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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새벽, 잔디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골프장. 골프는 정적 속에서 진행되며, 그 고요함만큼이나 예의와 배려가 중요한 스포츠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골프는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운동”이라고. 실제로 라운드를 함께 돌다 보면,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성격이 조금씩 보인다. 말투, 순서를 기다리는 태도, 실수에 대한 반응, 동반자에 대한 배려 등은 스코어보다 더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골프는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플레이 속도, 다른 사람의 스윙 시 방해하지 않기, 그린에서 발자국 정리하기, 벙커 정리하기 같은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예의이고, 골프의 정신이다. 특히 동반자의 퍼팅 순간, 숨소리조차 신경 쓰며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그 모습은 ‘신사 스포츠’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골프에서의 예의는 삶 속 배려와 닮아 있다. 인생도 결국은 함께 걷는 라운드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서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플레이’하고 있다. 누군가 먼저 티샷을 할 때,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누군가 벙커에 빠졌을 때는 속도를 조절해주는 것이 배려다. 실수한 동료를 무시하거나 웃는 대신, 조용히 시선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마음 깊은 예의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예의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좋은 샷을 치는 것보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어쩌면 나의 티샷은 기억나지 않아도, 내가 건넨 한 마디 위로, 내가 벙커를 정리한 모습, 내가 침묵으로 상대의 긴장을 덜어준 그 순간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이민자로서의 삶도 골프와 다르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골프를 배웠을 때, 예의와 배려는 언어보다 강한 소통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몸짓과 눈빛, 행동으로 충분히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때부터 배웠다. 골프를 잘 치는 것보다 예의를 지키는 것이 더 멋지다는 것을.
삶은 종종 러프에 빠지기도 하고, 벙커에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빠져나오는가가 아니라, 그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다. 홀을 향해 걷는 길 위에서 우리는 매일 예의를 배운다. 그리고 그 배려는 언젠가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마지막 퍼팅을 끝내고 클럽을 내려놓을 때, 내가 친 샷보다는 내가 어떤 동반자였는지를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긴 라운드를 끝마쳤을 때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예의 바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남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진짜 ‘버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