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거리는 봄의 꽃망울들이 노랗게 웃고 있습니다. 봄의 문이 살며시 열리고 있네요. 잔뜩 움츠리고 있었던 몸과 마음이 화사한 수선화의 노란색으로 물들어갑니다.
한여름에 집을 팔려고 오픈 홈을 하기 시작했는데, 가을을 지나 겨울을 넘기고 있네요. 그 덕에 올해 초부터 힘들게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느긋해서 탈인 성격인데도, 집이 빨리 팔리지 않으니 마음이 먼저 지쳐버리더군요. 그래도 겨울이 오기 전에는 집이 팔리려니 하면서 지냈었는데,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야무진 생각이었는지 모릅니다.
부동산 시장에 내 놓기만 하면 바로 팔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무너지면서 계획성 없는 나를 자책하기도 했었지만, 나만은 괜찮을 거라는 엉뚱한 긍정의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버텼을 겁니다. 이런 엉뚱한 생각들이 그동안 나를 지탱해준 발판이었지만, 아찔하기도 하네요.
살아오는 내내 생존의 두려움이 은근하게 날 감싸고 있었지만, 늘 행운과 희망찬 내일을 기대하면서 살았기에 그나마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관계에 있어서 ‘기대’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고, 그 ‘기대’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는 것들도 많지만, 그래도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필요하기에 서로 기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필요하면서도 불필요한 기대를 앞으로의 내 삶에서 제외하고 싶긴 합니다. ‘기대’란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을 사는 것이니까요. 늘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살고 싶거든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삶의 이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고 봅니다. 50줄에 접어들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오래된 습관이 한순간 없어지진 않더군요. 그래도 세상 이치에 마음이 가는 것만큼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가지려 노력 중입니다.
잔뜩 기대했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사계절의 법칙이 생각나곤 합니다. 사계절의 법칙이야말로 대자연의 법칙이며, 자연의 일부인 우리 역시 사계절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끝없이 이어지듯 우리의 삶도 사계절의 연속이라는 걸 생각하기만 하면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디쯤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인지,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가만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명상이나 기도를 하겠지만, 저에겐 산책하면서 명상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되더군요.
지난 3년을 생각해 보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아팠던 것부터 시작해서 생활고로 힘들고, 팔려는 집도 제대로 안 팔리고, 겨울처럼 모든 것들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황이더라고요.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며,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요즘 산책을 하다 보면 비가 자주 옵니다. 어제 산책 때에도 비가 소리 없이 보이지도 않게 공기처럼 내리더군요. 모자를 눌러 쓰고 두툼한 점퍼를 입고 있어서 더 못 느끼긴 했습니다만, 계곡 밑 연못 속에 작은 동그라미들이 여기저기 춤추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인지도 모르지요. 해도 환하게 웃었으니까요.
들길을 따라 걷다가 하늘과 만나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숲 속으로 들어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청명한 새소리와 봄기운이 내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더군요. 그때 고치 안의 번데기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비가 되려고 고치를 만들어 그 안에서 꼼짝 안하고 있는 나 자신이 그려졌습니다.
완성이 되지도 않은 날개를 그 안에서 펼치려 노력하는 시간에 날개가 완성이 될 때를 기다리면서 고요하게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지요. 날개가 완성되어 고치를 뚫고나와 날아가는 나 자신을 상상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내 안에 봄이 열리고 있듯, 내 고치도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준비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내 가슴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회색 구름을 잔뜩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는 것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기회라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줍니다. 우주의 선물인 그 기회를 꼭 잡아서 새로운 도전으로 새 삶을 꾸려나갈 꿈을 꿉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