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떡같은 영어에서 찰떡같은 영어로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Mira Kim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김수동
최성길
크리스티나 리
송하연
새움터
동진
이동온
멜리사 리
조병철
정윤성
김지향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개떡같은 영어에서 찰떡같은 영어로

0 개 2,675 김임수

키위 앞에서 말문이 막힐 때 얼굴이 붉어지며 식은 땀이 나시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진 대사 활동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상당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로 세팅되어 있는 몸과 마음을 통째로 리부팅 (다시 켜기)해야 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시험’이라는 심리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심리안에서 영어 대화는 긴장감 속에 치러야 하는 구술시험이다.  대화 중 실수 하나 하나가 뼈아픈 감점이 되니 식은 땀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거나 비웃는 태도까지 보인다면 나의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져 우울증까지 걸릴 지 경이다. 이같은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면 근처에서 영어 소리만 들려도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한다. 소위 진단명 ‘영어 울렁증’. 

 

그러나,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마저 나의 부족한 영어때문에 달게 받아야 하는 처벌(?)로 받아들인다면 그 피해의식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그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은 그들의 비루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 내가 상대에게 미안해 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할 이유는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 성적주의’에 물들어 있던 나의 관점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80년대 초반 미군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미군 한 명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에 못 이겨 씩씩대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한쵸 (반장)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겟 이븐 (get even) 해 줄께!’ ‘네??!! ’말 뜻을 몰라 멍하니 있던 나에게, ‘대학 다니다 온 놈이 이 말 뜻도 몰라? 네가 당한 만큼 내가 그 녀석 손 좀 봐주겠다고!!!’ 

 

책 속에만 매몰되어 있던 나의 알량한 지식영어가 몸으로 체화된 살아있는 영어에 한방 먹은 것이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까막눈 한쵸아저씨. 그는 어린 나이에 접시닦이 하우스 보이로부터 시작해서 40대 중반에 이르러 300여명 미군 병사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로까지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아저씨는 평소에도 늘 새로운 영어 말을 배워서 아들뻘 되는 나에게 자랑스럽게 가르쳐 주시곤 했다. 그 분의 영어학 습법은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과 같았다. 상대방의 말을 귀로 듣고 흉내내서 입으로 말하고, 실수를 통해서 고치고, 그것을 암기하여 비슷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활용하는 방식 바로 그것이었다. 그 분의 배움의 자세에는 어떠한 주저함이나 수치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듯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말을 흉내 내는 과정이다. 그러니 말을 하지 않고 말을 배울 재간이 없다. 책을 통해서 눈으로 아무리 단어를 외운다고 해도 입으로 뱉어 말로 표현하고 서로 소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마치 피아노나 당구를 배울 때 교습서로만 공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나는 그 분을 보면서 영어에 대한 나의 편견을 반성했다. 영어로 말을 한다는 것이 꾸준하게 반복된 연습의 결과일 뿐, 개인의 교육 정도 및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시험)가 아니라는 것. 결국, 영어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대화의 도구요 감정의 매개체라는 것이었다. 

 

이론은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나는 여전히 ‘영어 울렁 증’과 ‘영어 성적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어쩌면, 한국식 입시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에게는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호 글에서 영어 뒤에 있는 불안감과 수치심을 돌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쯤에서, 나만의 자기 암시 비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나의 ‘영어 애증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잘 하면 잘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하자. 내가 개떡같이 말한다고 해도, 상대는 찰떡같이 알아들을 것이니 꺼리낌없이 계속 말을 하자. 자꾸 하다 보면 찰떡같이 말하는 순간이 오겠지. 나의 영어스승인 한쵸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가짐인 것이다.

 

김 임수  심리상담사 / T. 09 951 3789 / imsoo.kim@asianfamilyservices.nz


32747e8168419d66fa96197c79efc915_1524551525_4249.jpg

뉴질랜드, 중국, 일본에서 자란 세명의 한국 젊은이들

댓글 0 | 조회 2,091 | 2018.12.21
2018년이 저물어갑니다. 독자여러분… 더보기

노년을 외롭지 않게 준비해요

댓글 0 | 조회 2,180 | 2022.09.13
노스쇼어 병원에 입원을 하면 아시안 … 더보기

증가하는 동양인들의 중독

댓글 0 | 조회 2,184 | 2023.05.10
2020년 NZ drug founda… 더보기

핑크 셔츠 데이(Pink Shirt Day)

댓글 0 | 조회 2,186 | 2023.05.18
핑크 셔츠 데이(Pink Shirt … 더보기

이민자 시선으로 본 영화 ‘기생충’, 냄새와 선을 넘는 것

댓글 0 | 조회 2,191 | 2019.06.25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았… 더보기

이민와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댓글 0 | 조회 2,202 | 2019.03.26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정치인 한… 더보기

뉴질랜드 거주 동양인들 중 우울증상이 가장 높은 한국인

댓글 0 | 조회 2,352 | 2021.08.10
지난 6월 아시안 패밀리 서비스에서 … 더보기

카톡에 웃고, 카톡에 울고

댓글 0 | 조회 2,361 | 2018.09.25
회의를 마치고 모바일폰을 확인하니 한… 더보기

영어가 문제인가, 태도가 문제인가

댓글 0 | 조회 2,416 | 2018.03.27
‘뉴질랜드에 오래 살고 있으니 영어는… 더보기

소리 지르는 부모, 소리 지르는 자녀

댓글 0 | 조회 2,461 | 2020.11.24
과거에도 짜증내고 소리지르는 자녀들이… 더보기

델타 변이와 락다운에 대한 설문조사가 중요한 이유

댓글 0 | 조회 2,522 | 2021.10.13
갑작스럽게 델타 변이바이러스가 뉴질랜… 더보기

다른 인종에 비해 9.5배 높은 동양인들의 문제 도박

댓글 0 | 조회 2,558 | 2020.08.25
도박의 해를 알리는 주간은 일년에 한… 더보기

코로나바이러스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댓글 0 | 조회 2,569 | 2020.03.24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류가 죽음… 더보기
Now

현재 개떡같은 영어에서 찰떡같은 영어로

댓글 0 | 조회 2,676 | 2018.04.24
키위 앞에서 말문이 막힐 때 얼굴이 … 더보기

자기 연민에 빠지는 부모

댓글 0 | 조회 2,685 | 2020.12.23
과거나 지금이나 부모노릇이 힘든 건 … 더보기

백신주사를 맞읍시다

댓글 0 | 조회 2,789 | 2022.09.20
코비드 백신과 독감 백신을 맞읍시다.

자녀들의 딜레마, 한국식? 뉴질랜드식?

댓글 0 | 조회 2,882 | 2018.05.25
우연히 대학생 딸의 문신을 본 후 충… 더보기

이민생활, 아이들도 어른만큼 힘들다

댓글 0 | 조회 3,030 | 2018.05.09
얼마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 더보기

대화할 때 시선처리 딜레마

댓글 0 | 조회 3,267 | 2018.10.25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자주 느끼는 바… 더보기

뉴질랜드 인종차별, 그 불편한 진실

댓글 0 | 조회 3,721 | 2019.04.24
“뉴질랜드는 염 병할 인종차별 국가입… 더보기

뉴질랜드 거주 동양인들의 66%가 도박자

댓글 0 | 조회 3,915 | 2020.07.15
아시안 패밀리 서비스는 보건 복지부의… 더보기

65세에 회고하는 이민생활 25년

댓글 0 | 조회 6,156 | 2018.02.13
지난 1년간 뉴질랜드를 떠나서 한국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