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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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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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불교의 윤회설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윤회할 주체인 “나”라는 게 일단 본질적 의미에 존재하지 않으며, “나”라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인식이 죽는 순간 뇌 기능의 종식과 함께 깨끗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데 굳이 윤회설을 축자적으로 믿는다고 전제하고 “다음 생애에서 누가 되고 싶냐”고 제게 물어보면 저는 “다른 걸 몰라도 인간이 아니었으면 한다”고 답하겠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아주 좋은 기회라고 여기지만, 저는 제가 태생적으로 속하고 있는 Homo sapiens 이라는 종에 대해 매우 회의적으로 생각합니다. 


Homo sapiens이라는 종이 포유류 진화의 한 결과물인데, 살면서 생각하면 할 수록 우리 종이 진화의 막다른 골목 (dead end)이 아닌가, 이런 절망적 생각이 듭니다. 지구상에 약 150만 종의 동물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는 신체 크기에 비해서는 인간은 가장 사이즈가 큰 뇌를 보유합니다. 그런데도 - 그 매우 발전된 뇌에도 불구하고 - 인간만큼 동종 살해를 많이 하는 동물은 드물죠. 일부 동물들이 동종을 “먹잇감” 삼아 죽여 먹고, 또 다른 종류의 동물 (사자, 침팬지 등)은 영역 및 짝짓기 과정에서의 다툼의 결과로 종종 개별적으로 동종을 살해하지만, 인간은 그 뇌가 복잡하고 군중 생활을 잘하는 만큼 동종 살해의 규모도 어마어마합니다. 예컨대 제1차 대전 때 세르비아 같은 경우에는 총인구 중 전몰자의 비율은 거의 4분의 1에 가까웠습니다. 파라과이 전쟁 (1864-1870)의 경우에는 아예 파라과이 총인구의 약 60% 정도가 사망한 것입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집단 학살은, 다른 종에서 보기가 드뭅니다. 인간의 뇌가 잘 발달된 만큼 그 파괴력 역시 상상 초월합니다. 


동종만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은 여태까지는 타종을 파괴하는 데에 대해서는 별다른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1939년에, 제2차 대전을 앞두고 식량 문제 등에 대해 걱정이 많았던 영국에서 “반려 동물 학살 사건” (pet massacre)이 일어났습니다. 정부 산하 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영국 전체의 반려 동물의 약 4분의 1에 해당되는 반려견과 반려묘 등이 집단 안락사를 당한 것입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는 사실 이 정도의 반려 동물 집단 안락사가 필요 없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일어났지만, 여태까지는 영국 정부는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사과 내지 반성을 표한 적은 없습니다. 타종이라면 인간이 맘대로 그 생명들에 대한 결정권을 휘둘러도 된다는 “통념”은, 인간들의 뇌에 아주 깊이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 만큼의 조직력과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 즉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뇌의 발전과 무관하게, 인간은 여전히 “힘”에 살고 힘에 죽는 동물로 남아 있습니다. 국제질서가 오로지 힘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트럼프의 국토안보보좌관 스티븐 밀러의 최근의 망발은 사실 인간적입니다. 너무너무 인간적입니다.  


인간은 파괴적인 만큼 위계질서적입니다. 물론 인간만은 아니죠. “쪼는 순서” (pecking order)라는 말을, 인류학자가 아닌 동물행동 연구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특히 유인원의 경우, 그 “쪼는 순서”대로 힘센 숫컷이 약한 숫컷들을 제압하면서 보다 많은 암컷을 차지하는 게 아주 유명한 일입니다. 인간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훨씬 그 이상 나아갑니다. 가부장제 극복을 최근 수십년간 여러 사회들이 목표로 세웠지만, 그 목표의 도달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인간을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습니다. “엡스타인 파일”만 봐도, 100년 전처럼, 1000년전처럼, “힘센 숫컷”들이 성 착취를 공유하면서 서로 “교류”를 하고 “관계맺기”를 하는 것이 요즘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 학교마다 그 최우선 과제는 “왕따 현상”의 예방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피해 비율이 18% 정도로 계속 나타나는 것만 봐도, “권력의 서열”을 매기는 것은 특히 남학생 사이에는 거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즉, 우리가 행정력을 다해서 그들 사이에 침팬지를 방불케 하는 “쪼는 순서”가 나타나지 않토록 노력을 하지만, 그야말로 역부족입니다. 아주 힘든 일이죠. 인간 완고합니다. 참 완고합니다. 


제게 공산주의라는 건 결국 “신인간의 창조”입니다. 인류가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 다른 종류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그 내부 문제들을 극복해 평화, 평등의 사회를 이루자면 인류의 “본질”, 인간의 정의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수평적인 관계, 평등, 그리고 비폭력은 인간에게 당연지사가 되어야 되고 다른 종들과의 관계도 “인간 본위” 아닌 평등한 방식으로 맺어야 할 것입니다.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인간이 계속 살아나간다면 결국 기후 파괴와 함께 이 행성에서의 “생명” 자체가 위기에 빠질 것입니다. 한데 지구의 생명계 전체가 가면 갈수록 위기에 빠지는 상황에서도 인간들이 “국가” 단위로 서로 싸우고 서로 학살하고 매일 서로를 죽이는 것만 봐도....인간으로 산다는 게 싫을 때가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인간의 본질적 문제란, 결국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 출처: 네이버 블로그 | Vladimir Tikhonov (박노자)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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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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