매체가 사라진 거지, 라고 투덜거릴 정도로. 그렇기에 휴대폰 따위,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여기고 있던 내게 갑작스러운 행운으로 생긴 이 물건은 꽤나 낯설었다. 물론 기계를 좋아하기에 신기하기는 했지만, 무척 미심쩍기도 했다. 마치 사바나에서 처음 보는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조심스럽게, 천천히 익숙해졌다. 행여나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스마트폰의 기능과 편리함은 물론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최고의 장점부터 시작해서, 단순한 전화 이상의 기능성을 가진 물건 - 어느 광고 카피 말마따나, ‘사용자의 상상력만이 유일한 제한인’, 가히 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21세기는 시작한지 13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속단하긴 이르겠지만). 노트북이나 PMP 등은 전부 최신 제품을 써도, 핸드폰만은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내게 새로운 스마트폰 ‘삼순이’- 사용하는 모든 기계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습관이 있으므로 - 는 꽤나 놀라운 디지털 세계를 보여 주었다.
“우와! 이거 봐! 핸드폰으로 인터넷이 되네?”
“카카오톡? 그게 뭔데?”
“뉴질랜드에서 샀는데 한글이 돼! 완전 신기!”(이게 제일 놀라웠던 점이리라)
...... 삼순이는, 어쩌면 스마트폰을 가지게 된 것이 처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팜므 파탈이었다. 내 시간을 모조리 잡아먹는.
물론, 이 신기한 미녀(?)에게 완전히 매혹 당한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불필요한 용건으로 통화를 하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기고, 문자라면 치가 떨린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에는 아날로그폰과 같은 물리적 키보드가 없으니, 낑낑거리면서 납작한 스크린을 조심해서 누르는 수밖에 없다. 오타나 문법 오류를 - 심지어 문자 메시지에서도 - 지극히 혐오하는 나로썬 세 글자에 한 번 꼴로 실수를 할 때마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것이 당연히 짜증스럽다. 내 엄지는 충분히 빠르지 못하기에 대화가 늦어지고, 최신 기기들의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상대방이 내 인간적인 둔함에 답답함을 드러내면 나는 피가 바짝바짝 마르기까지 한다.
스마트폰에게 느끼는 최고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나만의 것으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점. 겉모습부터 시작해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까지, 전부 내 마음대로다. 누구도 간섭하지도, 참견하지도 않는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지갑과도 비슷하다. 그곳에 있지만,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열어보았다간 큰 결례가 될 수도 있는 것.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딱 알맞은 물건인 셈이다.
최신형 의사 소통의 도구를 얻었음에도 그것을 나만이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는 스스로에게 가끔은 환멸감이 들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