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베르네 소비뇽, 강한 것은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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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베르네 소비뇽, 강한 것은 부드럽다

0 개 2,205 피터 황

차창 밖에서 코끝에 익숙한 고기 굽는 냄새가 와 닿았다. 연기에 섞여 나오는 바로 그 냄새,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달달 한 맛, 주머니 사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던 시절 푸짐한 고기 양 때문에 서민들의 넘버원 메뉴가 되었던 돼지갈비다. 숨 죽은 연탄불 드럼통 위 석쇠에 올려져 지글거리며 익어가던 불맛나는 갈비에 힘들었던 하루를 씻어내는 노동자, 넥타이를 맨 직장인 가림 없이 양손으로 잡고 야무지게 뜯어먹던 정겨운 풍경이 그려진다. 
 
돼지갈비처럼 진한 양념의 음식에는 강한 맛의 와인이 잘 어울린다. 특히 풍부한 타닌은 단백질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에 질긴 고기와 잘 매치가 된다. 그 중에서도 레드와인의 제왕, 카베르네 소비뇽은 제격이다. 캡 또는 캡샙(Cab Sab)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하는데 17세기 프랑스 보르도지역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라던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우연히 교차 수분되어 만들어진 교잡종이다. 소비뇽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야생’이란 의미의 쇼바쥬(sauvage)인데 카베르네 소비뇽의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이 어쩌면 이러한 유전적인 성격을 물려받은 듯하다. 캡은 알이 매우 작으며 깊고 어두운 색과 두꺼운 껍질, 많은 씨앗을 가지고 있어 색소와 타닌이 풍부하고 부패를 늦춰주며 병충해와 추위에 강하다. 최고급 캡은 천천히 숙성되면서 달콤한 블랙커런트 향과 함께 삼나무 향, 시가박스의 화양목 향, 연필 깎은 부스러기 향을 풍기며 대단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의 풍부한 타닌은 와인의 뼈대를 만들어주고 맛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장기숙성을 하기 위한 필수요소다. 캡샙이 좋아하는 토양은 배수가 잘되는 자갈토양인데 그래서 프랑스와인의 심장부인 보르도 서부의 메독(Medoc)과 그라브(Grave) 지역이 세계최고 캡의 명품산지다. 전세계적인 캡샙의 고향으로는 프랑스 보르도 메독지방과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의 알렉산더 밸리, 나파밸리, 센트럴 코스트의 파소 로블 지역이다. 다음으로는 칠레 메이포 밸리, 호주 남부 쿠나와라 지역이 유명산지다. 뉴질랜드에서는 혹스베이와 와이헤케 아일랜드가 훌륭하며 특히 온화한 지역의 특성으로 맛이 풍부하고 싱그럽게 익은 딸기 향이 포함된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은 1976년 파리에서 행해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당당히 프랑스 보르도를 제치고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자존심이 상한 프랑스는 30년 뒤 2006년 파리에서 숙성력이 뛰어난 보르도를 대표선수로 선발해서 또 한번의 대결을 펼쳤지만 결과는 똑같은 미국의 완승이었다. 빈티지의 기복이 심한 프랑스 와인의 30년 뒤의 승부도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향이나 조직감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주로 다른 품종과 블랜딩함으로써 화룡점정(畵龍點睛)같은 복합성을 강조한다. 보르도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메를로(Merlot)를 섞어서 맛을 순화시키고 프티 베르도(Petit Verdot)를 섞어서 스파이시한 맛을 준다.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으로 과일 향을 강화시키고 말벡(Malbec)으로 색도를 높인다. 이탈리아에서는 산죠베제(Sangiovese), 호주에서는 쉬라즈처럼 토종품종에 캡을 섞어 세계유일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가며 어렵던 시절의 감사함과 함께 그리움까지 더해져 더욱 진한 추억으로 자리하게 마련이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취향도 많이 바뀌었지만 격식 없이 소탈하게 누구나 만나기에 어울리던 곳, 취해서 호탕하게 떠들어도 누구 하나 눈총을 주지 않던 정담이 있고 넉넉하던 그 곳을 떠올리며 든든하고 묵직한 무게 감, 처음과 끝이 흔들림 없는 구조감으로 굳건하게 지조(志操)를 지켜내는 캡샙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오버랩 한다. 카베르네 소비뇽, 젊을 때는 떫고 거칠던 모습이 해가 갈수록 절묘하게 조화되어가는 그를 대할 때마다 강한 것이 센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것이 진정으로 강한 것’이라는 삶의 지혜를 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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