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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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보다 무서운 간병비

0 개 975 박명윤

고려 말기의 명장인 이성계(李成桂)가 1392년 조선(朝鮮)을 건국한 이래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조선은 총 27명의 왕을 배출했다. 조선 시대 역대 왕이 사망한 나이는 평균 46.0세이다. 조선 왕들의 평소 질병과 사망원인 중 제일 많았던 것은 종기(腫氣)이다. 종기는 피부 모낭 주위의 화농성 염증으로, 당시 큰 종기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60세 회갑(回甲)잔치를 한 왕은 태조(73), 정종(62), 광해군(66), 영조(82), 고종(66) 등 5명이다. 최장수 임금인 영조(英祖)는 노령기에도 건강 상태가 양호했으며, 74세 때는 신하들이 “피부가 청년 시절과 다름이 없습니다”라 말할 정도였다. 그는 어린 시절 사가(私家)에서 자랐던 경험이 있어 자유롭게 운동하고 검약한 생활을 익힐 수 있었다. 이에 영조는 스스로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즐겼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사회•경제발전으로 평균수명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1980년 65.69세가 1990년 71.28세, 2000년 76.02세로 늘어 2024년 기대수명은 83.7세(남성 80.8세, 여성 86.6세)였다. 그리고 2025년에는 평균 기대수명이 84.5세에 도달하여 일본, 스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장수(長壽)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숫자가 있다. 바로 건강수명이다. 기대수명(期待壽命)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를 말하지만, 건강수명(健康壽命)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하며 사는 기간’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최근 통계를 보면 기대수명은 늘어나는데, 건강수명은 65.5세 수준에서 정체되거나 살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평균적으로 인생의 마지막 약 19년 정도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생하며 보낼 수도 있다. 이는 장수국가인 한국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조지타운대학(Georgetown University) 김대현 교수(보건관리정책학과)는 ‘대한재택의료학회’ 2025 창간호에 ‘Barriers to the Implementation of Home Health Care in South Korea: A Systematic Review’를 게재했다.


김대현 교수는 이 논문에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약 15%인 140만명이 심각한 이동장애 등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홈바운드(homebound) 노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중 상당수가 집에서 간병을 받는 노인일 가능성이 높다.


간병(看病)은 질병으로 치료받는 급성기 환자를 병원과 가정에서 돌보는 ‘의료 돌봄’이다. 안정기 환자의 식사, 외출 등을 돕는 ‘생활 돌봄’인 요양(療養)과는 다르다. 요양은 국가 지원을 받는다. 2008년에 도입된 ‘장기요양보험’은 말벗, 목욕 등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여러 요양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환자의 생존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간병은 제도권 밖에 있다. 관련법도 없고, 건강보험 적용도 안 되므로 모든 간병 부담을 환자와 그 가족이 100% 진다. ‘간병 노인 100만명 시대’에 접어든 초고령 사회 한국에서 간병은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 개입해 환자와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보건의료노조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간병 가족의 96%가 ‘간병비가 너무 비싸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요즘 ‘간병 파산(破産)’이란 말에 이런 공포감이 배어 있다. 간병인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와 달리 국가 자격증이 없으므로 누구나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개인 간병인을 썼을 때 드는 월평균 비용은 370만원으로 같은 해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 월평균 소득 363만원보다 많다. 대학병원에서 24시간 개인 간병인을 구하려면 최소 400만원은 줘야 한다. 이는 매달 월급을 전부 털어도 간병비를 못 댄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0년 월 평균 개인 간병비는 112만원이었는데, 2023년엔 370만원으로 13년간 230% 올랐다. 이에 전체 간병비 지출액도 급증해 2022년에 이미 1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의 2024년 3월 ‘이슈 노트’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 등의 간병을 하느라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2022년 기준 11조-19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5-0.9%에 달했다.


간병비의 재정적 부담으로 환자나 가족은 요양 병원을 찾는다. 요양 병원은 간병인 한 명이 4-5명을 돌보기 때문에 간병비가 낮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도 간병비를 포함해 매달 병원비로 약 140만원을 낸다. 요양 병원비도 부담스러워 가족이 집에서 환자를 간병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의 2023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돌봄 제공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 노인 중 가장 많은 81.4%(복수 응답)가 ‘가족’이라고 답했다. ‘개인(고용) 간병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2022년 기준 요양병원에 입원한 연간 환자 수(37만명)는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3만5천명)보다 10배 많다. 이에 간병비가 더 오를 수 있다고 본다.


간병을 하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언제까지 간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간병 기간은 환자와 질병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 이에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이어지기도 한다. 국내에서 질환별 간병 기간에 대한 정부 통계가 발표된 적은 없다.


미국 알츠하이머병협회(Alzheimer’s Association) 조사에 따르면, 간병 수요가 특히 높은 치매의 경우 평균 간병 기간이 약 4년이었다. 전체 환자의 15%는 간병 기간이 10년 이상이었다. 이 기간 동안 가족은 온종일 환자 곁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의료노조가 2023년 전국 성인 간병 가족 1000명을 대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조사했다. 가장 많은 61.2%가 ‘간병 스트레스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여러 연구에서 간병을 하는 가족의 우울감 경험률이 40-50% 수준으로 나타나, 이는 우리나라 성인의 우울감 경험률(11.3%)의 4배 이상이다.


가족 간병 시 어려운 점으로 간병 스트레스 다음으로 가족 내 갈등(16.5%), 퇴사했다(13.1%), 학업을 포기했다(5.2%)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간병비 부담을 놓고 가족 내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요즘에는 70대 자녀가 90대 부모를 돌보는 ‘노노(老老) 케어’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요양•돌봄 서비스를 사회보험 방식으로 보장하는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한 지 26년 만에 재정 부담의 급증과 돌봄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파탄 가능성이 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예산이 있어도 간병인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4년에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공포되어 2026년 3월27일부터 시행된다. ‘통합 돌봄’이란 의료•요양•돌봄 등으로 나눠져 있던 각종 복지 서비스를 통합•연계한 것이다. 이에 앞으로 노년층과 중증 장애인들은 방문 진료, 만성질환 관리, 데이케어센터(주간 보호센터) 등 30개에 이르는 각종 의료•복지 서비스를 연계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신규 연계 서비스도 추가하여 2028년에 6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며, 이를 위해 5년간 94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우려할 점은 지역별로 인프라(infrastructure)와 인력 차이가 심하여 지역에 따라 일부 서비스는 제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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